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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01. 2024

로사리오 항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파라과이에는 반세기 전인 60년대 초에 우리나라의 농업 이민단이 이민선을 타고 들어갔다.

아르헨티나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천여 km 떨어진 라 마르께에 400ha의 토지를 무상으로 받았으나 땅이 척박하여 호미나 곡괭이로 농사를 짓기 힘들었다.

먹고살기 위해 도시로 나와 날품 일도 하한국에서 갖고 온 물건을 행상으로 팔아 입에 풀칠했다고 한다.

그러다 봉제 하청 일을 하게 되었다.

작은 기적은 자수 아주머니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민 가기 전에 자수를 배웠던 아짐이 하루 일해 며칠 치 일당을 번 것이다.  

노는 동네 한인 여인들에게 자수를 가르쳐 곧 활기를 띠게 됐단다.

남자들은 날품팔이, 벤데라는 옷 보따리 장사 등을 하다가 유대인들이 장악했던 아베자네다, 온세 등의 의류 시장을 야금야금 잠식해 지금은 상권의 대부분을 우리 교민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상가 주인은 대부분 그 가게에서 옷 만들어 팔던 유대인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고생해서 옷 만들고 열심히 팔아 유대인 주인 배를 불려준다는 말이다.


까라보보에 있는 백구 한인촌은 그런 한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시내에서 109번 버스를 타고 오가다 보니 백구촌이라 불리게 된 모양이다.  

이 지역 치안이 좋지 않아 한인 가에서는 경비를 세우고 문 앞에서 신분 확인이 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

교민들은 대부분 의류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며 고등 교육을 받은 한인 1.5, 2세들이 주류사회에 많이 진출해 있다.

우리 포 사회는 의류업으로 비교적 단기간에 잘살게 되었으나 중국산 저가 의류가 밀려와 미국 LA 자바 시장, 브라질 봉헤치로 등과 함께 한인 3대 의류 시장으로 꼽히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류 시장이 전보다 위축되었다고 한다.


내가 탄 화물선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옥수수 반 짐을 싣고 또다시 뱃고동을 힘차게 울리며 라플라따 강을 나와 로사리오 항으로 향했다.

출항할 때 부두에 작별 인사하러 나온 금발의 다나에 가르시아.  

디아블라같이 조용히 하얀 손을 흔든다.

다나에 마음에는 나그네인 마도로스가 어떻게 보일까?  

코라손은 심장이며 곧 마음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는 머리에서 가슴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지름길인 사랑.


아르헨티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자 파라냐 강을 낀 항구 로사리오.

그곳으로 가는 강 옆은 광활하고 푸른 초원이다.  

어쩌다 보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집들.

그리고 도도하게 흐르는 황토물.  

의사였던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로 남미 여행하다가 부조리한 세상에 눈을 뜨고 쿠바에서 혁명가로 살다가 간 그의 생가가 근처에 있다.

잘 정돈된 도시 로사리오는 독일 이민 후예가 많이 사는가 보다.  

독일풍 황톳빛 건물들이 간간이 보이는 스페인풍의 건물들을 압도한다.


입항 수속을 마치고 이미 연락해 놓은 선식 업자에게 부식을 주문한다.  

선원들이 먹어야 할 소고기와 채소 등을 넉넉히 주문한다.

식사할 때 일항사가 '아르헨티나만큼 소고기가 싼 곳이 없을 거예요. 상륙 나가 마트에서 보니 송아지 갈비 한 짝에 만 원밖에 안 치던데...'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듯이 웬만한 나라보다 훨씬 싸다.


부둣가로 철길이 놓여 있다.

무엇에 홀린 듯 철길을 따라 걸어간다.  

들길 따라 걷는 것 못지않게 철길 따라 걷는 것도 운치가 있다.

누군가 못을 선로 위에 놓아두었는지 납작하게 눌려있다.  

누구나 꿈 많고 놀기 좋아했던 어린 시절.

어릴 때 살던 집 옆 전찻길에서 구들과 큰 못을 선로 위에 놓고 전차가 지나가면 납작하게 눌린 것을 보고 아주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거대한 곡물 사이로 옆 양지바른 곳에 비둘기 한 떼가 떨어진 곡물 알갱이를 쪼아 먹고 있다.

다람쥐보다 더 큰 쥐도 부지런히 뭔가를 입에 넣고 있다.  

뻬루 요리 중 하나인 꾸이를 생각나게 만드는 토실토실한 놈.

꾸이는 쥐 종류지만 집에서 풀을 먹여 키워 뻬루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상륙 나가서 한 번 먹어봤는데 선입감이 그래서 그렇지 술안주로 훌륭했다.


철길 따라 한참 걸어가다 보니 로사리오의 아름다운 달빛이 어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안 준다.

문득 캐나다 서해안의 오지 항구 키티마트에서의 달밤이 생각난다.  

로키산맥 줄기에 지천으로 있는 침엽수에서 뺀 메탄올과 에탄올을 일본, 한국, 대만과 중국에 실어 나르기 위해 자주 다녔던 그 항구.


부두에서 상당히 떨어진 시내에서 혼자 맥주 한잔에 긴 항해의 스트레스를 풀고 귀선하는데 길옆 쓰레기 더미에서 덩치 좀 있는 짐승이 부스럭댄다.

‘이 자식이 군기가 빠져서 형님이 지나가시는데 비키지도 않아.’ 하고는 길가의 돌을 집어 던지려는데 뒤돌아보는 놈이...

작은 곰이었어!  

술이 번쩍 깨서 수고하는 당직자 주려고 산 베이컨, 햄, 사딘 통조림 등 일용할 안줏거리를 다 팽개치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는 총알같이 도망간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재수 없게 곰한테 뒤통수라도 한 방 맞았으면 어찌 됐을까 등골이 쭈뼛해진다.  

너무 멀리 나왔나.

이구아나가 시내 공원에 사는 나라에서 밤에 무슨 희한한 것이 마실 나와 나를 곤란하게 할지 모르니까 아쉽지만, 이만 배로 돌아가야겠다.  

수풀 넘어 아름다운 저 달, 그 구름 위로 남반구의 무수히 많은 별이 반짝이는 것이 보인다.


프로방스의 양치기는 몇 날 며칠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산에 있는 목장에서 개와 함께 양을 돌보며 살았다.

목동은 외롭게 목장에서 홀로 지내면서 가끔 양식을 가져다주는 사람들에게서 아랫마을 소식을 전해 듣곤 했다.  

그중에서 근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소식을 듣는 게 큰 낙이었다.

양치기 소년에게 그 아가씨는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씨가 좋지 않아 양식이 도착하지 않아서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주인집 아가씨가 맑고 경쾌한 노새 방울 소리와 함께 나타났다.  

식량을 목동에게 주고 아가씨는 다시 노새를 몰고 마을로 내려갔으나 개울 물살이 세 다시 목장으로 돌아왔다.

목동은 정성스레 먹을 것과 잠자리를 마련해주고 아가씨를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스테파네트 아가씨는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나와서 양치기가 있는 모닥불 옆에 앉았고, 양치기는 아가씨에게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피곤했던지 양치기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그 소년은 별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별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와 자기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양’의 순수함과 ‘별’이 상징하는 순결함이 합쳐 어린 목동의 아름다운 사랑을 대자연과 함께 서정적으로 쓴, 다들 어린 시절 가슴 시리게 읽었던 알퐁스 도데의 단편 ‘별’이다.  

별이 빛나는 밤에 프로방스 산골 양치기의 순결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글과 함께 늘 우리 마음 한편에 남아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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