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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 Aug 25. 2020

Ep. 17 세인트 킬다, 작은 소음

   ' 오늘 레쥬메 돌리러 같이 갈까? '

지난번 뭄바 페스티벌 때 양손에 레쥬메를 들고 온 친구가 마음에 걸려서 문자 한 통 보냈다.

당사자는 오지랖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옆에서 응원해줄 수 있는 것뿐이었다.


오늘의 레쥬메 돌릴 곳은 세인트 킬다라는 곳이었다. 시티에서 트램을 타고 약 20~30 소요되고  넓은 모래사장 때문인지 현지인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였다. 워홀러들에게는 멜버른에서 오래된 테마공원 루나 파크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시티 근처 야라강만 보다가 드 넓은 바다를 보니 사람들이 왜 바다를 보고 뛰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수영은 못하지만 이미 마음속은 저 한가운데 떠다니고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보지 못한 이국적인 풍경에 매료되었다.







" 우리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

" 이제 보이는 카페, 레스토랑 다 들려볼 거야 "


친구의 가방 속 이력서는 꽤나 두툼했다. 그 양을 보고  나도 모르게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이 친구는 얼마나 거절을 당했기에 저 많은 이력서를 들고 온 것일까?

오늘 또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면 가방 속에 있는 종이 개수만큼 거절을 당할 예정이라는 건데, 유리 멘탈을 가지고 있는 내게는 그 친구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나 또한 호주에서 이력서를 돌리면서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었다. 거절의 방법은 다양했다.  

 ' 사장님이 없어서, 혹은 매니저가 없어서 '

 ' 관련 직종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만 채용하고 있어서'

 '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뽑니? '

 ' 다른 사람이 인터뷰를 보러 오기로 해서 나중에 연락해줄게 '

특히 가게 문 앞에 직원을 구한다는 종이를 붙여두고 ' 우리 매장은 지금 사람을 뽑고 있지 않아서 '라고 답변을 들을 때는 너무나 야속했다.


해맑던 친구가 서서히 미소를 잃어가자 그 친구를 통해 나의 예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젠가 뽑히겠지 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서도 다음날 아무 메시지 없는 핸드폰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다행히 나 자신과 타협하여 운 좋게 일자리를 구했고 이제 마지막 남은 이 친구가 빨리 좋은 소식을 듣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그렇게 약 5시간 동안 세인트 킬다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레쥬메를 뿌렸다. 근처에서 밥을 먹을까 고민했지만 둘 다 햇빛을 오래 쬐어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지 않아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며 트램 정류장으로 이동하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소리가 점저 가까워서 무시할 수가 없었다.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니 백인 아저씨 한분이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의식 중에 우리가 무언가를 실수한 게 있나 서로를 쳐다보았지만 잘못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약 1미터 채 되지 않은 거리에서 '  fucking chinese, go back to your country '라고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처음에 어리둥절하다가, 아시안 인종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전생에 아시아인이랑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  얼마나 화가 났으면 15분 내내 뒤쫓아와서 돌멩이를 던지며 역정을 내는 걸까?


다행히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그 아저씨는 저 멀리 떠났고 우리는 그렇게 기분 나쁜 채로 시티로 넘어왔다.


     가끔 해외여행 유튜버들이 영상을 찍고 있는데 현지인들이  캣 콜링이나 인종 차별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분들이 영상에 찍히기도 하는데 그분들이 끝까지 가서 따졌던 영상들이 기억난다. 지금 당장 그냥 웃고 넘기거나, 무시한다면 분명 다른 한국인에게 그런 행동을 보일 테니 분명히 따질 건 따져야 한다며 끝까지 쫒아가서 현지인에게 한소리 했던 유투버 님이 기억이 난다.


평범한 문제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텐데 인종차별을 직접 당해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날 침대에 누워 그 아저씨가 계속 생각났다. 그 상황에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후일, 지인과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외각에는 아직 백호주의 성향을 띄는 사람들이 있고 공격적인 성향을 띄는 사람들과 마찰이 생길 경우 피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 아무런 피해를 당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렇게 나의 첫 세인트 킬다 방문은 인종차별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상처 주는 말이나 인종차별적인 말을 하지 않았나 되돌아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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