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지역] <<Ringing Saga>>

by 리안


(SNS) 두산인문극장 2025 지역_전시_Ringing Saga.jpg [두산아트센터 제공] 도시 위성사진을 배경으로 한 포스터 이미지. ‘두산인문극장 2025 지역 LOCAL’과 전시 정보가 흰 글씨로 쓰여 있다. 차분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포스터


두산아트센터는 올해 상반기에 '지역'을 주제로 강연과 전시 그리고 공연을 기획했다. 지난 수요일 점심 무렵 전시장을 방문했을 때, 전시장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 덕분에 전시물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3.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Ringing Saga》, 전시 전경,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서울, 2025, 사진 고정균.jpg [두산아트센터 제공] 밝은 갤러리 공간에 다양한 조형물과 설치작품이 배치된 전시 전경 사진. 벽면엔 다수의 사진 작품과 영상이 설치되어 있다.


구동희, 김보경, 안진선, 이유성, 홍이현숙 총 다섯 명의 예술가가 참여하는 이 전시는 두산아트센터가 위치한 지역인 종로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된다. "종로라는 이 길 위에, 과연 완전히 낯선 것이 있을까?". 지난 8강의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연사들이 빼놓지 않고 언급했던 이야기 역시 우리가 강연을 듣고 있는 '종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광장시장과 전태일이 자주 가던 식당에서 누이와 재회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이 지역에 5천만 년 전에 무엇이 있었을지를 상상해 보라는 이야기도 했다. 연사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종로'에 대한 감각과 경험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종로가 가진 서사를 어떤 작품으로 담아냈을까?


1. 홍이현숙 - <광화문 정물>(2011), <피케팅>(2016)


작년 박보나 작가의 강연과 책을 읽은 후 홍이현숙의 작품들을 눈여겨보게 됐다. <여기에 부처, 박보나 2022>에는 홍이현숙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지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고 작년《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시에서 <석광사 근방>을 관람한 후 책에서 작가가 이야기했던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작품으로 접하게 되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생물, 호랑이 모형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찌나 진중하고 따뜻한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후로는 예술가 홍이현숙이 아니라 그냥 '홍이현숙'이라는 사람 그 자체가 궁금해졌다.

그런 작가의 작품을 마침 두산아트센터에서도 만날 수 있다니 평소 닮고 싶다고 생각한 그루를 만나러 가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1.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Ringing Saga》, 전시 전경,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서울, 2025, 사진 고정균.jpg [두산아트센터 제공] 넓고 밝은 갤러리 공간. 바닥에는 조형물이 놓여 있고, 벽면엔 푸른색 대형 회화와 영상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정제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전시장 사진.


<피케팅>은 4분 남짓한 영상이다. 홍이현숙은 세월호 미수습자 피켓을 들고 효자동 사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을 마주한다. 피켓을 바라보지 않은 채 지나가는 행인도 있고 피켓에 눈길을 조금 주다가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등장한다. 홍이현숙은 그의 행로를 방해한다. 피켓으로 행인의 길을 계속해서 막아낸다. 처음에는 서로가 다소 당황한다. 수 차례 행로를 방해한 후 멋쩍음과 억지로 길을 차단하지만 당황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는 피켓 뒤에서 홍이현숙의 얼굴에 약간의 미소가 보인다. 그리고 피해 가려는 사람과 길을 막으려는 사람의 몸짓이 겹쳐지면서 왈츠를 추는 모습으로 보이게 된다.


서로가 다른 목적을 가진, 아니 어쩌면 행인은 피켓을 무시하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바쁜 일이 있어 서둘러 가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길을 가다가 마주한 교차로에서 예기치 못하게 '국가 재난', '타인의 고통'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같은 공간과 지역을 살아가는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2. 안진선 - <책장>, <입구 혹은 가림막> 등


7. 안진선, 〈입구 혹은 가림막〉, 2025, 알루미늄 파이프, PE 비닐, 얼룩을 만드는 생활용품 스프레이, 가변설치(300 × 368 × 120cm), 사진_ 고정균.jpg [두산아트센터 제공] 얇은 투명 비닐과 금속 프레임으로 구성된 조형물이 갤러리 한가운데 설치된 작품 사진


전시장에 있던 작품 중 특이했던 조형물들은 모두 안진선 작가의 작품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사장 철골구조와 가림막 같은 설치물도 배기구 같은 작품도 바닥에 있는 매트리스, 서랍장은 익숙한 듯 평소와는 다른 사물로 보인다. 전시장이 공사장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쓰레기장 한가운데가 된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4. 두산인문극장 기획전 《Ringing Saga》, 전시 전경, 두산아트센터 두산갤러리, 서울, 2025, 사진 고정균.jpg [두산아트센터 제공] 갤러리 내부를 걷는 한 사람과 함께한 전시 전경 이미지. 벽면에는 사진 작품들이 길게 나열되어 있고 바닥에는 매트리스가 오각형 조형물에 기대 있다.


알고 보니 '도시 재건축의 풍경' 나타낸 작품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을 마주한 다른 관람객들은 이 풍경을 통해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까? 나에게는 이 버려진 듯하면서도 어쩌면 새로운 쓰임을 기다리는 이 물건들이 비록 물건, 비생물임에도 불구하고 도시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생물들처럼 느껴졌다.



3. 구동희 - <타불라 라사>


10. 구동희, 〈타불라 라사〉, 2023-2025, 실종자 명단으로 생성된 AI 이미지, A4 사이즈 프레임 C-print 120개, 가변설치, 사진_ 고정균.jpg [두산아트센터 제공] 갤러리 벽면을 따라 A4 크기의 인물 사진들이 가로로 길게 배열된 전시 이미지. 거리 위를 걷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담겨 있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AI생성 이미지가 나열되어 있다. 이 사진들은 총 120개로 서울 곳곳에서 날아든 실종 알림을 수집해서 이미지로 생성했다고 한다. 비록 AI로 생성된 이미지들이지만, 실종자의 모습은 지금 당장 종로 한복판에서 마주친다고 하더라도 '실종자'가 아닌 그냥 시민 중의 한 명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종자 알림을 받을 때면 남루한 행색을 하고 있거나 나이나 성별에 따라서 실종된 이유를 내 마음대로 상상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가령 10~20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봤을 때는 무작정 '가출'이라고 생각하거나 70~80대는 치매노인인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는데, 작가는 이런 실종자 알림 메시지에 담긴 정보로 실제 존재를 얼마나 잘 상상할 수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 물어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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