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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Sep 14. 2021

자율적인 삶의 조건

[번역을 마치고] '공유지의 약탈'의 안효상

[편집자 ] 국내에도 토지 공개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주제와 관련한 주요 도서인 가이 스탠딩 <공유지의 비극> 우리말로 옮긴 안효상 번역가로부터  이야기를 들어 . 현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이기도  번역가는 공유지 문제와 함께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일찍부터 관심을 갖고 국내에 이론적인 소개는 물론 사회적 학습과 입법 운동에도 힘을 쏟아왔다.


-이번에 번역하신 <공유지의 약탈>을 세 문장 이내로 소개하신다면?


모든 사람은 자연이 주었거나 함께 만든 공통의 부를 누릴 자격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최근 신자유주의 하에서 소수가 이를 약탈했다. 이 책은 이런 상황을 고발하면서, 이를 되찾기 위한 방도로 공유지 기금과 공유지 배당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권하고 싶으신가요?


사회적 불평등, 기후변화 등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 특히 인습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새로운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책의 내용이나 저자도 그러하지만, 그동안 기본소득과 관련한 소개와 논의를 앞장서서 펼쳐 오셨습니다.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베를린 장벽과 레닌 동상의 붕괴 이후의 혼돈 속에서도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했는데, 이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이 모든 사람이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부가 좋은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조건이 될 때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생존을 어쩔 수 없이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 다수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율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자신에게나 사회에게나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진다고 봅니다.


-어느새 기본소득은 국내 정치권에서도 쟁점이 되기도 할 만큼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논의도 꽤나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편입니다. 간단히 언급하기는 어렵겠지만, 최근 진행되는 논의를 보면서 중요한 점인데 빠졌거나 잘못 이해되고 있거나, 꼭 첨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기본소득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는 것에만 주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다른 정책에 비해 빈곤 퇴치나 불평등 완화에 도움에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해진 예산이 있을 때 이를 가난한 사람에게만 주는 것이 모두에게 나누어주는 것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나누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하는가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비율로 소득세를 거두어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준다고 하며, 상위 소득자는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되고, 하위 소득자는 내는 세금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더 큽니다. 물론 누진세로 설계할 경우에는 이런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기본소득이 분배와 재분배 체제를 바꾸는 커다란 기획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기본소득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좋은 책을 추천한다면?

제가 번역한 것인데,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창비, 2018)이 입문하기에 좋으며, 좀 더 깊이 있고 학문적인 관심이 있다면,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가 지은 <21세기 기본소득>(2018, 흐름출판)이 좋습니다.


-지금 특별히 관심 있는 지적 관심사는 뭔가요?


공유지(commons)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제가 번역한 가이 스탠딩의 <공유지의 약탈>은 공유지와 기본소득을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독특한 책입니다. 하지만 지난 세기 말부터 공유지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논의가 크게 일어났고,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이런 공유지 논의를 통해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찾을 수 있는가입니다. 이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은 기후위기를 배경으로 해서 좀 더 정의롭고 민주적인 사회가 가능한지, 가능하게 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요즘 주력하는 일이나 일과는? 코로나로 인한 개인 일상이나 심경에 변화가 있다면?


기본소득이 아이디어에서 이제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다고 보고, 좀 더 대중적인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9월 한 달 동안은 기본소득 입법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입법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장 기본소득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청원 과정 자체가 교육 과정이자 정치적 논의를 확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각별히 오래 지켜온 습관이나 수칙, 모토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하나는 일상을 잘 꾸려야 한다는 것인데, 저같이 이런저런 일을 동시에 하는 사람 같은 경우에는 일의 교대(shift)를 빨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이나 논쟁과 관련해서는 저와 반대되거나 다른 입장을 대할 때 그쪽 처지에서 생각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요. 주장하는 내용의 진위나 적실성보다는 어떤 맥락과 배경에서 그런 주장을 하는지를 알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지금 구상 중이거나 번역/집필 작업 중인 책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앞으로 써보고 싶은 책은?

제가 원래 미국사 전공인데, 최근에 The Chinese Question이라는 책의 번역을 맡았습니다. 미국의 인종주의를 중국인 이주의 역사라는 맥락에서 다룬 책입니다.


써보고 싶은 책은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역사>입니다. 몇 년 동안 이를 위해 기본소득을 주장한 여러 문헌을 발췌 번역해서 소개하는 일을 했었는데, 시간이 나면 정리해서 기본소득 아이디어의 부침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고,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를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한두 권 추천해 주신다면? (이유도 간략히 곁들여 주셔도 좋습니다.)

미국의 여성 정치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우리가 겪고 있는 '다중적 위기'를 아주 짧은 분량으로 설득력 있게 정리해 주고 있는 책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위기를 둘러싸고 인간의 삶의 변형에 대한 상호 논쟁적인 조르조 아감벤, <얼굴 없는 인간>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잃어버린 시간의 연대기>도 심각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꼭 권하고 싶은 책 세 권을 고르신다면?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괴테 <파우스트>, 심훈 <상록수>

-생사를 불문하고 한 명의 저자와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고 (혹은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제 지적 관심사의 연장인데, 토머스 페인을 만나서 <토지 정의>라는 팸플릿에서 전개한 이중적 소유권(자연적 소유와 인공적 소유)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고안해냈고, 또 누구에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지성사적 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유지의 약탈>에서 세 단락만 뽑아서 낭독해 주신다면 어떤 단락을 꼽으시겠습니까?


59쪽

삼림헌장은 재구성되고 있던 사회에서 공유지와 공유자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기념물이었다. 하지만 삼림헌장을 공유토지를 둘러싼 오랜 싸움과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적 문서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삼림헌장은 마그나카르타와 마찬가지로 영원한 보편적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번성하는 공유지는 중세 시대에 공유지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좋은 사회에 필수적이다.


323쪽

진정한 지식 공유지는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생성되고 공유되며, 모두가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곳이다.


414쪽

근본적으로 기본소득은 사회정의의 문제이다. 우리의 부와 소득은 우리 자신이 하는 어떤 것보다 우리 공동의 선조들이 했던 노력 및 성취와 훨씬 더 많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사적 상속을 허용한다면 사회적 상속도 받아들여야 하며, 기본소득을 우리의 집단적 부에 근거한 사회배당으로 간주해야 한다.


*안효상

대학에서 서양사를 전공했고, 지금도 역사 자체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사태를 역사적 시각에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회당 대표와 진보신당 공동대표로 활동했고, 지금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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