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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Sep 01. 2021

방황 고뇌 좌절의 미술사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벌거벗은 미술관'의 양정무 교수

[편집자 주] 이번에 독서 근황을 들어본 손님은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입니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시리즈로 미술 이해의 대중화를 이끌어온 양 교수는 최근 <벌거벗은 미술관>이라는 미술 에세이를 출간했습니다. 미술관 방문도 쉽지 않은 요즘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미술 감상 사이트와 볼 만한 작품도 소개받았습니다.


-이번에 출간하신 『벌거벗은 미술관』을 세 문장 이내로 소개하신다면?

누구나 한 번쯤 미술관에서 가서 작품 앞에 섰을 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마주한 것 같은 당혹스러움을 느끼신 적이 있을 겁니다. 감동은커녕 당황스럽게 느껴지더라도 고전이나 명작이라는 권위 앞에서 우리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죠. 이 책은 ‘위대한 미술’과 그것에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엄숙주의를 거둬내고 그 속에 자리한 미술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려 했습니다.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권하고 싶으신가요?     


미술을 여유 있는 사람들의 허세로 생각하거나 나와 전혀 관계는 세계로 보는 독자에게 먼저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가들의 개인사나 연애사에 지친 미술 애호가에게도 안성맞춤의 책이라고 생각되네요.      


-굳이 이 책을 피해야 할 독자가 있다면?     


미술을 신비의 세계로 남겨 놓고 싶은 독자에게는 굳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요즘 같을 때 추천하고 싶은 작품 셋과 짤막한 큐레이션 해설을 곁들여 주실 수 있을까요?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2)/최후의 심판(1536-41)     

한 개인이 빚어낸 거대한 예술적 도전. 베토벤 교향곡 9번과 함께 이 그림을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알레그리(Alegri)가 작곡한 미제레레가 연주되는 공간이지만 장엄함에는 베토벤 교향곡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뭉크, 스페인독감 회복 직후의 자화상. 1919     

20세기 팬데믹, 스페인 독감에서 회복한 뭉크의 자화상이다. 뭉크는 심신이 병약해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지만 결국 그것을 극복해 노르웨이의 국민화가로 거듭난다. 거칠면서 굵은 선과 강렬한 색채로 이루어진 얼굴에서 삶에 대한 의지가 엿보인다.


데이비드 호크니, 수선화, 2020.3.      

생존하는 노화가 데이디드 호크니가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자가격리 중 그린 그림. 이 그림의 원제는 ‘기억하라 누구도 봄을 빼앗을 수는 없다(Do remember they can't cancel the spring)’이다. 
 

-온라인으로 미술을 감상할 수 있는 팁이 있을까요?

     

저는 구글 이미지 검색을 즐겨합니다. 원하는 작품에 대한 고화질 도판이나 연관 자료를 빠르게 얻을 수 있어요. 작가별로 작품이 잘 정리된 Web Gallery Art도 추천합니다.     


-예술의 모든 영역(제작 전시 유통 체험)에서 디지털화, 온라인 바람이 거셉니다. NFT(대체불가능토큰), 메타버스 이야기도 나옵니다. 한 말씀 추가한다면?     


테크놀로지는 미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술의 역사는 테크놀로지의 역사라고 할 정도이지요. 그런데 과거의 예를 봤을 때 테크놀로지의 응용 그 자체가 미술의 발전으로 직결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는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험과 감성의 구현이 결국 관건이겠지요.       


-미술, 예술 문화 분야 독서에 관심 있는 분에게 2-3권을 추천하신다면? 

조상인, 『살아남은 그림들』, 2020

월터 아이작슨, 『레오나르도 다 빈치』, 2019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색채 속을 걷는 사람』, 2019     


-지금 특별히 관심이 있는 주제나 대상은 무엇인가요?     


난처한 미술이야기 7권을 집필 중으로 로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 미술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는 파노프스키가 쓴 신플라톤주의와 미술에 관한 논고를 읽고 있습니다.     


-요즘 주력하는 일이나 일과는? 코로나로 인한 개인 일상이나 생각에 변화가 있다면?     


곧 연구년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심기일전하여 교수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 합니다.      


-각별히 오래 지켜온 습관이나 수칙, 모토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오래된 습관이라면 라디오를 자주 듣는다는 겁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라디오 청취가 저의 가장 오랜 습관입니다. 삶의 모토라면 ‘실수 다음엔 기회가 온다.’ 정도입니다. 성격이 급하다 보니 실수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다음에 더 잘 하자’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지금 구상 중이거나 집필 작업 중인 책이 있으신가요? 앞으로 꼭 써보고 싶은 책은?     


『난처한 미술이야기』의 영문판을 구상 중입니다. 기회가 되면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개설서를 영문으로 쓰고 싶습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한두 권 추천해 주신다면? (이유도 간략히 곁들여 주셔도 좋습니다.)     

민영환, 『해천추범』 (1896년 민영환의 세계일주): “우리에게 근대 세계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한국인 최초의 세계일주에 대한 여행기를 통해 근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복원해 보자.”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19세기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회평론가가 설파하는 대안적 자본주의.”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꼭 권하고 싶은 책 세 권을 고르신다면?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길현모 역, 탐구당, 2014.09.11.)

빈센트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미술』(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     


-생사를 불문하고 한 명의 예술가와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혹은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매번 만나고 싶은 작가가 바뀝니다. 지금 시점에서는 미켈란젤로입니다. 특히 율리우스 2세 교황에게 대들다가 지팡이로 맞았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전해오는데 이것이 진짜 사실인지 묻고 싶네요.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지명해 주시겠습니까?

송길영 바이브컴퍼니(전 다음소프트) 부대표.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세 단락만 뽑아서 낭독해 주신다면 어떤 단락을 꼽으시겠습니까?


그리스 조각에 대한 관심이 샘솟던 르네상스 시기부터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이 원래 채색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복제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르네상스 이후 ‘조각하면 순백색 대리석 조각’이라는 공식이 생겼던 겁니다. 그러다 18세기에 이르면 순백색 대리석 조각을 이상적인 피부의 재현으로 미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나오게 됩니다. 인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이 시기에 새하얀 대리석 표면은 재현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런 방식으로 조각상을 바라보면 대리석 표면이 점점 살아 있는 피부로 다가옵니다. (P.27-28)


오늘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의 미술관 중 여러 곳이 프랑스혁명과 이후 등장한 나폴레옹 시대에 세워지거나 크게 확대됩니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의도는 결코 선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유럽 각지에 박물관과 미술관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과정에서 나폴레옹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참담한 정복 전쟁 속에서 벌어진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에서 우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P.164)


인간은 누구나 다 실수를 합니다. 완벽한 정치가도, 완벽한 연주자도, 완벽한 화가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왔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근현대의 역사는 바로 이 같은 도전과 실험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인류 역사 전체도 이런 관점에서 다시 써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술을 통해 본 인간은 어떤 모습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인간은 늘 방황하지만 그것에 도전해서 변화를 일으키는 자’라고 답할 것입니다. 미술의 역사는 바로 이 점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미술의 역사를 명작들로 이어진 위대한 역사라고 알고 있지만, 조금만 냉철하게 살펴보면 미술의 역사는 도리어 실패와 미완성으로 이루어진 고뇌와 좌절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P.271)


*양정무

어린 시절, 다락방에서 발견한 백과사전의 삽화에 마음을 빼앗긴 후 미술을 운명이라 믿게 됐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술사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이자 한국미술경영학회 초대회장이다. 원시, 고대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미술의 장구한 역사를 인류 문명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서들을 꾸준히 집필 중에 있다. 지은 책으로 『벌거벗은 미술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1~6』 『그림값의 비밀』 『상인과 미술』 『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렌체』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그리스 미술』 『서양회화사: 조토에서 세잔까지』 『신미술사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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