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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Nov 20. 2023

다매체 시대의 트로이 목마

손안에 주의 뺏기의 복병인 스마트폰을 들여놓은 결과

종이책이냐 전자책이냐. 이런 이분법적 논쟁은 이제 가닥이 잡힌 듯하다. 인간의 신체와 친근한 아날로그 매체인 종이책은 아직 중심적인 자리는 잃지 않고 있다. 종이로 읽을 때 우리는 시각과 더불어 촉각과 후각, 공간 감각 같은 다양한 감각을 책의 물성과 연결해 기억을 비롯한 인지 활동에 적잖은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물성은 불편과 제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운 디지털 스크린 기기는 사용과 휴대, 보관이 상대적으로 쉽고 편리하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인 젊은 세대에게는 읽기도 디지털 방식이 더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부모 세대도 이제는 일상의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하면서 자신의 선호와는 상관없이 점점 디지털 친화적으로 바뀌고 있다. 디지털 기기는 그것대로 읽기 매체로서 성능을 나날이 개량해 가며 이용자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최근에는 귀를 통한 읽기의 구현과 동시에 이동과 시선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오디오북도 사용이 늘면서 바야흐로 멀티 리딩은 대세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전환의 속도와 양상이다. 특히 청소년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학교에서의 급속한 디지털화는 그것이 문해력이나 독서 기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충분한 숙고나 대비 없이 경제성과 공학적 논리에 따라 진행되는 감이 있다. 매리언 울프 같은 인지학자들은 다매체 시대에도 중요성을 더해가는 깊이 읽기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종이책을 기반으로 점차 디지털 기기의 사용 비중과 범위를 넓혀간 끝에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깊이 읽기의 숙달에 이르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깊이 읽기를 저해하는 최대 복병은 스마트폰이다. 요즘은 어딜 가나 대부분 손 안의 스크린에 시선이 가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제대로 ‘읽는’ 것 같지는 않다. 간혹 읽는다 해도 깊이는 점점 얕아지고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유통되는 글을 보면 그 경향은 뚜렷하다. 빠르게 훑어보기만 해도 이해가 된다는 말은 뇌의 가동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디지털 시대의 ‘트로이 목마’ 현상이다.


사람들은 각자 손안에 주의 뺏기의 첨병인 스마트폰을 들여놓았고, 그 결과 트로이 성이 함락되듯 속수무책으로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 틈날 때마다 손거울 보듯 스크린을 향한다. 이쯤 되면 중독이지만 사람들은 중독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중독자가 보여주는 전형적인 ‘무자각’ 증상이다. 스마트 기기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콘텐츠는 질과 양에서 깊이 읽기를 방해한다. 되도록 많은 것을 보며 오래 머물러 있게 하는 디지털 플랫폼에 포획된 결과다. 이제 생성형 AI까지 가세하면 스마트 미디어의 위력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물론 디지털 기기도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은 종이책으로 읽는다고 깊이 읽기가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며, 스크린 읽기라 해서 깊이 읽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관건은 읽을 때의 마음가짐(mindset)이다. 문제는 매체에는 사용자를 길들이는 유도성(affordance)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으로 읽기는 쉽고 빠르고 편리하지만, 읽기와 사고의 피상화를 낳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만큼 의식적으로 천천히 집중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책을 제대로 읽을 결심을 했다면 먼저 크고 작은 ‘바보상자’인 TV와 스마트폰과는 거리 두기를 실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배척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절제된 사용 말이다.


그러면서까지 책을 읽어야 하나. 결국, 우리는 독서는 왜 하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도달한다. 독서의 목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힘으로서 정보와 지식을 얻기 위한 도구로서의 읽기다. 그런 읽기는 자신 또한 어떤 도구로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편인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자기 성찰과 인식의 지평 확장을 목적으로 한 읽기다. 이 때의 읽기는 보다 나은 자아의 형성 자체가 목표가 된다. 깊이 읽기의 본령은 정보 습득이 아니다. 그런 차원의 읽기라면 이제 책 아닌 매체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독서가 특별한 것은 인류가 쌓아온 지혜를 얻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활동이라는 데 있다. 읽기는 인간의 뇌가 종합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고차원의 역능이다. 책 속에 몰입할 때 우리는 여행하듯 다른 세상을 체험하고 꿈꾸듯 생각의 나래를 편다.


책은 한갓 정보를 담은 그릇이 아니라 인간 정신에 불을 붙이고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다. 읽기는 사유의 훈련이자 모험이며 삶의 질서를 찾아가는 영혼의 자기 보살핌이다. 독자는 진선미를 향한 질문과 씨름하는 중에 생각과 감정이 깊어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의 변화를 경험한다. 거기서 또 하나의 개성적인 인격이 나고 자란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천히 깊이 읽기를 통해 자율적인 인간성(humanity)을 키워갈 것인가, 숨 가쁘게 질주하는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 형성의 급류에 자신을 내맡길 것인가, 무심코 스마트폰을 열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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