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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정리부터 시작한다고 입문자 강의일까?

중요한 건 ‘방식’이다.

by Jeoney Kim

강의 준비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용어 정리부터 점진적으로 차근히 진도를 나간다고 해서 꼭 초보자, 입문자 강의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아니다'에 가깝다. 지난 10년간 오프라인에서 소규모 강의를 진행하면서 아주 명확하게 알게 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내 직업은 웹 퍼블리싱 교육 강사이다. 웹 퍼블리싱이란 웹디자인을 코딩으로 옮겨서 실제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일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html, css는 코딩으로 웹디자인을 할 때 필요한 기술 이름이다.


내 강의를 수강했던 분들 중 상당수가 현직 디자이너이거나, 어쩌다 보니 회사에서 코딩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는 분들이었다. 심지어 웹 퍼블리싱 학원을 다녔는데도 템플릿 예제 위주로 진도만 줄곧 나가다 보니 CSS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았다. HTML, CSS를 한두 번 만져봤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경험상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용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뭘 배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어디서 누구한테 배웠든, 강사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무엇을 배우든 마찬가지겠지만, 설명을 먼저 잘 듣고 실습을 하면서 이해하는 감각을 키우는 건데, 설명을 놓치면 그냥 무작정 따라 하기 식으로 결과물만 만들게 된다. 나중에 혼자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하면, 그게 잘 될 리가 있겠는가?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용어 정리부터 차근히 진도를 나간다고 하면 수강생들이 지루해할까 봐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심지어는 그것을 가장 큰 단점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추측과 예상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들 만큼 반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10년간 강의를 하면서 누적된 데이터로 반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강의는 보통 1회에 3시간씩 진행된다. 첫 강의는 거의 코딩을 하지 않는다. 용어 정리에 90% 이상 에너지를 쏟는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나 역시 매번 걱정은 된다. 혹시나 사람들이 지루해할까 봐.


하지만 정말 예상 밖에도 늘 가장 만족도가 높은 강의는 어김없이 가장 첫날 진행하는 강의다.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대부분 비슷하다. 그 반응을 평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는 게 아니었다"라고 표현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용어를 알고 모르고에서 이해도의 차이가 크다고 말한다. 사실 이건 너무나 직관적이고 당연한 얘기다. 용어를 제대로 알면 쓰임새를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 있고, 이해하기도 쉬워진다. 그리고 초기값과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 응용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진다.


무엇보다 용어 정리에 8할 이상의 에너지를 쏟는다 해도 절대 손해 보는 시간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오히려 더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까지 용어 정리가 중요한가?


세상을 둘러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법률 용어 정리가 먼저 되어 있어야 그 어려운 문서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동화책 보듯이 술술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부동산 공부하는 사람들은 부동산 관련 용어 정리가 되어 있어야 전문가들과 대화하거나 부동산 정보를 알아볼 때 막힘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의료, 미용, 과학, 회계, 요리, 패션 등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용어 정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각 전공 분야별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용어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교수님 설명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 보라. 지루하거나 흥미를 잃는 게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고개를 끄덕이며 수강하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다 같이 재미있게 이야기하는데 나 혼자만 그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는 그런 소외감 말이다.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에는 용어를 모르거나 어휘가 부족해서 손해를 보게 되는 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내가 대학에서 강의할 때 실제로 있었던 일화다. 나는 학생들에게 매주 토요일 '정오'까지 과제를 제출하면 된다고 말했다. 제출 기한이 지나서 보내면 성적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으니 기한을 잘 지키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온라인에도 별도로 공지되어 있으니 두 번 말하지 않겠다고 했고, 학생들은 그날 이후로 매주 토요일마다 과제를 제출했다.


예상치 못하게 나를 정말 놀라게 했던 건, 학과 전체 학생의 3분의 1 정도가 과제를 제시간에 제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학생들이 과제를 제출한 시간을 보면 거의 대부분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결국 '정오'와 '자정'이 헷갈려 성적 손해를 봤던 것이다.


'정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확실하게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바로 물어보거나, 검색해 보거나 해서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대충 뭐 밤 12시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전부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상사가 지시하는 말을 바로 못 알아듣거나, 또는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어휘임에도 불구하고 몰라서 이메일 답변을 엉뚱하게 보낸다거나 하는 일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이런 일은 실제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AI 시대에도 용어 정리는 여전히 핵심이다. AI에게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은 기본적으로 친절하지만 전문 용어가 섞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알아듣기 쉽게 재요청을 하거나, 오히려 사람이 쓴 글을 찾기 위해 검색 엔진에서 블로그를 뒤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여기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용어 정리가 먼저 되면 검색을 하든, 문서를 찾아보든, AI가 준 고급 자료를 보든, 그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시간과 에너지가 훨씬 절약될 것이다.


용어 정리를 잘하면 어쨌든 어휘 부자가 되는 쪽으로 귀결된다. 이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서로의 대화를 간결하게 주고받을 수 있게 하며, 일 처리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적어도 어휘를 몰라 막대하게 손해를 보는 일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마무리한다. '용어 정리부터 시작하는 강의'가 과연 '입문자'만을 위한 강의일까?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각 전문 분야의 '언어'를 배우고, 이전에 어설프게 알던 지식을 재정립하며, 나아가 진정한 전문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이것은 단순히 초보를 넘어, 깊이 있는 이해와 실제 역량을 원하는 모든 학습자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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