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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Sep 02. 2021

4화. 곰처럼 100일간 글을 쓰다

오늘도, 이 기자! 서른중반 늦깎이 신입기자의 좌충우돌 성장기4

곰처럼 100일간 글을 쓰다 



 삶을 변화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부터 돈은 그저 ‘배우고 싶은 것과 읽고 싶은 책을 위한 지불수단’으로 쓰였다. 여기에는 당연히 글쓰기 수업도 포함되었다. 글쓰기 책에는 저자가 운영하는 수업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책을 홍보수단으로 활용한 것이었지만, 알면서도 수업에 자꾸 관심이 쏠렸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진솔한 내용으로 ‘글쓰기가 얼마나 재밌는지 아니? 너도 한 번 시작해 봐!’라며 날 유혹하고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인터넷으로 수업을 찾아봤다. 마침 새로운 수업 개강을 앞두고 있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수강료가 꽤 비쌌지만 고민하지 않고 단박에 질러버렸다. 


속전속결로 수업을 신청했지만 맘 한 켠은 불안했다. 학창시절 평생 어디 가서 글 쓰지 말라는 저주 같은 말이 머릿 속을 맴돌았다. 자신은 없지만,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저주를 풀기 위해서라도 이 수업을 반드시 들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온갖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다들 필력이 엄청나면 어쩌지.’

‘나만 글쓰기 실력이 형편없으면 어쩌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못쓴다고 놀라면 어쩌지.’

‘나만 글을 못 써서 수업 분위기 망치면 어쩌지.’


어쨌든 개강 날이 왔다. 수강생은 나까지 다섯 명이었다. 강남에서피부과를 운영하는 서울대 출신 병원장을 비롯해 이미 출간 도서가 있는 작가까지 나를 제외하면 꽤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난 더 기가 죽었다. 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루저 같았다. 

“다들 숙제로 내준 글 써 왔죠? 돌아가면서 읽어볼까요?”

선생님은 각자가 써 온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으라고 했다.

세상에. 글 쓰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걸 또 사람들 앞에서 읽으라니. 역시 난 글쓰기와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머릿속은 점점 혼돈으로 가득찼다. 쥐 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사람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어라? 그런데 이상했다. 나보다 한 없이 높아 보이는 그들의 글이 내 것보다 형편없게 들리는 건 착각일까? 뭔가 어설프게 들리는 각자의 필력에 조금씩 용기가 났다. 마법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트라우마는 정면으로 맞서야 치유되는 모양이다. 질기게 따라붙으며 날 괴롭히던 저주는 그날 이후 바람빠진 풍선처럼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했다. 그 날을 터닝 포인트로 난 못 쓰던 잘 쓰던 재미있든 말든 열심히, 아주 열심히 글을 써갔다. 때론 새벽이 다 되어서야 글을 완성할 수 있었고, 글을 쓰다 아픈 기억이 떠오를 땐 잠시 눈물 흘린 적도 있었다. 겨우 완성해 간 글을 사람들 앞에서 읽다 목이 메여 다 읽지 못하고 펑펑 운 날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렇게 난 내 상처를 보듬어갔다.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됐다 싶을 무렵 나에겐 또 하나의 바람이 생겼다. 바로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취미가 아닌 글 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는 야무진 꿈이었다. 동시에 비현실적인 꿈이기도 했다. 떠오르는 건, 작가와 기자뿐이었다. 일단 작가는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아무리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해도 내가 작가를? 터무니없는 망상 같았다. 


그럼 기자는? 이미 서른 중반에 접어든 내가 기자라니.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았다. 그럼에도 이상하리만치 알 수 없는 의욕과 오기가 안에서 뜨겁게 올라왔다.

‘정신차려, 기자가 되고 싶다니. 너 서른 다섯이야.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해도 현실은 달라. 이미 니 또래들은 회사에서 과장쯤 달았다고.’ 

머리와 가슴이 매일 힘겨루기를 했지만 이성은 의외로 힘이 약하다. 열망은 아무리 다그쳐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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