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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은 Jul 30. 2022

엄마, 이러지 마세요

 엄마가 미국 출장을 가는 내 아들 즉 손자에게 드시고 있는 멜라토닌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좀처럼 없는 일이다. 다행히 호텔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 똑같은 제품이 있어 쉽게 두 통을 사 와 전해드렸다. 얼마 줬다니 하고 물으시길래 또 시작하시는구나 하고 얼마 안 하니까 그냥 둬하고 말았는데 다음날 아침 일찍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는 다짜고짜 내 손주 바꿔라 하셨다. 

 

 뭔 일인지 알았지만 싱갱이 하기 싫어 그냥 전화기를 건네줬다. 나랑 다르게 유들유들하니 한참 웃으며 얘기하던 아들은 "할머니, 그 돈을 받으면 저 쪽팔려요. 정 그러시면 밥 사 주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밥 먹는 걸로 날 닦달하시겠구나.


 밥 먹어야지를 몇 번 듣고 여러 차례 서로의 스케줄을 맞춰 보고야 겨우 시간을 정했다. 직장인들 바쁜 시간을 피해 12시 반쯤 집 앞에서 우리 가족과 엄마랑 만났는데 얼라, 엄마 광대에 핏딱지가 앉은 기다란 상처가 보였다. 다들 깜짝 놀라 이게 뭔 일이냐니 오늘 아침 붓글씨 쓰러 가다 넘어지셨다고. 앞으로 고꾸라 지면서 안경다리에 광대뼈 근처 피부가 찢어져 피가 철철 나는 바람에 지나던 사람들이 다 모여 도와주었단다. 기막혀! 


 전화를 했어야지 왜 가만 계셨냐고 화를 냈더니 그래 봐야 너 놀랄 텐데 뭐하러 그런 일을 하냐 신다. 엄마도 몰랐는데 까만 티셔츠에 핏자국이 여러 군데 남아 있었다. 우선 밥을 먹고 병원에 가자니까 그냥 이렇게 나으면 된다고 고집. 멜라토닌 값에 네 배는 들었을 점심을 먹고 남편과 난 고집부리는 엄마를 타일러 근처 흉터 전문 외과로 갔다. 상처가 깊고 많이 벌어져 열 다섯 바늘을 꿰매고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안 가도 되는 걸 너 때문에 끌려갔다고 투덜투덜. 다음 날이 되어서야 가길 잘했다 하신다.


 며칠 소독하러 병원 갈 때마다 너 고생시킨다 되풀이하는 건 그저 하는 노래거니 하고 넘기고 마는데 비싼 병원에 와서 돈 많이 들었다 하는 건 좀 괴로웠다. 얼굴인 데다 비주얼에 진심인 엄마를 생각해 일부러 간 병원인데. 실밥 빼고 나니 이제 다시 다니시던 붓글씨 교실이며 성당이며 마트로 나가셔야 하는데 겁이 나신단다. 자꾸 다리에 힘이 빠지고 발끝 감각이 무뎌진 것 같다고. 그러고 보니 엄마 신발이 오래전부터 신던 싸스(SAS)다. 비싼 만큼 편한 신발이라 신으시지만 투박한 가죽이니 더 무딘가 싶어 내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신어 보시라 했다. 참 가볍고 편하다고, 끈이 있긴 해도 그냥 폼으로만 있어 신고 벗기도 편하겠구나 하시길래 옳탓구나 싶었다.


 난 벗고 신기 편한 운동화만 신고 다니는데 몇 달 전 코스트코에 스케쳐스 운동화를 세일하길래 두 켤레를 사다 두었다. 하나만 사려고 어느 게 더 나아 보여? 하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더니 둘 다 사 그래서 둘 다 샀다.

어느 걸 살까? 했던 사진


 그중 까만 것은 신고 있고 하얀 건 여름에 신어야지 하고 뒀는데 얼른 꺼내 엄마네로 달려갔다. 진짜로 달려갔다. 깜짝 놀라는 엄말 앉혀 놓고 신겨보니 딱 맞고 참 좋았다. 네 걸 왜 내가 신냐고 난리인 엄마 더러 내가 여분으로 사 둔 거니 제발 신으시라, 얼마짜리냐 고 자꾸 캐물어 3만 원 안 줬다 하니 뭔 운동화가 그리 비싸냐, 이거 신고 열심히 걸으시면 그걸로 됐다 하니 나도 운동화 있다 신발끈 매는 게 힘들어 안 신지 하는 말 로날 괴롭혔다. 그러면서도 얘, 이 운동화는 끈이 폼으로 달렸구나 참 신기하다 하면서 좋아하셨다. (엄마 돈으로 산 싸쓰 신발은 20만 원이 넘는데 내가 사는 3만 원짜리 운동화가 왜 비싸다는지)


한참의 싱갱질을 하다 결국 신겠다 고맙다 하시는 걸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참 좋았다. 밤에 자기 전에 기도하면서 울 엄마가 이렇게 조금 유해지셔서 참 감사합니다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9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잠깐 건너오시겠다고.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전날 잠이 안 와 30분밖에 못 자고 아들 내보내고 잠깐 눈 좀 붙이려 하는데. 집에 오신 엄마 손에 봉지가 들려 있었다. 모양을 보니 운동화였다. 기 막혀 입을 벌리고 쳐다보는 내게 '내가 무슨 망령이 들었나 보다 네가 신으려고 사 둔 운동화를 염치없이 받아 신으려고 했으니,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 내가 이 운동화를 신으면 얼마나 신겠니 내가 정신이 나간 모양이다' 타령을 하신다. 참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밤새 잠 못 자고 생각했는데~~ 난 그 소리 들으면 제발 밤엔 생각 좀 하지 마 하고 화를 내는데 이번엔 그 소리도 안 나왔다. 몇 번을 다시 말해도 소용없이 엄마는 그대로 집으로 가셨다. 


 맥이 빠져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날 보고 남편은 걱정 말고 자기한테 맡겨 두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루 종일 마음이 산란했다. 저녁 시간이 되니 남편은 끓여 두었던 홍합 미역국을 들고 (내가 다 먹을 거야 갖고 가지 마 하고 유치하게 화를 냈다) 엄마네로 건너갔다. 현관에 고대로 있던 운동화 봉지도 같이. 한참 후 돌아온 남편 손엔 빈 냄비뿐이었다. 그래도 암말 하기 싫었다.


 나중에 물으니 '어머님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옳지요. 그런데 어머님은 물건만 생각하고 사람 마음은 생각 못 하십니다. 그 운동화가 삼천만 원짜리도 아니고 대은이가 엄마 운동화 신겨드리고 얼마나 좋아했는데 그걸 무시하십니까 어쩌고 저쩌고' 했단다. 


 며칠 엄마네 안 갈 거다. 앗, 내일이 일요일이구나, 성당에서 만나겠지만 안 웃을 거다. 감사기도를 취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뭐 엄마를(딱 엄마만) 구슬리는 재주를 지닌 남편을 주셨으니 그냥 넘어가야지.


 그런데 엄마 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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