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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May 07. 2024

체로키 족과 인디언 보호구역


뉴욕 항에서 뉴올리언스 항까지 2,000해리 정도 된다.

시속 15노트로 달리면 6일이면 도착한다.

'HAPPY LATIN' 호는 공해상으로 나와 전속으로 항진한다.

대서양의 네이비블루 색 바다는 잔잔하고 가끔 돌고래 떼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리 배보다 먼저 가려고 속도를 내는 것이 보인다.


모처럼 나른한 토요일을 맞아 사관 식당에서 싸롱사관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끝에 캡틴이 일항사에 묻는다.

"어이 쵸사, 학생 때 '인디언 레저베이션'이란 노래 들어 봤지?"

"아, 네! '체로키 피플~ 체로키 네이션~ 윌 리턴~ 윌 리턴~~~', 학생 때 상륙 나가면 음악다방에서 많이 들었죠."

항사가 짜자잔~ 대답하자 캡틴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영화배우 케빈 코스트너 알지? 그 사람이 '늑대와 춤을' 찍을 당시 자신이 체로키 족 후예라고 말했어요."


지금 'HAPPY LATIN' 호가 가고 있는 뉴올리언스의 위쪽에 있는 오클라호마 주에 체로키 인디언의 보호구역이 있다.

강제 이주해 온 체로키 족이 1839년 만든 마을이다.

체로키 족이 지은 법원 빌딩은 오클라호마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건물이라고 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미 국무부가 지정한 아메리카 토착민이 사는 지역이다.

지금의 조지아 주에 살던 체로키 족 영토 주변에 금이 발견되면서 미국의 첫 번째 골드러시가 시작되고 백인들이 몰려왔다.

체로키 족은 저항했지만, 강력한 미국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17,000여 명의 체로키족이 4개월 넘게 2,000여 km 거리를 대부분 걸어서 이동했다고 한다.

출발 전 수용소에서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이동 중에도 굶주림과 병으로 죽어 모두 사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체로키족의 강제 이주를 'Trail of tears, 눈물의 길'이라고 부르는데 나라를 잃었던 우리 조상도 그랬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이들의 고난은 실로 끔찍했다.

이후에도 많은 인디언 부족이 강제로 이주당했다.

미국 정부는 오클라호마 주를 인디언만이 거주하는 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백인들이 계속 몰려들자, 인디언 보호구역을 또 줄여버렸다.

미국의 역사는 영국인과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침략해 토착 원주민과 삼백여 년 동안 벌인 전쟁과 살육의 기록이다.

탐욕스러운 백인들이 원주민 땅을 침략하고 인종 청소를 한 치욕의 흑역사를 안고 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란 말은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을 인도로 착각하여 원주민을 인디오라고 부른 것이 인디언이 된 것이다.

정작 인도 사람은 기가 찰 일이다.

빨간색 염료와 치장을 좋아하는 북미 원주민을 레드맨이라고 부르다가 미국에서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캐나다에서는 퍼스트 네이션스라고 말하기도 한다.

유럽에서 먹고살기 힘든 이들이 북아메리카로 이주하는 숫자가 늘어날수록 원주민과 영토 싸움은 더 심해졌다.

이민자들은 원주민 부족을 몰아내고 북미 지역 영토를 차츰 늘려간다.

골드러시와 서부 개척 붐이 일어나면서 백인과 원주민들은 거세게 맞싸웠으나 무기와 숫자에서 약세인 토착민이 결국 황무지로 밀려났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한때 천만 명이 넘었는데 중남미에서 전파된 구대륙 전염병으로 많이 죽었고 유럽인들이 북미에 도착했을 당시엔 몇백만 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콜럼버스 시절의 유럽 도시는 하수 시설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무척 더러웠다.

가축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던 유럽인들에게는 동물 면역력이 있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런 질병에 취약해 전염병이 퍼지면 떼죽음을 당했다.

북미에서 이민자는 쉽게 토착민 인구를 압도했다. 

이들은 스페인이 지배한 라틴아메리카에서 공존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자신이 살기 위해 북미 원주민들을 쫓아냈다.

특히 미국이 독립하면서 영토 확장과 서부 개척으로 앤드루 잭슨 대통령 때는 원주민 땅을 무력으로 빼앗고 황무지로 옮겨가라 했으며 저항하면 군대를 보내 싹 쓸어버렸다.

저항하다가 학살당하고, 수천 km를 이주하는 고된 여정에서 많은 원주민이 죽었다.

그 결과 16세기경 멕시코를 포함한 북미 인구가 3천만 명 이상이었는데 인디언 학살 전쟁 후 140만 명까지 줄었단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1928년에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21세기 초 아메리카 원주민은 미국에 오백여 부족 약 삼백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그중 백만 명 이상이 삼백여 개의 원주민 보호구역에 거주한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자치권을 인정받아 주와 별개로 원주민들만의 행정부와 사법부, 의회가 있고 법에 따라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한 부족 행사나 합법적 카지노 등을 운영한다.

보호구역에 사는 원주민은 연방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으며 투표권도 없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미국 국민들이 누리는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전기와 식수 사정조차 열악한 형편이다.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미국 원주민 보호구역 대부분이 무료 교육 혜택은 받으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해 나이 든 계층은 무위도식하며 마약과 알코올에 찌들어 단명한다.


나바호 족은 미국 남서부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 부족이다.

등록된 부족 인구는 약 30만 명으로 가장 큰 부족이고 넓은 지역에서 산다.

2차 대전 때 나바호 출신 원주민이 미해병대의 Code Talker 통신병으로 참전하여 오키나와, 사이판 전투 등에서 맹활약했다

일본군은 나바호 말로 만든 새로운 암호를 도저히 해독할 수가 없었다.

당시 무선전신은 수신기만 있으면 누구든 들을 수 있어 전문을 암호로 바꾸어 송신했었다.

나바호 코드 토커는 2차 대전이 끝나고 한국전과 월남전에서도 활약했다.


사실 피부가 까맣든 노랗든 모든 인류가 같은 존엄성을 지녔다고 인정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만민 평등 선언이 UN 출범 후에 나왔다.

20세기 중반에야 미국 의회에서 북미 원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준 것에 사과했다.

2010년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워싱턴 D.C.의 의회 묘지에서 체로키 등 원주민 부족 대표들이 참석한 행사에서 과거 원주민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폭력행위 등에 대해 사과하고, 원주민들의 권익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해 미정부가 노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세상사가 늘 그렇듯이 한 번 잘못 끼워진 단추는 계속 어긋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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