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아일랜드 생활, 그 시작
26살이던 2018년 10월부터 2020년 12월 29일까지 약 2년 3개월간 아일랜드에서 살다왔고 올해인 2021년 6월, 영국으로 2년간의 여정을 떠날 예정이다. 단연코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만한 좌충우돌 아일랜드 생활! 그동안 보고 느낀 것들과 외국생활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써 내려가 보려 한다.
아일랜드에 가기로 결심하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실 처음에 가고 싶었던 나라는 영국이었다. 예전부터 영국에 대한 맹신적인 로망이 있었던 나는 2016년 겨울, 실제로 영국에 가보곤 기대보다 훨씬 더 더 더 좋음에 반하고 말았었다.
그때의 내 심정이 그랬다. 하지만 좋다는 이유로 떠나기에 영국은 너무 멀었고, 너무 비쌌고, 나는 너무 쪼다였다. 당장 새로운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만 해도 똥줄이 타는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이라니. 외국 생활은 로망 속에나 존재하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런 내가 외국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그 이전부터 나를 괴롭히던 내 안의 고민 때문이었다.
나는 참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가 먹고 싶어!'라는 사소한 소망에서부터 '유럽여행을 가고 싶어!'라는 조금은 큰 꿈까지. 하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중간 과정도 없이 갑작스럽게 해야 할 일들은 많아졌다. 내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없는 삶이 반복되면서, 해야 하는 일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과제만 아니면 그리고 싶은 거 그릴 텐데...', '출근만 아니면 운동하러 가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막상 쉬는 시간이 생기면 가만히 누워서 몇 시간이고 핸드폰만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나 하고 싶었으면서 막상 시간이 나면 아무것도 안 한다니... 그런 내 모습이 이해가 안 되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우습게도 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들이 하니까,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해야 하는 일 탓을 하는 건 말뿐인 사람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이 캄캄했다. 난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하고 싶은 게 많은 나'는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일 뿐이었다. 사실 난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내가 바라는 나'와 '게으른 원래의 나'의 괴리감 속에서 자존감은 끝을 모르고 바닥으로 내려갔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
침대에서 나를 일으킬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 순간, 바쁜 삶을 핑계로 마음 가장 안쪽 서랍에 넣어놨던 여행과 영어가 떠올랐다. '여행은 언제나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라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틈만 나면 기차여행을 다녔고, 돈이 없으면 알바를 해서 유럽여행도 다녀왔다. 그냥 훌쩍 떠나고 싶을 땐 1박 2일 혹은 당일치기로라도 다녀올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영어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5살 때부터 영어학원을 다녔던 것 같다. 그 후로 꾸준히 영어를 했고 재미있고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너무 잘하고 싶었던 탓일까. 고등학교 1학년 때에는 영어 울렁증이 왔었다. 영어 단어가 해석이 안되고 글을 읽으려 하면 알파벳이 낱알처럼 날아가 버렸다. apple이 애플로 보이는 게 아니라 a p p l e라는 각각의 알파벳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수능 외국어 만점을 받은 건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이다. 그 점수에 괜스레 으쓱해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지 뭐'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그렇게 대학을 갔다. 2년 동안 교내 외국인 교류단체 활동을 하면서 내 자만심은 무참히 무너졌다. 내 영어는 시험 영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외국인 친구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듣고, 무슨 말 해야 하는지도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도무지 입이 떼지지 않던 그때 얼마나 처참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영어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나와 작별하고 싶었다.
영어를 잘하는 내가 되고 싶었다.
구구절절 말했지만 결국 영어를 잘하고 싶었고, 외국 생활을 해보고 싶었다. 그게 다다. 딱히 외국 생활에 엄청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도 좋다. 취업은... 힘들지만 우리나라만큼 맛있는 게 많은 곳도, 밤늦게까지 술 마셔도 비교적 안전한 곳도 없고. 가족들도 친구들도 전부 다 여기에 있고... 무엇보다 내가 태어난 우리 나라니까. 아일랜드에 대해서도 딱 그만큼만의 기대를 가지고 있다. 외국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니까. 가서 새로운 곳을 경험하고 싶었다. 더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제일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6살의 나는 퇴사를 하고 외국에 가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