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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어려운 이유

어휘 수집이 답이다

by Jeoney Kim

아이들이,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가 공부를 왜 그렇게 어려워할까? 그저 문제집을 많이 풀고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게 능사는 아닐 텐데, 왜 이렇게 헤맬까. 내가 지난 10년간 전문지식 교육 강사로서 시간을 보내며 깨달은 건, 그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어휘 부족이라는 점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그 부족함이 얼마나 큰 벽이었는지 더욱 절감한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해안선이 완만하다", "해안선이 단조롭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솔직히 나는 그때 '해안선'이 뭔지도, '완만하다'나 '단조롭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선생님의 설명은 내게 그저 의미 없는 소음처럼 들렸다. 단어 하나하나가 이해되지 않으니, 문장 전체가 낯선 암호처럼 다가왔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열아홉 살에 생활체육지도자 시험을 보러 갔을 때다. 실기 시험이 끝나고 구술 질문 테스트를 하는데, 감독관이 척추의 '만곡'이 뭐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때 '만곡'이라는 어휘를 몰랐다.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으니, 당연히 대답도 못 했다. 아는 단어가 없으니 질문의 의도조차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들은 머릿속에 지식을 담을 '그릇'이 되는 어휘력이 부족하면, 좋은 지식도 담아낼 수 없고, 결국 공부는 그저 고통이 되고 만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어휘 수집이 답이다

독서와 토론으로 지식의 그릇을 넓히는 법


그렇다면 이 '어휘의 그릇'을 어떻게 넓힐 수 있을까? 비싼 사교육이나 닳도록 푸는 문제집으로 해결될까? 나는 단언컨대, 학교에서 정규 수업 시간보다 독서와 토론 시간을 훨씬 더 늘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게 바로 사교육 없이도 아이들이 공부의 즐거움을 알고, 스스로 성장하는 가장 강력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독서와 토론이 왜 그렇게 중요하냐고? 내 경험상 이 두 가지는 어휘력과 문해력을 폭발적으로 키우고, 궁극적으로 공부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휘는 쌓이고, 문해력은 커지고

교과서나 문제집의 어휘는 사실 좀 한정적이고 딱딱하다. 하지만 독서를 하면 아이들은 다양한 배경지식과 함께 맥락 속에서 어휘를 자연스럽게 만나고 익히게 된다. 사전을 뒤져가며 억지로 외우는 것보다, 이야기 속에서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는 게 훨씬 재미있고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꾸준히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의 문해력 곧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저절로 커져서, 어떤 글을 만나도 핵심을 꿰뚫어 보고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는 탄탄한 기반이 생긴다.


특히 아이들 간의 어휘력 차이는 단순한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건 가정에서 쓰이는 언어의 양과 질,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 부모의 독서 습관 등 일상에서 축적되는 '보이지 않는 배경지식'의 결과물이다. 이런 환경적 요소들이 아이의 어휘 그릇 크기를 결정하고, 결국 학습 능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읽은 걸 말해보는 힘

생각의 날개를 달다


어휘만 쌓아둔다고 능사는 아니다. 머릿속에만 있으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는다. 토론은 아이들이 읽은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정리해서 표현하는 연습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처음엔 읽은 내용을 단순히 요약해서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할 거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다 보면 점점 쉬워지고,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는 읽은 내용에 자신만의 생각과 느낌을 자연스럽게 덧붙이게 된다.


뭐가 좋았는지, 뭐가 별로였는지,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읽기 전에는 뭘 기대했는데 읽고 나니 뭐가 달랐는지…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게 된다. 이건 그저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지식을 능동적으로 소화하고 새롭게 만들어내는 훈련이 된다는 뜻이다.




소통은 기본, 사회성은 덤

토론은 또 다른 선물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내 의견을 존중받으며 상대방을 설득하는 과정 속에서 소통 능력과 사회성이 쑥쑥 자란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며 사고의 폭을 넓히고, 건전한 논쟁을 통해 서로의 지식을 교환하고 깊게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건 학교 성적을 넘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중요한 역량 아닐까.




성인도 예외는 없다

왜 어휘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이건 비단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어휘력 부족 문제는 성인 사회에서도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 댓글들을 보다 보면,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절감한다. 본문이나 콘텐츠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자신이 아는 한정된 어휘로만 해석해서, 심지어는 내용을 왜곡해 버리는 경우를 정말 많이 본다.


이것 또한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어떤 글이 복합적인 사회 현상을 다루며 다양한 관점을 제시했는데, 어휘력이 부족한 사람은 글의 뉘앙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한두 단어에만 꽂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비난하거나 오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개인의 이해 부족을 넘어,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건강한 논의를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도 어휘가 부족하면 그 영향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보고서 작성이 어려워지고, 정확한 지시나 피드백을 이해하지 못해 일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중요한 회의에서 오고 가는 전문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논의에서 소외되거나, 심지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매일 수많은 글을 접한다.


정확한 어휘 이해와 문해력은 이 정보들을 선별하고,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과 직결된다. 어휘력이 부족하면 가짜 뉴스나 편향된 정보에 쉽게 현혹될 수 있고, 복잡한 비즈니스 문서나 계약서를 잘못 이해하여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의 대화에서 어휘는 곧 정확성과 효율성을 의미한다. 어휘가 풍부해야만 간결하게 소통하고, 오해 없이 빠르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니 성인 역시 '어휘 부자'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책을 더 많이 읽고, 뉴스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어휘를 접하며, 때로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단어의 의미와 맥락을 찾아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글 쓰는 연습을 통해 어휘를 '사용'하는 훈련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결론

'어휘의 그릇'을 채우는 것이 진짜 공부의 시작이자 사회의 기반


결국 공부가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단순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식을 담을 충분한 ’ 어휘의 그릇'이 준비되지 않아서 말이다. 학교에서 정규 과목 외에 독서와 토론 시간을 정말 대폭 늘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아이들이 책을 통해 어휘라는 씨앗을 뿌리고, 토론을 통해 그 씨앗을 꽃피우며, 궁극적으로 지식을 담는 그릇을 스스로 넓혀나가도록 우리가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이건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성인 역시 어휘력과 문해력은 건강한 사회생활과 개인의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우리 모두가 진짜 공부를 즐겁고 효과적으로 해나갈 수 있는 길은 바로 이 '어휘력 기반의 문해력 향상'에 달려있다. 이 투자는 단순히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걸 넘어, 우리 모두의 평생 학습 능력과 사고력을 향상하고, 더 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가장 값진 선물이 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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