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 Spirit 13. 삼성전자에게 필요한 인재 양성 프로젝트
이번 주 월요일 삼성전자는 지방 과학기술원 3곳과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기로 협의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KAIST, UNIST, DGIST, GIST, 포항공대, 연세대, 성균관대까지 총 7곳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두게 되었다.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에 있는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계약학과를 포함하면 앞으로 총 10개의 대학에서 매년 수백에서 수천 명의 반도체 인재가 양성될 예정이다. 계약학과는 20년 전부터 산학협력법을 통해 운영할 수 있었지만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최근에야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준비되지 않은 채로 허술하게 만들어진 반도체 계약학과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이대로 간다면 반도체 계약학과는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고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세계 축구를 대표하는 바르셀로나와 레알마드리드가 명문 클럽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훌륭한 유스 시스템에 있다. 재능이 넘치는 아이들을 팀의 전략과 전술에 최적화시키기 때문에 적응도 빠르고 카를레스 푸욜이나 라울 곤잘레스 같은 선수는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되기도 한다. 바르셀로나 유스 시스템은 '라 마시아'로 농장이라는 뜻을, 레알마드리드 유스 시스템은 '라 파브리카'로 공장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공장장은 팔기 위해 물건을 만들지만 농부의 손으로 정성스레 기른 곡식은 직접 먹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바르셀로나 1군에서 활약하는 라 마시아 출신 유스는 많은 반면 레알마드리드 1군에서 활약하는 라 파브리카 출신 유스는 적고 대부분은 다른 클럽에 팔려 제2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이처럼 이름 하나에도 학생들을 바라보는 철학이 담겨 있다.
반도체 계약학과는 10년 안에 15만 명의 인력을 양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따라 추진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교육 관점에서 10년은 매우 짧은 단기에 해당하며, 15만 명이라는 숫자는 질을 포기하고 양으로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다. 5년마다 바뀌는 정부는 정책의 양적 효과를 증명해야 하지만 영속을 전제로 하는 기업은 질적 성과로 승부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고도로 발전된 반도체 산업은 이제 B급 인재 만 명을 양산하는 것보다 S급 인재 한 명을 발굴하는 게 중요해졌다. 천재 한 명이 금맥을 발견하면 나머지는 금맥을 캐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치한약수'라고 불리는 의학 계열 학과를 선호하고, 반도체 전공 교수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반도체 계약학과만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 없다.
정부, 기업, 대학, 그리고 학생들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다. 다만 반도체 패권 전쟁에 필요한 즉시 전력을 보충하는 것과 함께 초격차를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반도체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반도체 역사를 살펴보면 인텔이 지배하던 로직 반도체 시장에는 엔비디아와 AMD가 주도하고 있고 애플과 테슬라 같은 빅테크까지 침투하고 있다. 이렇게 반도체가 춘추전국 시대를 맞이한 배경에는 사람이 있었다. 특히 AMD 라이젠 탄생의 주역이자 애플과 테슬라의 반도체 내재화를 이끌었던 짐 켈러, AMD 라데온 개발의 수장이자 인텔의 그래픽카드를 출시한 라자 코두리 같은 천재 엔지니어의 이적은 산업의 지형도를 바꾸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황금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런 S급 인재를 직접 양성해야 한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가와 별개로 결혼은 두 배경을 가진 가족이 하나가 되기 위한 사회적인 계약이다. 이 과정에서 시댁과 친정은 본래의 뜻을 넘어 불편함과 친근함을 의미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할 것을 바라지만 이를 간섭이라고 여기는 며느리는 언제든지 돌아가도 반겨주는 친엄마의 품을 그리워한다. 예전보다는 이혼이 흔해졌지만 여전히 여성의 재혼을 달갑지 않게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남아있다. 특히 자녀가 있으면 남편이 집안에 소홀해도 아내는 눈물을 삼키고 집안을 지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게다가 육아까지 하면 경력 단절이 발생하고 꿈꿔왔던 인생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여성은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혼인신고서라는 계약서에 서명하는 방식을 꺼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반도체 계약학과는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를 기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기업이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기업 실무진이 교수로 발탁되기도 한다. 반도체 계약학과 학생들은 전액 장학금은 물론이고 추가적인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학업에 전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졸업 이후에는 100% 취업이 보장된다. 학생들은 최소 몇 년 동안 학과와 계약된 기업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고 만약 학생이 입사를 포기하거나 다른 기업에 입사하면 장학금을 도로 뱉어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 수년 동안 수천만 원을 들여 키운 인력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도 본인을 길러준 기업에 입사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학생이 기업에 입사하고 몇 년이 지나 하나의 프로젝트를 리드할 수 있는 직급이 되었을 때 발생한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대이직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기업은 더 이상 충성심을 요구하거나 배신자라도 매도할 수 없게 되었다. 유능한 인재는 인텔, 퀄컴 같은 반도체 공룡 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같은 빅테크에서도 탐낸다. 이런 기업에서 수억 원의 연봉계약서를 제시하면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 계약 기간이 남아있더라도 위약금을 내면 그만이고 계약이 만료된 상황이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이상적으로 들리겠지만 과감하게 조건을 없애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아직 배울 게 많은 신입사원을 억지로 잡아두기보다 다양한 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성장한 경력사원을 정든 회사로 복귀시켜 기회를 주는 게 오히려 현실적일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S급 인재를 다시 데려오려면 금전이나 계약이 아니라 원대한 미션과 명확한 비전이 필요하다.
한때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들었다는 표현이 유행했을 정도로 장인정신은 보통 좋은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장인정신이 과해서 실패하는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아무리 장인이 세계 최고의 기술로 영혼을 담아냈다 할지라도 고객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실패한 제품이 된다. 따라서 시장에서는 크래프트맨이 아니라 비즈니스맨의 눈이 요구된다. 기업가는 취미 생활을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나 기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에서 기회를 찾는 감각이 있다. A급 인재와 S급 인재의 차이도 기술과 시장, 제품과 고객을 연결하는 기업가정신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장에서 열광하는 기술, 아릅답지 않아도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진정한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낸다.
반도체 계약학과는 말 그대로 반도체에 특화된 인재를 기르기 위해 만들어진 학과이므로 반도체와 관련된 소자, 재료, 공정, 설계 기술을 가르친다. 과거 공대가 전기공학, 전자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처럼 광범위하게 구분되었다면 현재 공대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5G, 로봇 등 특정 산업에 집중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워낙 산업의 변화와 발전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여러 분야를 두루두루 할 줄 아는 제너럴리스트보다 하나라도 월등하게 잘하는 스페셜리스트가 주목받는 시대에서 이런 트렌드가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기업에서 강조하는 융합형 인재나 창의적 인재가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또한 기술이 발달할수록 훌륭한 인재에게는 도덕성과 윤리의식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학생이 가진 재능, 적성, 소질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교사가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누군가는 기술에 특화된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엔지니어를 교육하는 유능한 코치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누군가는 젠슨 황이나 리사 수처럼 기술을 사업으로 확장하는 위대한 CEO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역량이 드러나고 당사자가 인지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반도체 산업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와 철학을 학습하고 인문학적인 소양까지 겸비하려면 평생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인재는 반도체 기술에 관한 이론과 실무 지식은 물론이고 반도체 기술을 올바르게 활용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S급 글로벌 리더라고 할 수 있다.
최근 ChatGPT 같은 인공지능의 출현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변화에도 가속도가 붙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1위로 도약했던 1993년에 떠올렸던 2023년과 현재 살아가고 있는 2023년의 모습이 매우 다른 것처럼 2023년에 떠올리는 2053년의 모습은 실제 2053년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더 많은 반도체를 필요로 할 것이며 과학기술 인재의 가치가 높아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따라서 기업이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처는 과학기술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반도체 패권 다툼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도 반도체 계약학과를 급하게 만들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일 년 뒤가 아닌 한 세대 미래를 바라보고 장기적인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