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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y 26. 2024

미시시피강의 밤

홍어와 아귀찜



돔회와 양주잔을 앞에 놓고 캡틴, 기관장, 그리고 일기사넷이 둘러앉았다.

일항사는 화물 싣는 것을 좀 더 지켜보다가 온단다.

모처럼 싸롱사관들이 모여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 홍어 이야기가 나왔다.

기관장이 물었다.

"국장님은 홍어회 먹어 봤소?"

"아, 그거... 과 동기들과 학교 앞 대폿집에서 두어 번 먹어봤는데 매워서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습니다."

내가 대답하자 캡틴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이, 조 국장. 코와 입안톡 쏘는 맛은 없고?"

"그게 뭔가 톡 쏘는 아린 맛인데 매워서 정신을 못 차리느라 막걸리만 많이 마신 거 같아요."


캡틴이 홍어회에 대해 아는 것을 안주처럼 풀었다.

"호남 지방에선 홍어를 삭혀 먹지. 거기선 잔치에 홍어가 안 나오면 손님들이 섭섭하게 생각한답디다. 가오리와 같은 과라 삭히지 않고 먹으면 가오리 맛이나 비슷해요. 다른 물고기와 달리 알을 많이 낳지 않아 지금은 아주 귀해서 값이 엄청나게 비싸지.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안 먹는 홍어를 칠레,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많이 수입해 오지요."

캡틴의 말이 끝나고 얼음이 반쯤 녹은 온더록스 잔을 모두 입에 대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일항사가 헬멧을 옆에 끼고 들어왔다.

모두 반갑게 맞이하며 일기사가 수고했다고 시바스를 한잔 따라주며 물었다.

"얼음은?"

일항사가 '까이꺼 스트레이트로 한잔하죠.'라고 대답하며 잔을 벌컥 들이켰다.

기관장이 손짓으로 안주를 가리키며 '돔회요. 중국 마트에서 사 왔는데 우리나라 것보다는 못해도 묵을 만해요.'라고 말했다.


일기사도 안주를 집어 먹으며 "거, '만만한 게 홍어 좆'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나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모두 두리번거리자, 기관장이 입을 열었다.

"자산어보에 보면 말이지, 낚시를 문 암컷을 수컷이 덮쳐 함께 잡히기도 한다는데 암컷은 먹이 때문에 죽고, 수컷은 밝히다 죽는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어부가 수놈을 잡으면 우선 홍어 그것부터 잘라버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가 되었다는 말이 있지요."

일항사가 한 잔 더 마시고 말했다.

"어판장에서 홍어 암놈이 비싸니 어부들이 수놈이 올라오면 홍어 좆부터 잘라버려 그런 말이 나온 거로 아는데요. 김주영 작가가 쓴 '홍어'라는 단편을 TV 문학관 드라마에서 정다빈 씨가 '홍어는 좆이 두 개야'라는 대사가 나오죠."

캡틴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테레비에 그런 게 나왔다고?'라고 묻자, 일항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홍어' 그거 19세 미만 시청 불가였어요."

호남 지방에서는 홍어를 볏짚에 싸서 뒷간에 재와 왕겨 속이나 항아리에 넣어 삭혔는데 지독한 냄새가 나지만 먹다 보면 중독성이 있어, 또 찾게 된다고 한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지를 곁들여 삼합으로 많이 먹는다.


원래 날생선은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여 못 먹지만, 홍어는 심해어류라서 체내에 요소가 많아 그게 암모니아로 발효가 되어 냄새가 지독하나 먹어도 탈은 없다.

홍어보다 더 냄새 지독하기로 유명한 음식으로는 스웨덴 염장 청어 통조림 수르스트뢰밍이 있다.

홍어회의 경우 특유의 암모니아 성분으로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지만, 수르스트뢰밍은 하수구 냄새에 가까운 구린내가 심하게 난단다.

과일의 황제 두리안이 구린 냄새가 많이 나 호텔이나 비행기에 반입 금지하는데, 수르스트레밍 캔을 따면 푸세식 화장실 똥을 푼 냄새가 온 동네에 퍼질 정도라 한다.

그러나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강렬한 맛을 잊지 못해 또 찾는다고 한다.


글쓴이는 동남아 원목선 탈 때 말레이시아에서 인부가 잡은 대형 가오리를 20불에 사서 주방에 가지고 들어왔는데 조리대 위에 놀려놓자 긴 막대 같은 새끼가 스르르 빠져나오더니 신문지처럼 쫙 펼쳐지는데 족히 30cm는 넘을 것 같았다.

물론 죄송한 말이지만, 우리 선원들은 새끼부터 회 쳐 먹었다.


배고파 부대 선원들이 먹는 이야기가 나오니 아귀찜 야그도 안주로 나왔다.

눈 감으면 떠오르는 콩나물과 미더덕에 분홍빛으로 익혀 상에 오르는 졸깃하고 감칠맛 나는 아귀찜.

예전에는 바다에서 아귀가 잡히면 어부들이 못생긴 게 올라와 재수 없다고 바다에 다시 던져버렸다고 한다.

마산에서 국밥집을 하던 욕쟁이 할머니네 가게에 어느 추운 겨울날 단골 어부들이 아귀를 가지고 와 안주를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할매는 '아, 이 써글 놈들아! 이런 끈적끈적하고 맛탱이 없는 걸 어떻게 처묵냐?'며 밖으로 던져버렸단다.

겨울의 찬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말려진 아귀를 나중에 해물찜처럼 만들었는데 손님들이 먹어보니 맛있다 하여 지금의 아귀찜이 된 거라는 설이 있는데 먹기 시작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귀찜이라는 티셔츠가 우리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AGUCCIM'에서 앞뒤 'A'와 'M'을 빼면 '구찌'가 되는 개그성 짝퉁 옷이다.


근데 그거 아시나?

아귀는 암놈만 잡히고 수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걸...

그게 심해어인 아귀 암놈 성체는 30cm에서 4m까지 자라는데 수놈은 특이하게도 암컷에 붙어서 기생하며 크기가 1cm 전후로 잘 보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다른 기관들이 퇴화하여 오로지 생식기관만 남아 정자를 제공하는 역할만 한단다.


미시시피강의 맑은 밤하늘엔 초승달과 초롱초롱한 별이 빛나고 우리의 'HAPPY LATIN' 호의 선실에서는 술이 익어갔다.

어느덧 졸음 모드에 들어가니 캡틴이 묻는다.

"조 국장, 또 조나? 자동차 싣고 내려주느라 소피 보고 뭐 볼 시간도 없이 바쁘게 다녔는데 남희 씨는 우야 됐소?"

"아, 네? 그게 뭣이냐... 나미라고요?"

술이 한잔 됐는지 깜빡 졸았나 보다.

"네, 영어가 달려 휴가 중에 한국 안 가고 어학원 다니는데 레스토랑에서 알바하면서 동양인이 자기 혼자라고 팁이 일당보다 많이 나와서 디게 좋아하데요."

"그래, 선진국은 팁과 나눔 문화가 발달했지. 좋은 일이오."

일항사가 잔을 들이키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면 남희 씨 치마고 부라자 속에 돈이 주체할 수 없이 들어가는 거네. 그 돈 호강하네."  

일항사의 너스레에 모두 넘어갔다.


이국의 캄캄한 하늘 아래 밤은 깊어가는데, 눈에 보이지 않으 더 사무치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 깊은 밤 남희는 수천 개의 별로 빛나고, 나에게 남은 사랑이란 단지 너만을 생각하는 것인데, 다음 만날 날을 고대하며 고저 아직 살아있음에 감사드려야만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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