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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Gloomy Sunday

by 조운엽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무죄이다.

썩을 나치 시대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눈물겨운 삼각도 아닌 사각 사랑이 있었다.

당신과 헤어지느니 반쪽이라도 사랑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두 남자와 사랑을 얻지 못해 자살 시도까지 한 독일인···.

살아평생 누군가를 가슴이 뛰게 사랑하다 제명까지 못 살고 돌아가시는 것과 그런 사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한 백 년 넘게 밥만 축내다 간 인생···.

어느 삶이 더 좋을까?

물론 글쓴이는 물어보나 마나 사랑도 좋지만, 죽어서 술 석 잔 받느니 개똥밭에 굴러도 살아 한잔 술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해피 니나 호를 타면서 독일로 가는 화물 소식을 애타게 기다릴 때 남희가 '글루미 선데이'에 대해 알려줬다.

그녀는 이미 헝가리와 인연이 있었다.

연휴 때 부다페스트에 가서 19세기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세체니 다리를 건너, 도나우 강 옆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헝가리 국민 스튜 굴러쉬도 맛보았단다.

그리고 오페라 하우스에서 좋아하던 헝가리 랩소디와 헝가리 무곡도 들어봤고···.


클래식 음악으로 헝가리 이름이 들어간 작품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가 있다.

음악은 상처를 아물게 하고 감동과 희망을 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다.

내게는 장르를 떠나 좋아했던 음악을 들으면 지난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르며 새로운 영감을 주기도 한다.

독일 함부르크 출신인 브람스가 헝가리 무곡을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은 헝가리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를 만난 덕분이라고 한다.

1848년 헝가리 혁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한 레메니는 독일에서 브람스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레메니로부터 자연스럽게 헝가리 음악과 집시 선율을 익히고 영감을 받은 브람스는 21개의 헝가리 무곡을 만들었다.

간결하고 경쾌한 헝가리 무곡은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리스트는 헝가리 출신 음악가다.

일곱 살에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여덟 살부터 작곡했단다.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그는 전 유럽을 다니며 천 회 이상의 연주회를 했다.

리스트는 모든 음악을 다 외워서 연주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집시 선율과 헝가리 민속 음악에 익숙했던 그는 자유로운 리듬으로 헝가리 랩소디 19곡을 만들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당대 친분을 가졌던 쇼팽, 멘델스존, 슈만과 바그너 등이 지금도 세계 음악계의 거성으로 공존한다.

학생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도 잘 쳤던 남희는 지금 일하고 있는 독일의 이웃 나라 헝가리에서 음악을 더 배우고 싶은 꿈이 있다고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헝가리는 바다가 없는 내륙 국가라 마도로스가 접하기 힘든 나라이다.

축구를 잘하는 나라니까, 한때 헝가리 왕국이 지배했던 크로아티아의 자다르 항구에 입항하면 플릭스 버스 타고 가서 헝가리 클럽 축구팀과 맥주 내기 공차면 모를까···.

배에서는 공선으로 항해하는 일요일에 파도가 잔잔하면 홀드에 내려가서 공을 차기도 한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가 월드컵에 처음 나가서 전무후무한 국제경기 30경기 무패의 전설을 자랑하던 헝가리와 붙었다.

완행 비행기 타고 일주일여 만에 경기 직전 도착한 우리나라 선수는 시차와 여독을 풀 겨를도 없이 경기해야 했다.

홍덕용 골키퍼는 그 당시 세계 최고 공격수였던 푸스카스 선수 등이 차는 공을 막느라 갈비뼈가 부러진 줄도 모르고 혼신의 힘을 다했단다.

결과는 9 : 0 참패.

전문가는 '그래도 꼬레아가 참 잘했어요.'라고 했다.

한국팀의 상태와 당시 헝가리 전력으로는 이십 대 빵으로 져도 이상하지 않았단다.

동네나 군대 축구에서는 공 좀 차면 공격수를 했고, 글쓴이처럼 느리고 잘 못 차면 수비나 골키퍼 보직이었다.

팔팔했던 조 일병이 홍 선수 대신 골대를 지키고 있었으면, 아무리 기성을 지르며 군홧발로 상대 공격수를 까려고 했어도 백 골은 더 먹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부다페스트의 한 고풍스러운 레스토랑.

감개무량한 표정의 한 노신사가 노래 한 곡을 신청한다.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자 돌연 그는 고통스럽게 가슴을 만지며 단말마 같은 신음을 내뱉고 쓰러진다.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글루미 선데이, 그 저주의 노래야!"


오래전, 다정다감하고 자신감에 넘치는 신사, 자보와 그의 연인 일로나가 운영하는 부다페스트의 한 작은 레스토랑.

새로 온 피아니스트 안드라스는 아름다운 일로나에게 첫눈에 반해 자신이 만든 곡 '글루미 선데이'를 선물한다.

일로나의 마음도 안드라스를 향해 움직이자 도저히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자보는 두 사람을 다 사랑한다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한편, 글루미 선데이는 대중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으나 연이은 자살 사건이 그 노래를 듣고 일어났다고 알려진다.

그때 부다페스트는 나치가 접수하고, 일로나에 차이고 다뉴브강에 몸을 던졌으나 자보가 구해주었던 한스가 독일군 장교가 되어 레스토랑에 찾아온다.


슬픈 일요일이란 뜻의 Gloomy sunday는 헝가리 작곡가 세레시 레죄가 피아노곡으로 만들었다.

가사는 후에 붙었다.

헝가리는 1차 세계대전 후 영토를 많이 잃었고 30년대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반 가까이 되어 춥고 배고플 때였다고 한다.

당시의 우울한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사람의 자살을 부른 곡으로 알려졌다.

작곡자도 노래가 작곡된 지 한참 뒤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오케스트라 연주 중에 연주자들이 집단으로 자살했다는 괴담도 있다고 한다.

또, 이 노래에 저주가 들어 이 노래를 듣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살하게 된다는 등, 이 노래와 관련되어 많은 소문이 전해져 내려온다.

베르테르의 모방 자살 못지않게 유럽의 많은 이들이 이 노래와 연관되어 죽었단다.

당시 글루미 선데이가 헝가리 사람의 국민 노래여서 많은 사람이 듣기는 했겠지만, 노래를 듣다가 다 죽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영어 가사가 나와 여러 가수가 불렀다.

자우림의 김윤아 선수도 고개 팍 숙이고 분위기 잡으며 애절하게 불렀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생각나게 말이다.

영어 가사 역시 죽음과 자살을 암시하며 우울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자살도 전염성이 있다는데 혹시 이 노래 듣고 따라 하시는 분은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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