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먼 루이스 리즈대학 지구변화학 교수 기고문
[편집자 주] 어제 유엔의 기후변화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해외 언론에서는 관련 기사와 칼럼들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절박한 문제임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 가디언에 실린 기후변화 학자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필자는 칼리지 런던 대학과 리즈 대학의 사이먼 루이스 지구변화학 교수다.
여섯 번째 정부 간 기후변화 보고서는 여느 보고서와는 다르다. 4천 쪽의 방대한 보고서는 66개국의 독립적인 과학자 수백 명이 집필했다. 195개 정부가 의뢰했고, 나온 결론에 대해 한 줄 한 줄 검토한 후 모두가 추인한 것이다. 이 정부들은 지지하든 유보적이든 적대적이든 보고서의 내용을 받아 들었다. 무슨 내용이 담겼나?
보고서는 인간 행동이 우리 기후를 바꾸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런 결론 뒤에는 놀라운 연구 결과들이 있다. 화석 연료의 연소와 삼림 파괴로 인해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200만 년 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메탄과 다른 온실 가스가 더해져 지구의 기온은 지난 12만5천 년 사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 결과 북극해의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으며, 더 뜨겁고 잦은 폭염과 더 극심하고 잦은 폭우가 닥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가뭄과 산불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오늘날 지구의 기온은 산업혁명 시기 대비 1.1도 상승을 기록 중인데 이것은 기후 과학자들이 30여 년 전에 예측했던 대로다. 폭염과 폭우의 증가도 오래전에 예견되었던 것들이다. 힘을 가진 자들은 이전 보고서에 담긴 경고를 들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도 진행 중인 폭염과 산불, 홍수로 인한 삼림 파괴는 지구 전역에 참극을 낳고 있다. 캐나다, 독일 같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조차 기후 위기의 영향은 점점 고조되어 가는 데 반해 한심할 정도로 준비가 안 돼 있음을 최근 사건에서 확인한다. 그런 파괴적인 사건들은 지난번 경고에 따른 행동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결과들이다.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가정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와 있다.
전 지구 차원에서 이산화탄소의 방출량은 코로나 봉쇄 기간 중 잠시 하락한 후 다시 오르고 있다. 국제 에너지 기구에 따르면,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지 않으면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2023년 최고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설상가상,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 가스 방출이 제로 상태로 줄지 않는 한 극심한 폭염과 폭우, 가뭄 또한 더 악화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어렵다. 12만5천 년 전처럼 더운 시기를 우리가 어떻게 생각조차 할 수 있겠는가? 그때는 인류와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던 시기였다. 200만 년 전이라면, 그때는 우리 종이 진화해 출현하기도 전이었다. 이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변화가 실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긴급히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빨리 행동에 나서야 한다.
문제는 궁극적으로 화석 연료 사용이 '진보의 덫'이라는 데 있다. 수십 년 전 화석연료는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우리 삶을 크게 개선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그 반대다. 화석 연료는 우리 삶과 생계를 파괴하고 있다. 화석연료는 인류의 진보를 가능케 한 기발한 수단이던 것에서 이제는 인류 진보를 전복하는 덫으로 바뀌었다. 기후 위기의 원인은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인간 행동'이 아니고, 타고난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의 결과도 아니다. 기후 위기는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것에 특정한 투자를 지속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바로 그것들을 바꿔야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행여 진보를 가능케 한 화석 연료 기업이나 투자자, 정치인 들을 두고 진보의 적이라고 말하면 불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우리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화석 연료 산업은 강력하면서 복합적인 적이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세계의 가장 영향력이 큰 로비스트들이 활약했던 분야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업계는 각종 보조금과 군사 작전, 무료 오염 배출권 등을 누렸고, 이 모든 것이 화석 연료에 대한 접근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석유, 석탄, 가스는 또한 우리 일상에도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가정의 난방부터 교통수단의 동력원에 이르기까지. 이 거대한 덫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하나의 정책이나 획기적 기술, 활동가들의 캠페인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우리는 화석 연료에 대한 세 갈래의 공략이 필요하다. 1)산업을 직접 겨냥하는 것과 2)화석 연료 시대를 끝내는 데 필요한 정치적 변화를 끌어내기 위한 광범위한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것, 그리고 3)우리 일상의 화석 연료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연금기금으로 하여금 화석연료 산업에 대한 투자를 처분하라고 요구한다거나, 멸종 반대를 위한 다음 시위에 참여한다거나, 오염 유발 가전 기기를 전기식으로 교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저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또한 중요한 것은 기후 위기와 화석 연료 시대를 끝낼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가정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소재로 삼아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획기적인 변화는 궁극적으로 정부 규제로부터 나오겠지만 그런 변화의 요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 책임이다.
새로운 여섯 번째 기후변화 보고서에는 나쁜 뉴스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한 가지 분명히 긍정적인 내용도 들어 있다. 우리가 직면하게 될 황폐함의 수준은 바로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지금 세계가 온실가스 방출의 대대적인 감축에 나서 2050년까지 넷 제로(방출과 흡수량이 상쇄되어 제로가 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도에 묶어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기후 변화의 최악은 면할 수 있게 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이 수백만 사람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화석 연료 로비의 힘보다 더 크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기후변화의 과학을 수용한다. 이제 정부가 아는 것에 기초해서 행동하도록, 그리고 우리가 화석 연료에 의한 진보의 덫을 피하는 것을 돕도록 압박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