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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Jul 29. 2021

'능력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해외 신간 The Aristocracy of Talent 저자 인터뷰

[편집자 주] 능력주의(meritocracy)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근대 개인주의를 뒷받침하는 지배 원리로 당연시되어오다, 최근 들어 '위장된 부의 대물림', '무한 경쟁의 덫'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성을 둘러싼 논의에서도 '능력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책도 제법 많이 나와 있는데, 최근 영미권에서 새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코노미스트 칼럼니스트이자 논픽션 저자인 애드리언 울드리지다. 그는 능력주의의 기원과 역사를 소개하면서, 최근에 제기된 비판을 검토하는 한편 개선의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 당신은 이 책에서 근대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능력주의가 수행한 역할에 대해 썼다. 역사적으로 능력주의는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능력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답: 능력주의의 핵심은 우리가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가족 배경이나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를 보기보다 개인의 능력과 가능성을 근거로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용어의 의미가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은 그 의미가 시간이 지나면서 극적으로 변해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변하고 있다.


가령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의 능력(merit, 장점이라는 뜻에 가깝다)을 이야기할 때 실제로는 능력ability뿐만 아니라 덕virtue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인성과 성품에 대한 평가도 병행했다. 20세기 중반으로 오면 좀 더 좁혀서 지성intelligence, 정신적 능력으로 파악된다. 이 책에서는 능력주의의 등장과 의미의 변천 과정을 다뤘다. 그럼에도 관통하는 의미는 사람을 평가할 때 사회적 지위가 아닌 그 사람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문: 능력주의와 정치 체제는 어떤 관계에 있나? 자유민주주의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지 않나?


답: 물론이다. 책의 상당 부분이 근대 이전의 능력주의에 관한 것이다. 적어도 서양에서 능력주의의 청사진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그의 국가론은 대단히 흥미로운 저술인데, 이 책에서 그는 통치자는 철학자여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자는 능력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사회 전체를 선발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의 구성원을 자질에 따라 금, 은, 동, 세 계급으로 나눴을 때 '금의 사람'인 철학자는 사회 어느 계급(은이나 동의 계급 부모)에서든지 태어날 수 있다고 봤다. 따라서 국정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사회 어디에서든 금의 사람을 찾아내 지도자로 양성하는 것이라고 봤다. 대단히 급진적인 생각이었다. 근본적으로 (좋은 의미의 엘리트가 통치하는) 귀족정의 사회를 지향했는데, 자연에 의해 재능은 사회 전반에 폭넓게 흩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플라톤은 또 다른 (당시로는) 혁명적인 생각을 했는데, 여성도 남성처럼 지적일 수 있다고 봤다. 철학자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급진적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한가. 아이들을 친부모에게 맡기지 않고 징발해서 훈육시키게 했다. 이런 플라톤의 생각은 그 후로도 서양 역사에서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사회 전반에서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했는가 하면, 19세기 영국 등 각국에서 공직자를 공개 시험을 통해 선발했다.


다른 한편, 중국의 경우 능력주의에 대한 생각뿐 아니라 실행에 있어 플라톤보다 앞섰다. 아주 일찍, 10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줄곧 과거 시험제 국가를 운영했다. 절정기에는 국민의 10%까지 시험에 참여했다. 중국이야말로 능력주의 엘리트에 의해 지배되는 체제였다. 고위 공무원을 뜻하는 만다린이란 단어 자체가 중국의 과거시험 선발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1600년부터 1900년까지 시험을 위한 교본에 큰 변화가 없었다.


문: 사화에서 금의 사람을 선발한다는 플라톤의 사상을 이야기했는데, 역사적으로 그 선발 메커니즘은 어떠했나?


답: 중국은 시험에 대단히 집중했다. 반면 플라톤 자신은 시험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선발한다기보다 다른 '금의 사람'이 '금의 사람'을 발견한다spot는 식으로 생각했다. 일찌감치 발견해서 지도적 역할에 맞게 엄격히 훈련시킨다는 개념이었다. 시험보다는 교육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플라톤의 주안점은 '철학적'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철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것은 순수하게 지능지수나 지성 같은 것에 따른 구분이 아니었다. 인성character도 대단히 중요했다. 좋은 인성, 훈련된 인성 말이다. 공공심이 있는public-spiritedness 것을 말한다. 이와 함께 신체적 능력, 지구력도 중요했다. 그래서 운동을 중시했다.


선발 과정의 역사를 보자면, 물론 시험이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이 방면에선 중국이 선구적이었지만 다른 곳도 결국 마찬가지였다. 또한 지배 계급을 보면, 육체적 운동 능력과 인성을 중시했다. 19세기 영국의 공립학교(실제로는 사립학교)를 보면 물론 시험도 중요했지만 인성 훈육(기독교인 신사)과 스포츠(크리켓, 럭비 등)도 중시했다. 심지어 가장 까다롭다고 알려진 프랑스 최고 공무원 선발 과정에서도 육체적 지구력, 스포츠 능력이 중시되었다.


문: 역사적으로 능력주의가 혁명적인 생각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서구 사회는 능력주의를 기본으로 보고, 여기에 익숙해져 있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구 세계 질서에서 신 세계 질서로 넘어오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나?


답: 플라톤은 저술을 통해 능력주의를 피력했다면, 중국은 일찍부터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특이했다. 다른 곳은 그렇지 않았다. 대체로 봤을 때 어느 사회나 개인이 태생적으로 차지하게 되는 지위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사회적 지위는 물려받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회 제도가 그 중에서도 가족이었다. 개인의 사회적 지위도 어떤 가족 구성원이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가족이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군주의 아들은 군주가 되는 식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는 위계적이었다. 사회는 지위의 집합이었다. 지배층에서 태어나면 지배층, 중위층에서 태어나면 중위층, 하위 계층은 날 때부터 섬겨야 했다. 사회는 또한 가족의 집합이기도 했다. 어떤 가문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자녀의 지위도 삶도 결정되었다.


세 번째로 대단히 중요한 구 질서의 결정 요소는 직업 job이었다. 이때 직업은 그 사람의 업무 능력merit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재산/소유물 같은 것이었다. 자식에게 물려주거나, 다른 아는 사람, 믿는 사람, 후견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하고 사고팔기도 했다. 요컨대 옛날 사회는 위계적이고, 가족 연고에 따라 움직였으며, 직업을 거래 가능한 재산으로 여겼고, 그것들 위에 정체성과 사회관계가 형성되었다. 가령, 루이 16세는 아침에 일어난 후부터 온종일 공공장소에서 일과를 보내다시피 했는데, 그러다 직업을 구하는 사람을 만나 마음에 들면 일자리를 주곤 했다. 그 사람의 능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왕이니까 그런 일자리를 소유했고 나눠줄 수 있었다.


프랑스혁명 전까지 사회는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왕조제, 재산으로서 직업, 위계질서에 따른 사회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모든 것을 능력주의가 바꾸었다는 점에서 완전히 혁명적이었다. 가족을 개인으로, 위계질서를 이동성으로, 재산이었던 직업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일련의 의무로 대체한 것이다.


문: 능력주의가 도입된 과정은 어떠했나? 어떤 곳은 비교적 순탄했던 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던 것 같다.


답: 동양보다는 서양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은 최초 시험국가이긴 했지만, 그 후로는 오랫동안 정체 상태였고 변화가 없었다. 반면 서구에서는 능력주의의 부상이 자본주의, 과학,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현과 함께 일어났다. 세 차례 혁명의 형태로 일어났는데, 두 번은 격렬했고 한 번은 비교적 순탄했다.


먼저, 미국 혁명은 모든 사람은 개인의 능력과 장점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미국 혁명의 위대한 사상가들, 특히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메디슨, 존 애덤스는 이 능력주의 개념, 즉 개인의 장점을 어떻게 측정하고 파악하고, 이런 자질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가에 골몰했다. 영국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폭력이 있기는 했지만, 혁명 치고는 대단히 평화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물론 여전히 노예제 같은 것은 예외였는데,  제퍼슨 같은 사람은 만인 평등권을 주창하면서 개인적으로 노예를 유지하기도 했을 만큼 미국적인 모순이 존재했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혁명이 일어났는데, 이들은 인위적인 귀족정을, 재능과 덕성에 기초한 자연적인 귀족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정은 훨씬 유혈적이었다. 처형과 유럽 차원의 대규모 전쟁이 수반되었다. 기본적으로 비전은 같았다. 사회의 위계는 태생이 아니라 능력, 덕성, 재능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폴레옹과 더불어 (나중에 퇴보했지만) 이런 사상이 빠르게 다방면으로 확산되었다. 그다음이 영국 혁명인데, 가장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귀족정에서 광범위한 능력주의 사회로 옮겨갔는데, 19세기 중반부터 공무원도 시험과 수행 능력을 토대로 경쟁에 의해 선발하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도 그전까지 펠로 가문 자녀에게만 입학이 허용되다가 점차 시험 성적으로 입학자를 선발하는 방향으로 갔다. 수평적 기회가 구축되면서 개방적인 기관을 능력자 선발과 연결한 결과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이 가능해진 것이다. 아주 느린 과정이어서 완전한 능력주의는 2차 대전 이후에나 가능했지만 유혈 사태 없이 새로운 사회 질서로 옮겨 갔다. 남성 중심의 귀족정 질서로부터 지적 능력에 기초한 권력 이양의 질서로 폭력 없이 옮겨간 점에서 대단한 혁명이었다.


문: 능력주의와 근대성(modernity)의 출현은 어떤 관계인가?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능력주의가 초강력 발전의 촉발 원인이었나, 산물이었나?


답: 나는 능력주의가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본다. 여러 면에서 능력주의는 자유보다도, 심지어 자본주의보다도 더 근대성에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는 다른 여러 변수에 의존하고, 자본주의가 없는 근대화(가령 과거 사회주의 체제)도 있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없는 성공적인 근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람을 능력에 따라 평가하고 그것에 따라 어떤 직업을 수행하게 하는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동한 것의 핵심이 능력주의의 부상이라고 본다.


문: 능력주의가 근본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때 어떤 측면을 말하나? 사회를 더 생산적으로? 효율적으로? 평등하게?


답: 다 해당된다. 근대 사회가 성립되려면 잉여 생산이 가능해야 하는데 여기에 능력주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효율적 군대, 효율적인 국가, 아주 생산적인 경제에는 모종의 메커니즘이 필요한데, 능력과 업무 수행 실적이 핵심이다. 또한 능력주의는 가치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사실상 근대성과 동의어인데, 앞에서 봤듯이 과거 구 질서의 세계를 보면 태어날 때 지위가 중시된다. 이것은 일련의 태도로 연결된다. 개인보다 가족을, 성취보다 유산을, 일이나 지적 능력보다 귀족적인 명예를 중시한다. 반면 근대 사회가 되면, 중요한 것은 개인이고 야망이고 능력이고 사회적 상승이다. 이 모든 것이 근대의 부분들이다.


문: 능력주의 물결이 노후한 구 질서를 몰아낸 것까진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답: 능력주의라는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은 마이클 영이었다. 1958년 <능력주의The Rise of Meritocracy>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정작 능력주의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주 적대적인 해석을 실었다. 능력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은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잘못은 오직 너 자신에게 있다고 돌린다는 점이다. 성공하지 못하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만 있다. 귀족 사회에서 살 때에는 개인의 기회가 제한적이다 보니 그 결과도 귀족정의 문제로 돌리고 기회 결여를 탓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에게 앞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을 때, 그럼에도 논리적으로는 모두가 앞서거나 정상을 차지할 수는 없는데, 그 결과의 책임은 개인이 져야 한다. 따라서 능력주의가 낳는 사회는 (성공한 소수 이외) 전체적으로는 더 불행한 사회가 된다. 귀족사회와 달리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능력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유를 댈 수 있는 완충제가 없어진다. 경쟁적이면서 다수는 불행한 사회가 된다.


그 외에도 비판이 많은데,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을 두고, 사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교육의 특권적 기회 덕일 수 있음에도, 온전히 자기 능력으로 돌리기 위한 허울이자 위장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무한 경쟁의 제도화'라는 비판도 있다. 그 결과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려 쫓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대학입시만 봐도 그렇다. 이런 비판들은 대단히 강력하다. 마이클 영은 이런 점이 근대 세계를 규정짓는 특징이라고 봤다. 능력주의의 여러 어두운 점 중 하나는, 사회적 상승을 누리기 위해서는 또다른 누군가의 사회적 하락 또한 불가피하다는 사실이다. (제로섬 게임을 전제로 한다는 뜻) 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더 부유해지고 더 많은 기회를 누리게 되면 어떤 사람은 하락이 불가피한데, 이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문: 능력주의가 계층화된 인종 차별을 강화할 거란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답: 아주 어렵고 복잡한 질문이다. 능력주의의 핵심은 사람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평가해야 하며, 생물학적 집단이나 인종, 민족에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를 개인의 집합으로 본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젠더나 생물학적 정체성)가 아니라 갖고 있는 잠재력(정신적 능력)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는 사고다.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이론이다. 젠더 측면에서도 대단히 해방적이고 급진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공무원 선발 과정을 개혁하면서 시험을 처음 도입한 사람들은 개인 능력에 대한 시험 평가를 토대로만 뽑겠다고 했다. 그 후 머지않아 공무원과 대입 남자 수험생의 자매들이 "왜 나(여자)는 안 돼?"라고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여성에게도 문호가 개방되는 쪽으로 흘러갔다. 실제로 시험 성적도 여성이 남자 못지않았다. 1890년대 여성이 케임브리지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에서도 최고 성적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선입견을 깨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종 문제도 같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시험의 문호를 소수 민족에게 개방해 보면 실제로 성적이 좋다. 20세기 초까지도 미국 내에서 지배적이었던 인종 우열적 시각도 일부 흑인이 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보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여전히 흑인 성적은 백인보다 낮았다. 그 원인을 보니, 인종 간의 빈부 격차와 그에 따른 교육 기회 격차가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린든 존슨 정부는 소수인종우대affirmative 정책을 폈다. 흑인에게 나은 기회를 준 것이다. 노예제로 오랫동안 뒤쳐진 집단적 형편에 대한 보상이었다. 여기에 능력주의의 역설이 제기된다.


능력주의라는 것이 개인의 능력에 따른 평가인데, 개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차별당해왔다면 그것에 대한 어떤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소수인종우대정책 지지론자의 주장이었다. 너무 오랜 기간 차별당한 결과, 그 차별로 인해 평균적인 소득과 생활수준이 낮다면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1965년 린든 존슨은 하워드 대학교 졸업 축사에서, 누군가 사슬에 발이 묶여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다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개입해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 당신은 책에서 능력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안에 비해서는 문제가 가장 적은 시스템이라고 했다. 당신이 생각하는 능력주의의 이상적인 사례가 있나?


답: 내 생각에 서구에서 능력주의의 황금기는 1945년 2차 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였다. 이때 교육의 기회가 대폭 확대되었다. 의무 교육 연령이 올라갔고 새로운 학교도 많이 생겼고, 화이트 컬러 일자리도 대폭 늘었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겼다. 미국의 경우 GI(제대군인 법) 법안이 통과되면서 군필자에게 무료 대학 교육 혜택이 주어졌다. 대폭적인 기회 확대가 이뤄졌고 그 후 대규모 사회적 계층 이동이 일어났다. 그러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가 지나면서 둔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이른바 '돈과 돈의 결혼'이었다. 부자가 더 나은 교육 기회를 돈으로 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개별 국가 사례로는 싱가포르가 고도의 능력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 방면에서 다른 어떤 곳보다 앞섰고, 계속 앞서 가고 있다.


문: 능력주의는 자기 교정 능력이 있다고 책에 썼는데.


답: 역사적으로 능력주의가 확립된 이래 꾸준히 자기 교정의 과정을 거쳐 왔다. 어떤 고정된 사상이 아니다. 조정과 개선에 열려 있다. 자기 교정적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공개 경쟁 시험을 처음 도입한 사람들은 자기들 자매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자들만 생각했다. 하지만 자매들이 차별을 문제 삼고 소리를 내자 여성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다. 논리적으로 막을 수 없었다. 또 2차 대전 이후에는 단순히 경쟁을 개방하는 게 다가 아님을 알았다.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이 발현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 결과 가난한 사람에게도 교육 기회가 대폭 확대되는 복지국가로 나아갔다. 자기 교정이란 진화하는 개념이다. 지금도 우리에게는 일련의 새로운 교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인지적 엘리트, 리버럴 엘리트, 바로 당신과 나 같은 사람이 능력주의를 포획해 자기 자녀들이 잘해 나가도록 하는 식으로, 돈과 특권과 연줄에 의해 타락한 상태다. 다시 한 번 시스템을 정화할 필요가 있다. 내 책에서는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다. 첫째, 능력주의 시스템 자체에 활력을 더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선발 과정을 강화하는 것이다. 가난한 가정과 배경 속에서도 아주 뛰어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조기에 찾아내 교육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가령, 공사립 학교의 정원 50%를 이들에게 배정하고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이들의 재능을 일찍부터 배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개발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다양한 형태의 테스트를 개발하는 것이다.


관건은 일찍부터 능력 있는 아이들을 발굴하는 것인데, 여기에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된 문제이기도 한데, 일찍이 플라톤이 말하기를 부모는 자연스럽게 자기 자녀의 실제 능력과는 상관없이 수호자로 삼으려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으로 국가가 양육하고 선발하는 것이었다. 물론 비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한 가지 교훈은 그만큼 능력주의는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려는 본능적 성향에 강력히 맞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가 보다 적극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험을 통해 재능 있는 학생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 능력주의에 따라다니는 질문은 왜 (선발에서 뒤처지는) 나머지 사람을 내버려 두냐는 것이다. 사회의 낮은 계층에서 인지적 엘리트를 발굴한다고 해도, 나머지 사람, 인지적 엘리트에 속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나머지 사람은 그냥 두나?


답: 결정적으로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는 배제(elimination)에 의한 선택을 구분(differentiation)에 의한 선택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상에는 대단히 다양한 유형의 재능과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지적 능력을 너무 숭배하게 된 나머지, 사실상 지적 능력만 가려낼 뿐 그 밖의 능력은 배제하는 시스템이 되다시피 했다. 순전히 지적 능력만을 토대로 존경과 지위, 기회를 배분하는 식이다. 물론 지적 능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많은 분야에서, 특히 생산적인 분야, 경제 분야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가는 데는 그 밖의 수많은 능력이 필요하다. 기술적 능력, 직업적 능력도 중요하다. 이런 인력이 사실은 대단히 부족하다. 이런 다양한 분야의 능력과 기술을 가진 인력을 위한 훈련 시스템이 제공되어야 하고, 부모들도 자녀가 그런 직업적 능력을 택하는 데 좀 더 열려 있어야 한다. 모두가 비슷한 학문적 공부를 하려고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기관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1945년 영국에서 나온 논의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교육 기관을 3원화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술 교육 과정이 사라졌다. 반면 독일은 지금 기술 교육 제도가 잘 되어 있다.


문: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능력주의의 문제는 무엇인가?


답: 능력주의를 지배와 성공, 특권의 영속화를 위한 수단으로 본 데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발 물러나서 역사적 과정 전반을 보면, 능력주의를 통해 과거 사회에서 혜택 받지 못하고 배제되었던 주변부 집단은 합당한 혜택을 입게 된 것이 사실이다. 여성이 고전적인 대표 사례다. 어려운 일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지다가 시험을 통해 능력을 입증받으면서 자신들의 일을 갖게 되었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능력주의를 통해 사회는 더 포용적이 되었고, 현상유지에 머무르기보다는 훨씬 큰 급진적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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