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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r 28. 2024

마젤란 해협과 푼타 아레나스 항의 신라면 가게


우리의 'HAPPY LATIN' 호는 칠레 이끼께 항에서 비료를 한배 가득 싣고 브라질의 비토리아 항을 향해 잔잔한 남태평양을 항해하고 있다.

배를 타면서 처음 가보는 미지의 아름다운 남미 최남단에서 피오르와 빙하를 볼 수 있다니 마도로스 본능으로 가슴이 설렌다.

파나마 운하 생긴 이래로 일반 상선이 이곳을 항해하는 행운은 극히 드문 일이다.

안 선장님은 예전에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항에서 옥수수를 싣고 칠레 콘셉시온 항에 풀어줄 때 이곳을 지나가 봤다는데 거친 파도에 고생은 했지만, 배를 오래 타도 평생 한 번 가보기 힘든 잊지 못할 항해였다고 한다.

얼마나 진 풍랑을 만날지 모르겠으나 스페인 무적함대가 수백 년간 놀던 마젤란 해협과 드레이크 해협을 향해 가는 항해는 생각만 해도 유쾌한 다.


로사리오 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유럽계 이민자들이 많이 이주해 산다.

라틴아메리카 민중혁명을 위해 싸우다 간 체 게바라와 축구 영웅 리오넬 메시의 고향이기도 하다.

농축산물 수출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하는 항구로 사일로에서 곡물을 주워 먹고사는 쥐가 얼마나 잘 먹고 컸는지 어지간한 고양이는 '아이고, 형님!' 하고 꼬랑지 내리고 도망가야 할 정도로 덩치가 위풍당당하더라.


지구에서 가장 거친 바다는 어디일까.

태풍이나 허리케인 말고 일반적으로 위도가 높은 북극해, 남극해 그리고 거기에 맞닿은 겨울 태평양과 대서양 끝자락이 파도가 세다.

그리고 여기 남미 끝 드레이크 해협이 험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바다이다

파도가 치고 바람이 세게 불 땐 바다를 다 뒤집어 놓고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의 가로등이며 전봇대, 구조물이 다 날아가 버린다.

겨울에 그 바다를 항해할 때 제대로 파도를 만나면 하늘이고 바다고 짙은 잿빛으로 변해 밤이고 낮이고 악마 같은 파도가 갑판 위를 넘나들고 엄청난 바람에 안테나고 뭐고 다 날아간다. 

이러다 배가 뒤집히거나 부러져 물고기 밥이 되는 건 아닌가 겁이 덜컥 나기도 한다.

몇 날 며칠을 침대에서 굴러다니며 잠도 못 자고 식사 시간엔 식탁 위의 그릇이 다 날아다녀 밥 먹는 것도 힘들다.

선원들은 빨래 하나라도 줄이려고 속곳을 잘 안 입는 편인데 반찬 그릇이 날아다니다 김치국물이 옷에 튀면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항해시대에는 유럽인들의 항해술이 발전해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가는 항로와 바스코 다 가마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항로를 알게 되었다.

또한 마젤란이 남미를 돌아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 대서양과 유럽으로 원위치되는 세계 일주를 하는 등 그때까지 몰랐던 다양한 새로운 항로를 알게 된 시대이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받으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둥글다'라는 말이 사실로 증명된 것이다.

대체로 유럽 어디에 끼지도 못하고 갈데없는 변방 나라 포르투갈과, 지중해 패권이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으로 넘어가 스페인도 지중해를 피해 대서양으로 눈을 돌린 15세기 초중반에 범선들의 대양 진출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한 식민제국 건설,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설립으로 유럽은 식민지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어 근대 제국주의 시대로 넘어가게 되었다.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원인 중 하나가 향신료 확보, 특히 후추를 꼽는다.

고기를 구워 소금만 찍어 먹다가 후추를 뿌려 먹으니 맛이 기가 막힌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동방의 향신료는 고가의 물건이었고 유럽의 황실과 귀족들이 열광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유럽에 악한 영향력을 끼치면서 향신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이에 중동으로 못 지나가면 바다로 돌아서 인도에 가 향신료를 구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는 국왕, 귀족을 비롯한 수많은 투자자의 귀를 솔깃하게 했고 덕분에 많은 항해사가 신항로 개척을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향신료는 대항해시대를 열게 했고 대항해시대 중반부터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에서 약탈한 금, 은, 노예와 설탕 등을 실어 나르게 되었다.

유럽 무역의 판도는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이후 계속된 탐험으로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이 인도가 아닌 또 다른 대륙임을 알게 되었고 '아메리카'라고 불렀다.


아메리카와 인도가 다른 지역임을 알았, 향신료 원산지인 인도로 진출하자 유럽인들은 '그렇다면 아메리카 건너편과 인도 사이에 또 뭐가 있는지 궁금하게 됐다.

이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바로 태평양과 아시아이며 마젤란이 이끄는 선대는 처음으로 삼 년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한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아즈텍, 잉카 제국과 마야 문명이 차례대로 멸망하고 중남미는 포르투갈의 브라질만 제외하고 스페인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렇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대양으로 눈을 돌려 막대한 이익을 얻자, 영국과 네덜란드도 끼어들어 영토와 이권을 어느 정도 뺏어오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해상 무역과 거점 확보를 총괄하는 동인도회사를 설치하여 본격적인 범세계적 무역 활동에 나섰고 영국이 우위를 점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되었다.


아메리카를 인도 땅인 줄 알고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다.

식민지 지배를 위해 설립한 카리브해 쪽 섬에 만든 무역회사는 서인도회사라 칭했다.

동인도회사는 물론 인도에 있는 것이다.


대항해시대에 유럽에서 힘깨나 쓰는 나라들은 대부분 대양으로 진출하였고,  당시 유럽으로 간 막대한 황금과 은으로 인한 가격 혁명과 신흥 자본 세력의 대두, 봉건 세력의 몰락과 함께 유럽은 제국주의로 가게 된다.

이 대항해시대는 유럽인들이 다른 세계와 문명보다 자신들이 낫다는 백인 우월주의의 시발점이 된다.

대항해시대를 뜻하는 'Age of discovery'는 '발견의 시대'라는 말로 이는 침략자이자 가해자인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고, 조상 대대로 거기 살아왔던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른 여러 피해국 입장에서는 수탈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대항해시대를 '신항로 발견시대'로 바꿨다고 한다.


파나마 운하가 생기기 전 신항로 발견시대에 유럽에서 태평양으로 나가려면 남극과 남미 남단 사이의 이 드레이크 해협을 통과하지 않고는 다른 뱃길이 없었다.

돛을 단 엉성한 목선이 남극의 모진 폭풍이 몰아치고 해류가 계곡의 급류처럼 빠른 이 거친 해협을 바람 타고 헤쳐나가는 건 목숨 내놓고 하는 항해나 다름이 없었다.


1520년 마젤란은 선단을 이끌고 대서양 연안으로 내려오다가 드레이크 해협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파도는 미친 듯이 날뛰고 바람은 돛을 부러뜨릴 듯이 맹렬히 불어와 할 수 없이 그 위에 있는 섬 사이로 선단을 몰고 들어갔다.

기상이 좀 나아지면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기로 하고 일단 하구로 들어갔는데 강이라고 생각했던 그 물줄기는 넓어졌다 좁아지며 계속 이어졌다.

계속해서 강을 따라 올라가던 마젤란 선단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광활한 태평양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사나운 드레이크 해협이 아닌, 좁지만 새로운 해협을 발견한 것이다.


마젤란 해협 발견 이후 작은 마을 푼타 아레나스는 기항한 배에서 상륙한 선원과 여인들이 모여 이고 이고 흥청거렸다.

그러나 4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14년 남북미대륙을 관통하는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자 남미대륙 아래쪽 끝을 돌아가던 영원할 것 같았던 뱃길이 하루아침에 썰렁해졌다.

어두침침한 빛의 흑백사진처럼 푼타 아레나스는 한적한 포구로 돌아와 마젤란 해협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잊히게 되었다.


'HAPPY LATIN' 호는 아름다운 드레이크 해협을 바라보며 이 뱃길을 먼저 갔던 선배들을 기리며 씩씩하게 항해했다.

그들이 바다에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발자취가 해도로 남아 우리 후배들이 안전운항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그 칠레 남쪽 끝 마젤란 해협에 있는 인구 10만의 도시 푼타 아레나스.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와 함께 지구 최남단 도시인 이곳에 한국 '신라면 집'이 있다.

지구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한국 식당인 셈이다.

칠레에서 해산물을 한국에 수출하던 한인이 한국 먹거리가 전혀 없는 이곳에 식당을 열었다.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계란을 풀어 파를 넣은 일반 라면과 짜장 라면, 삼각 김밥 등이다.

한국과 거리가 워낙 멀어 한국 라면 수급이 여의치 않아 면은 현지 라면으로 대체하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수프를 넣고 고기와 채소를 넣은 다국적 라면을 팔고 있다.

현지인들은 매운맛보다는 약간 단 것을 좋아하기에 그들의 기호에 맞게 매운맛을 조절해서 끓여주는데 중독자 수준의 현지인 손님도 꽤 많다고 한다.  

라면 수급이 여의치 않아 떨어질 때도 있다 보니 그야말로 없어서 못 팔 지경이란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현지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고 한다.

손님 대부분이 현지인이지만 이곳에 여행 온 한국인들이 반가워서 꼭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식당 벽에는 이곳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들어와 라면을 먹고 간 한국인 여행객이 남긴 글이 빼곡하게 붙어있다.

남극으로 가는 길목이라 교대하는 세종기지 대원들이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 반대편까지 오느라 먹는 게 다 낯선 여행자들에게 이곳의 얼큰한 라면 맛은 속을 달래주어 좋고,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있는 주인장도 식당을 찾은 고국 손님들과 모처럼 한국말로 대화할 수 있어 무척 반갑다고 한다.


요즈음 캄보디아에도 현지인이 프랜차이즈 한 서울 라면집이 박카스 열풍과 함께 전국을 지배하며 캄보디아 젊은이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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