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지 않은 나를 만난 밤
나는 낯가림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다거나 친근하게 다가가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사람에 대한 벽이 낮아진다.
기타큐슈에서 혼자 이자카야를 찾았던 밤에도 그랬다. 누가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커플이 내 옆에 앉았고, 아니나 다를까 친근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가 한국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혹시 안주 뭐 시키셨어요?"
어떤 음식을 시킬까 고민하던 내가 그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반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켰던 음식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줬다.
나는 그 보답으로 사케를 잘 모른다던 그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케를 추천해 줬다. 내가 더 고마울 정도로 그들은 너무나도 좋아해 줬고, 그때부터 사케와 일본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결혼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다는 귀여운 커플은 여행하기 좋은 일본의 다른 소도시는 어디인지, 사케를 마시기 좋은 곳은 어디인지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구글 맵에 장소까지 저장해 가며 내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여주는 모습에 나 또한 신이 났는지 참 많이도 떠들어댔다.
그날 분명 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그랬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꽤 신이 나 있었다.
한국에서 혼자 이자카야에 가서 모르는 사람과 그렇게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집 밖에 나가기 싫어하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살갑지 않은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혼자 일본을 자주 찾으면서 일본인들과는 그런 기회가 종종 있었다. 날 알지 못하는 타국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그냥 아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인을 만나면, 모르는 사이임에도 한 단계 더 가까운 느낌이 들어 오히려 더 맘이 불편해질 때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여행지에서만큼은 익명성 뒤에 숨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기타큐슈에서 만난 그 커플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로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 굳이 서로의 이름을 몰라도 우리는 즐겁게 대화했고, 남은 일정도 재밌게 보내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지만, 이상하게도 그 밤의 분위기만큼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그렇게 나답지 않은 나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