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편집자 주] 지난번 이 코너의 답변자였던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는 '요즘 무슨 책 읽는지 궁금한 사람'으로 마인드 마이너인 송길영 바이브 컴퍼니 부사장을 호명했다. 그에게 이메일로 독서 안부를 물었다. 마침 새로운 책 출간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근황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100년 만에 모든 인류에게 황망히 닥친 팬데믹을 관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공적인 일이라면, 사적으로는 저도 그저 감내하는 사람 중 하나로 살아가고 있죠. 사회 변화의 진폭이 커짐에 따라 구성원 각자가 놀라고 낙담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제 인류에게는 새로운 지혜가 요구될 것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요즘 가장 주력하는 일은?
지난 20년 간 관찰해 온 것들을 아카이브하는 작업입니다. 삶의 변화가 사회 변화를 추동한 이력을 데이터를 통해 확인하고 그 과정을 기록들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가장 호기심이 가거나 궁금한 문제는?
고도성장으로 압축적인 경제 발전을 이룬 우리 사회에서 현기증을 느끼고 있는 각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빠른 환경 변화에 맞춰 제도와 인식도 현행화가 이뤄져야 하지만 관성과 배려의 부족으로 균등하게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존을 위해 열심히 적응하는 과정에서 쌓여만 가는 개인의 피로와 이것의 적절한 해소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절망감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빅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mind)을 읽는(mining) 전문가로 오래 활동해 오셨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일이나 역할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출발점은 데이터 속 남겨진 흔적을 통해 각자의 행동과 감정을 파악하고 이렇게 형성된 주관의 데이터들을 모아 그 사회의 객관적 주관, 다른 말로 상식(common sense)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상식의 변화가 어떤 새로운 규칙을 형성하고 생각의 전이가 사회를 바꿔 나가는지를 고찰해 보았습니다. 지금은 그런 사회 변화가 인류의 숙명이라고 했을 때, 우리의 욕망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이해하려는 시도와 이런 변화의 메커니즘 속에서 각자가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가 2년이 되도록 쉽게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트렌드 전문가로서 코로나 19 가 우리 사회에 남길 가장 크고 중요한 발자국은 무엇일 거라고 보시는지요? 지금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보는 것이 있다면?
지금의 위기를 삶에서 겪는 예외적 불운으로 치부하고 시급히 대처하는 한편, 이전 삶으로 다시 회귀하기를 원하는 마음들을 데이터 속에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 기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길어지며 이제는 그 이후의 삶이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막연히 느끼는 마음들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겪는 일의 대처와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상처가 그저 일시적인 것이라고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삶의 공통 경험이 이토록 큰 규모로 전 인류 차원에서 다가온 경우는 대단히 드뭅니다. 특히 물리적, 논리적으로 전 세계가 연결된 지금은 이전의 팬데믹에 비해 체감된 상실이 더욱 클 수 있습니다. 국가별 대처와 이에 따른 승패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사람들은 제도와 시스템, 문화와 관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궁리로 위험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나은 삶을 보장받으려는 집단의 현명함은 영화 <엘리시움>에서 보는 것처럼 국가 간 우열을 단순화하는 부작용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이들과 예측 가능한 평안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공통된 욕망을 배려하는 새로운 방안과 시도가 공유되면서 인류는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봅니다.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수단은 점점 다변화하고 있습니다. 평소 세상을 어떤 방식이나 채널을 통해 읽으시는지요?
닥치는 대로 읽는 기벽을 가진 제게 인터넷과 유튜브의 확장은 천국의 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관심과 행동에 맞추어 정교하게 개인화되는 알고리즘은 자칫 잘못된 편향을 가중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비책으로 최대한 사회 문화적으로 저와 거리감이 있는 분들로부터 의견을 듣고 새로운 관점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분들의 관심사가 포함된 정보를 새로운 생각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 후 항해 과정에서 다시 그분들과 동류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컬래버레이티브 필터링 시스템에 의지합니다.
-디지털 시대 매체 환경에서 책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는 듯합니다. 일상에서 독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책의 강점은 질감과 추억, 그리고 읽는 행위를 스스로 바라보는 뿌듯함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애 속 주요한 장면과 수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책의 효용은 정리된 체계적 지식의 집적된 정보가 비용을 지불한 독자와 등가 교환되는 지식의 보상 체계에서 기인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적 유용성이 유지된다면 책은 얼마든지 의미와 가치를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최근 플랫폼에서 미리 공개되는 웹소설이나 웹툰과 같은 디지털 저작물의 생성 배포 시스템이 그만한 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면 지금 책의 위상은 지속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Z 세대를 위시해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탐색, 습득하는 것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종이 기반의 정보 제공이 갖고 있는 향수와 습관성이 애초에 부재할 수 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합니다.
-각별히 오래 지켜온 습관이나 수칙, 모토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당신의 모든 것은 메시지다’라는 생각을 늘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각자의 생활과 표현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분의 의도와 생각을 유추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토라고 한다면, 지금 제가 가장 고민하는 문장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입니다.
-집필 중이거나 계획 중인 책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신다면?
이달 말쯤에 나올 새 책의 제목은 <그냥 하지 말라>입니다. 부제가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입니다. 2012년 첫 책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와 2015년 <상상하지 말라>를 출간한 후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선뜻 책으로 내는 것이 저어되었습니다만, 이번에 팬데믹을 거치면서 얻은 생각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새로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죽기 전에 꼭 쓰시고 싶은 책이 있나요?
무언가 불확실한 것을, 더 발전되어 고칠 수 없는 상황에 남기는 것은 두렵습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한두 권 추천해 주신다면? (이유도 간략히 곁들여 주셔도 좋습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휴먼카인드: 인간이라는 종의 본성에 대한 희망의 관점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옳음에 대한 주관과 나의 생각 속 편향에 대한 고민
애덤 그랜트, 씽크 어게인: 기득지가 순식간에 고정관념이 되어버리는, 지식의 유효기간이 줄어드는 시대의 생존법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꼭 권하고 싶은 책 두세 권을 고르신다면?
서은국, 행복의 기원: 명제처럼 행복을 추구하지만 자신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저자의 담담하고도 현실적인 조언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경계를 넘나드는 대담한 융합적 상상력이 우리의 고정관념에 발랄하게 도전하는 쾌감을 느낄 수 있음
위화, 인생: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맞서기 두려울 때 미리 맞는 인생의 예방주사
위화, 허삼관 매혈기: <인생>을 읽은 후 너무 우울할 때, 백신을 맞은 후 먹는 해열제 같은 작가의 위로기
-생사를 불문하고 한 명의 인물과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혹은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앨런 튜링에게 “무한한 천재로서 세상을 바라본 시각과 우리 종의 미래”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송길영
여러분들이 남기신 일상적 데이터 속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캐는 광부, 마인드 마이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