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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Aug 31. 2021

2화. 어디 가서 절대 글쓰지 말라고요?

오늘도, 이 기자! - 서른중반 늦깎이 신입기자의 좌충우돌 성장기2

Chapter 1. 이 기자, 어떻게 기자가 된 거야?




어디 가서 절대 글 쓰지 말라고요?



 서울 변두리에 있는 S단과학원. 한 겨울 추위에도 새 학년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분주함은 뜨거웠다. 특히 200여명의 수강생이 빼곡히 들어찬 겨울의 강의실은 학생들의 체온만으로도 후덥지근했다. 


당시 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방학을 이용해 학원에서 국어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다. 학원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수학 못지않게 국어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어를 제대로 못하면 좋은 대학에는 입학이 힘들 거라나. 전교에서 늘 1등만 하는 친구를 따라, 선생님의 으름장이 두려운 나머지 나 역시 남들 하던 대로 국어과목을 수강했다. 평소 책도 잘 읽지 않는 나에겐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매주 걷어 첨삭해주는 논술 답안지 중 하나를 굳이 우리 앞에서 읽겠다고 했다.

“지난주 여러분이 제출한 숙제 있지? 그 중에 하나를 읽어줄 텐데 잘 들어봐. 이름은 공개하지 않겠어.”

이윽고 선생님은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문장으로 가득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글을 읽어가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어이없는 웃음이 섞였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따라 함께 웃었다. 


다 읽고 난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너희는 알겠니? 내가 읽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교실 가득히 울렸다.  


독설은 끝나지 않았다. 

“자기 얘긴 줄도 모르고 웃고 있네, 쯧쯧. 제출한 답안지는 첨삭이 끝나는 대로 돌려줄 테니까 잘들 확인하고, 특히 이 글을 쓴 사람은 앞으로 어디 가서 절대로 글 쓰지 마라!”

일주일 후, 조교가 답안지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아, 난 절대 어디 가서 글을 쓰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얼굴이 새빨개지고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누가 나를 볼까 봐 태연한 척 했다. 내 옆의 친구는 무심한 듯 말을 내뱉었다. 

“지난주에 선생님이 읽어 준 글, 도대체 누가 썼을까?” 


그 이후 난 학원에서 두 번 다시 국어 수업을 듣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전교 1등을 놓칠 줄 모르는 단짝친구와 알게 모르게 비교당하는 듯한 기분이 반갑지 않던 차였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선생님을 마주할 용기는 없었다. 


자라나는 아이들한테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건만, 난 꽃이 아니라 쇠창살에 찔린 기분이었다. 

‘그래, 나도 글 쓰고 싶은 마음은 없어. 누가 쓰겠대? 자기가 뭐라고 그런 단언을 하는 거야!’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친구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던 기억. 하지만 그 상처는 생각보다 꽤 깊었다. 살면서 실패할 때마다, 내가 작고 나약하게 느껴질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은 너무나 생생하게 나를 괴롭혔다. 선생님의 비웃는 듯한 표정, 나를 놀리는 듯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친구의 ‘누구였을까?’ 하는 목소리, 모두가 사라질 듯 사라질 듯 내 옆에 끈질기게 머물렀다. 


그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두서없이 쓴 글의 주인공이 20년 후 글을 쓰며 먹고 살 줄은. 때론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한 곳이 세상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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