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소셜미디어에 주의를 빼앗긴결과는...
[편집자 주] 7월 31일자 뉴욕타임스에 '지금이 스마트폰의 덫에서 10대를 구해 낼 우리의 기회'라는 제목의의 공동 기고문이 실렸다. 몇 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학생들의 등교 재개 시점에 맞춰 실린 글이다. 저자는 국내에 '바른 마음'의 저자로도 유명한 미국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공동 연구자인 샌디에이고 주 대학의 진 M. 트웬지 교수다. 두 저자는 특히 2012년에 주목한다. 왜 그럴까.
미국 10대들의 우울증과 외로움, 자해, 자살율의 수치가 급격하게 치솟기 시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코로나가 닥치기 직전인 2019년까지 사춘기 청소년의 우울증 비율은 2배 가까이로 늘었다.
Z세대(1996년 이후 출생자)를 연구해온 이들은 처음 이 현상을 보고 의아했다. 이 기간 미국 경제는 비교적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에 있었던 2008년 대불황 같은 데서 파생된 경제 문제는 원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2010년대 초부터 10년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을 만한 국가 차원의 대형 사건도 생각하기 어려웠다.
살펴본 끝에 두 저자는 유력한 용의자로 스마트폰, 특히 소셜 미디어에 주목했다. 2012년은 미국인 다수가 스마트폰을 갖기 시작한 해였다. (미국의 설문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스마트폰 소유 여부를 처음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2011년 미국인의 스마트폰 소유자는 전 국민의 35%에서 2012년 85%로 껑충 뛰었다. 18-29세 연령층은 96%에 달했다.) 2015년 10대의 스마트폰 소유율은 2/3에 이르렀다. 이 기간 사춘기 청소년 사이에서 소셜미디어 사용은 선택에서 기본으로 옮겨갔다.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2009년에서 2012년 사이 중대한 변화를 거쳤다. 2009년 페이스북은 '좋아요' 단추를, 트위터는 '리트윗' 단추를 추가했다. 그 후 몇 년에 걸쳐 사용자에게 노출되는 피드는 그 사람의 '참여'에 기초한 알고리즘 방식으로 작동했다. 여기서 '참여'를 유발하는 것은 대개 감정을 촉발하는 컨텐츠를 말한다.
이제 온 세계가 알게 된 것처럼, 2012년 주요 플랫폼은 '분노 기계'를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온라인 공간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추해졌고, 빨라졌고, 양극화되었고, 공개적인 챙피 주기를 유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 다음 10년 동안은 인스타그램이 인기를 키워갔다. 특히 소녀와 젊은 여성들 사이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친구와 낯선 사람들이 올린 포스트, 대개는 편집과 재편집을 거쳐 현실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얼굴과 몸, 생활 모습 같은 것들을 스크롤하면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좌절'하게 만들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10대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 우려해온 전문가들은 없지 않았다. 반면 그런 우려를 일축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도덕적 꼰대들의 기우라고 했다. 그런 걱정은 비디오게임이나 텔레비전, 심지어 만화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나왔다며 폄하했다. 그런 의심 중에서 가장 강력한 반론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스마트폰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거의 동시에 채택된 기기다.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의 10대들은 미국과 똑같이 정신 건강에 더 많은 문제를 겪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나?
이 질문에 직접 답하기는 어렵다. 세계 차원에서 2012년 이전과 이후 청소년 정신 건강의 추이를 조사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한 것은 있다.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은 2000년부터 매 3년마다 수십 개국 15세 청소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다. 조사 항목에는 학교에서의 외로움에 관한 질문도 6개가 들어 있다. 외로움은 우울증과 같지는 않지만 관련성이 있다. 외로운 10대와 우울한 10대는 겹칠 때가 많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외로움은 우울증 없이도 느낄 수 있는 고통이다.
PISA 결과를 보면, 37개국 중 36개국에서 학교에서의 외로움이 2012년부터 증가했다. 37개국을 지리적 문화적으로 4개 범주로 나눠 살펴본 결과,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꼴이 나타났다. 10대의 외로움은 2000년-2012년 사이에는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높은 수준의 외로움을 나타낸 비율은 18% 미만이었던 반면, 2012년 이후 6년 동안 극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와 영어권 국가에서는 2배 가까이로 뛰었고,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약 50% 상승했다.
세계 전역에서 동시에 10대의 외로움이 상승한 사실은 글로벌 차원의 원인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 시기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확장 시기와 겹친다. 우연의 일은 아닐까? 좀 더 확인해 보기 위해, 10대의 외로움에 영향을 미쳤을 법한 글로벌 트렌드 관련 데이터를 많이 찾아 봤다. 가족 크기의 감소, GDP 변화, 소득 불균형 심화, 실업률 증가 등등. 이와 함께 스마트폰 접근성 증대와 인터넷 사용 시간의 증가도 살펴봤다. 결과는 명확했다. 스마트폰 접근성과 인터넷 사용 변수만 10대 외로움의 급증과 정확히 들어맞았다. 다른 요인들은 상관성이 없거나 상관 관계가 뒤바뀐 것이었다.
이것만으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10대 외로움 증가의 주요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다른 변수들은 더 개연성이 낮음을 보여준다. 학교에서 10대의 외로움이 세계적으로 급증한 현상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있다면 알려 달라.
소셜미디어와 정신 건강에 대한 연구들을 광범위하게 리뷰해 보았다. 주된 한계가 있었다. 거의 모두가 스마트폰/소셜미디어 사용자의 사용 효과에만 치중되어 있었다. 대표적인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소셜미디어를 많이 사용하는 10대는 별로 쓰지 않는 10대에 비해 정신 건강이 나쁜가? 대답은 '그렇다'였다. 특히 소녀들이 그렇다고 나왔다.
하지만 이런 연구의 틀로는 미흡하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개인 단위로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집단 차원에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전 지구 차원에서 인간 상호작용의 재설정을 낳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일반화되면서 또래 관계, 가족 관계, 모든 사람의 일상적 내용물이 바뀌었다. 심지어 폰을 가지고있지 않은 사람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 사람까지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가 폰을 내려다보는 상황이 되다 보니, 방과 후에나 카페에서 나누곤 하던 일상적 대화는 이제 나누기가 어려워졌다. 수시로 진동이나 '알림' 문자, 벨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되면서 깊은 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졌다. 셰리 터클은 '대화 되찾기Reclaiming Conversation'에서 스마트폰과 살면서 "우리는 영원히 다른 어딘가에 있다"고 썼다.
코로나19가 닥치기 1년 전, 캐나다 대학생은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내 왔다. 스마트폰이 학교에서의 사회 생활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Z세대는 극도로 고립된 집단입니다. 우리에겐 상당 부분 소셜미디어에 의해 중계되고 지배되는 얕은 우정과 피상적인 연애 관계만 있을 뿐입니다." 그는 또래에게 말을 걸기가 어렵다고 했다.
"캠퍼스에서 공동체 감각이라고는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알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강의실에 일찍 도착해서 보면 30여 명이 강의실에서 모여 앉아 있는데, 완전한 침묵 속에서 각자 스마트폰에 빠져 있습니다. 누군가 말을 하거나 들려올까봐 조심합니다. 이런 것은 더 큰 고립과, 자기 정체성과 확신의 약화로 이어집니다. 저는 이것을 직접 경험해 봐서 압니다."
모든 어린 포유류들은 주로 논다. 개나 침팬지, 인간 같은 무리 속에서 사는 종들은 특히 그렇다. 그런 포유류는 사회적으로 성숙한 개체가 되기 위해 수많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필요로 한다. 2012년 10대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그런 상호작용을 했을 거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상호작용을 했을 수도 있다. 단지 어쩌면. 하지만 2012년 이후 10대의 정신 건강은 더 나쁜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쌓여 갔다. 이제 전자적으로 매개된 사회적 상호작용은 '빈 칼로리(empty calories, 영양가 없는 음식)'인 것처럼 보인다. 한번 상상해 보라. 2012년 10대의 식단에서 가장 영양가 많은 음식의 50%를 빼고 설탕만 들어간 영양가 없는 음식으로 대체했을 때 지금 10대의 건강이 어떨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스마트폰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기술로 인한 많은 혜택을 감안하면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10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돕는 보다 합리적인 몇 가지 조치는 취할 수 있다.
한 가지 중요한 조치는 아이들에게 매일 일정 시간 동안은 디지털 기기로 인해 주의력이 방해받는 일이 없게 해 주는 것이다. 폰은 학교에 오가는 동안에는 필요할지 모른다. 하지만 학교에 있는 동안은 따로 보관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학생들이 주변 사람들-선생님까지 포함-에게 완전한 주의를 기울이는, 잃어버린 기술을 연습할 수 있다.
두 번째 중요한 조치는 소셜미디어에 진입하는 시기를 늦추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완전히 멀리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은 10-11세 아이들 다수가 자기 나이를 속이고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든다. 한번 그렇게 되면, 너도 나도 다른 아이들로부터 소외되기 싫어 따라하려는 마음이 들게 된다.
플랫폼은 최소한 자신들이 공개적으로 명시한 가입 조건 항목의 최저 연령 13세를 지키도록 하는 데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동안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은 그러지 못했다. 사후 단속 방식으로만 소극적으로 대처했기 때문이다. 모든 신규 계정 개설에 대해 연령과 신원 인증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다른 많은 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공인 절차를 거친 후에도 사용자는 익명/가명으로 포스팅을 할 수 있고, 공인 절차는 플랫폼 업체가 아닌 신뢰할 만한 제3 기관에 의해 실행될 수 있다.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도 이미 10대는 학교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커지고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2012년을 전후로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매개된 사회 생활로 급속히 옮겨간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와 접촉 공포, 부모들의 불안, 원격 수업, 기기 의존도 심화 상황이 1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제 학교 등교 수업을 재개하면, 곧바로 학생들이 가까이의 폰을 멀리하고 예전처럼 대면 사회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최소한 학교에 함께 있는 동안에라도? 그렇게 되도록 아이들을 도와야 할 역사적 고비에 우리는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