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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02. 2024

삼십 년 만에 만난 전설 같은 사랑


"Vamos juntos a Corea, ¿Si?"

같이 한국에 가자고 P형의 손을 잡고 애절하게 말하는 앳된 목소리의 마르따 양.

그리고 대답을 바로 못 하고 생각에 잠겨 있는 P 형.

남미의 한 아름다운 해변.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더라도 야자수 그늘 밑은 늘 시원했다.

하얀 갈매기가 쉼 없이 울면서 근처를 날아다녔다.


이제 스무 살을 갓 넘긴 여대생 마르따 양은 한국에서 온 젊은 항해사 P 형과 사랑에 빠졌다.

처음 볼 때부터 자국인과는 달리 신비스럽게만 여겨지던 동양의 청년.

서로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아담한 체구와 작은 눈, 미소 지으며 말하는 이지적인 모습에 은근히 반했다.

눈가에 이슬이 가득한 마르따 양의 애잔한 모습을 더는 바라볼 수 없어 P 형이 입을 열었다.

"기다려, 다시 올게..."

멀리 P 형이 타고 대서양을 건너온 커다란 화물선이 하역을 마치고 출항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대서양의 야자수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이 항구에 화물을 가득 싣고 온 큰 배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긴 항해와 단조로운 생활에 지친 선원들을 풀어주었다.

선원들은 이국의 작은 항구에서 흙냄새를 맡기 위해 삼삼오오 상륙하여 시내 구경을 하고 쇼핑도 하면서 거리를 쏘다녔다.

해군 장교 출신인 P 형은 전역하자마자 꿈에 그리던 외항선에 삼등 항해사로 승선하여 그 배에서 육 개월 만에 이등 항해사로 승진하였다.

당시 세계 해운 시장이 호경기라서 배는 계속 늘어나는 데 경력 있는 선원들은 아주 부족했었다.

기술이 고 성실하면서도 저임금이었던 한국 선원들이 외국 선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엄청나게 많은 해외 송출선들이 쏟아져 나와 해기사들이 부족하여 경력만 쌓으면 진급이 쉬웠다.

더군다나 P 형은 해군 군함 승선 경력이 이 년이나 되니 빨리 진급할 수 있었다.

선원 인력 부족한 것도 마찬가지라서 조리사 자격증이 없어도 라면이라도 끓일 줄 안다면 배의 조리원으로 채용했다.

그렇게 처음 승선한 까까머리 청년 급료가 당시 대졸 초임보다 많을 때였다.


당시 재미있는 일화 하나.

그리스의 커가던 어느 선박회사에서 중고선을 도입하였으나 일할 자국 선원이 부족하여 어찌어찌 알게 된 한국의 H 선박 회사에 선원 송출을 의뢰하였다.

이 회사 역시 이제 막 차린 회사여서 기회다 싶어 경력 있는 선원들을 선발하여 웃돈을 주기로 하고 배로 보냈다.

사운이 걸린 만큼 선기장과 책임자들에게 최선을 다해달라고 신신당부해서 말이다.

인수할 배에 한국 선원들을 먼저 보냈는데 그리스 선주가 좀 늦게 왔다.

그동안 우리 선원들이 낡은 배의 녹을 벗겨내어 페인트칠하고 깨끗이 정비하였는데, 선주 측 인수 담당자들이 서류가 다 준비되어 항구에 왔으나 자기 회사 배를 찾지 못하는 희극이 벌어졌다.

자기들이 인수한 낡은 배는 안 보이고 다른 새 배가 턱 하니 버티고 있는데 설마 저 배가 자기들이 인수한 배라고 상상하질 못했다나.

해운업이 발달했던 그리스 선원들도 그렇게 빨리 하지 못할 일을 우리 한국 선원들이 단시간에 해놓았던 것이었다.

당연히 그 회사에서는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고 빈둥빈둥하는 자국인들을 끄집어 내리고 우리 한국 선원들로 바꿔나갔다.

그 후로 그 한국 송출회사는 보유 선박이 백여 척이 훨씬 넘는 대형 송출 선사로 자리 잡았다.

글쓴이도 그 회사에서 두 척의 배를 탄 적이 있다.


아무튼, 그렇게 상륙을 나왔던 이항사 P 형은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발랄한 현지 여대생들을 알게 되어 당직만 끝나면 그녀들과 어울렸고 그중에서 동양에 관심이 많았던 마르따 양과 친하게 되었다.

라틴의 정열적인 아가씨답게 마르따 양은 자기 맘에 쏙 드는 P 형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 역시 이국의 멋진 아가씨에 반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시간을 보냈었는데, 승선 계약에 묶인 몸, 배는 하역을 마치고 다음 항구로 출항해야만 했다.

'일단 기다려 줘. 꼭 다시 올 거야.'라고 말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배로 돌아갔다.

마르따 양은 온몸으로 흐느끼며 '떼 아모!(사랑해요!)'라는 말을 수없이 읊조렸고...

둘은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오대양 육대주를 넘나들며 편지로 이어졌다.


그 후 P 형은 배를 좀 더 타다가 사관들을 교육하는 해기사 훈련원의 조교수로 임용되어 근무하다가 교수로 진급하여 평탄한 세월을 보내며 마르따 양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행복할 줄만 알았던 자기 인생에 어쩌다 암운이 끼어, 장애우로 태어난 자식과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와 셋만 남게 되었다.

재혼은 꿈도 못 꾸고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보니 어느덧 황혼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청년 시절에 잠깐 사귀었던 이국의 옛 연인 마르따 양이 떠올랐다.

늘 기억의 편린 속에 남아 다시 가고 싶은 남미와 그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낙이 없는 세월을 보내느니 한번 만나나 보자는 생각에 옛 주소가 적힌 편지 한 장 달랑 들고 남미로 떠났다.


예전에 둘이 거닐던 그 바다, 그 해안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고, 수 없이 가 봤던 그녀의 집 대문을 두드리니 아니, 이럴 수가...

세뇨리따 마르따의 모습에서 약간의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을 뿐, 예전 모습 그대로 웃으며 마치 어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 같이 '세뇰, 이제 오는 거야?' 하며 반갑게 맞이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의 사랑을 굳게 믿고 P 형이 돌아올 거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공도 Corea에 관련된 것을 공부해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한다.

그가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삼십여 년이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그가 돌아와 그녀 집을 찾지 못할까 봐 이사도 가지 않았다 한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세월이란 것이 무 자르듯이 딱 금이 그어지던가?

다 오늘의 연속이지.

마르따 양도 그러했던 모양이다.

'내일은 내가 사랑하는 P가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살다 보니 세월이 그렇게 지나는 것도 몰랐나 보다.


초로의 P 형과 중년에 접어든 마르따 양의 감격스러운 재회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둘은 부둥켜안자마자 시공을 떠나 예전의 젊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름 위에 뜬 기분으로 며칠을 지낸 후 한국에 남아 있는 장애우 아들과 몸이 불편한 노모에 대해 말하였단다.

마르따 양은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며 단호하게 같이 살자고 말했다.

그리하여 고국에서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몸이 불편한 두 식솔을 데리고 한국을 떠난 P 형.

그들의 결혼식도 그렇게 전격적으로 치러졌단다.

그들의 오랜 사랑을 알고 있던 가까운 친지들이 참석한 조촐한 결혼식은 그 어느 성대한 예식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지금은 한적한 곳에서 글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사랑하는 Profesora 마르따의 출퇴근도 돕고,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삶의 기쁨을 만끽하며 감사하게 살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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