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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본주늬 May 27. 2023

반도체 본거지가 흔들린다

CEO's Spirit 21. 삼성전자에게 메모리 수성이 절실한 이유

Keywords

-엔비디아: AI의 기습

-삼성전자: EUV의 여유

-SK하이닉스: 솔리다임의 저주

-마이크론: 화웨이의 반작용

-인텔: IDM의 부활


2023년 현재까지 산업계에 가장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테마가 AI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번 주에도 AI의 대표주자인 엔비디아가 컨센서스를 훌쩍 뛰어넘는 실적을 발표하며 주가는 무려 30% 가까이 폭등했고, AMD 주가 역시 10% 상승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바다 건너 대한민국까지 영향을 끼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분위기가 좋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AI 시대가 다가올수록 대한민국의 주력 수출품인 메모리반도체의 상대적 중요성은 떨어지고, 미국과 중국의 다툼이 길어질수록 메모리반도체 시장 파이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시스템반도체라는 신대륙 개척 작전에 앞서 메모리반도체라는 본거지 수호 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해야만 한다.



1. 삼성전자, 계획대로 되고 있어.


지난 주 삼성전자는 1b 공정(12나노급)에서 DDR5 양산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2016년 1x 공정(18나노급)부터 2018년 1y 공정(16나노급), 2019년 1z 공정(15나노급), 2021년 1a 공정(14나노급)을 거쳐 어느덧 다섯 번째 세대에 접어든 10나노대 DRAM은 2024년 1c 공정(11나노급)으로 10나노대의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삼성전자는 1z 공정부터, SK하이닉스는 1a 공정부터 EUV 장비를 도입한 반면 마이크론은 1c 공정부터 EUV 장비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두고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보다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억지스러운 주장도 존재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어차피 내야 했을 수업료를 일찍 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유례 없는 반도체 불황에서 이 전략이 옳았다는 점이 재차 증명됐다.


삼성전자 DS부문은 올해 1분기 4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며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보다 더 많은 피를 흘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감산을 하지 않고 자존심을 부리다가 큰 코 다쳤다고 평가하지만, 오히려 삼성전자가 경쟁사의 추격을 뿌리치고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된 적자라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EUV 장비 수급이 쉽지 않고, 마이크론은 EUV 공정 도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발 대규모 적자는 메모리 3사의 향후 투자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두 경쟁사와 달리 메모리에만 올인할 수 없고 더 중요한 과제가 남아있는 삼성전자에게 이번 마일드한 치킨게임은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잠잠하게 만들고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온 힘을 다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전략으로 회자될 것이다.



2. SK하이닉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의 DRAM 시장점유율이 마이크론에게 역전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SK하이닉스의 매출액은 약 23억 달러로 전 분기(약 34억 달러) 대비 대폭 감소했다. 반면 마이크론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약 27억 달러로 전 분기(약 28억 달러) 대비 소폭 감소했다. 결국 최악의 업황 속에서 SK하이닉스가 10년 만에 DRAM 시장점유율 2위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물론 마이크론은 중국향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기 때문에 피해를 덜 입었고, 업황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SK하이닉스가 DRAM 시장점유율 2위를 탈환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걱정스러운 부분은 NAND 시장점유율도 키옥시아에게 2위 자리를 내어줬다는 점이다. K-반도체의 두 기둥 중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에게 SK하이닉스는 선의의 라이벌이자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가는 파트너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HBM3 같은 일부 제품에서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뛰어넘으며 긍정적인 자극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SK하이닉스의 위기가 삼성전자에게도 마냥 좋지만은 않다. 삼성전자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DRAM에서는 현재 3강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NAND에서는 한두 개의 업체가 추가로 구조조정되고 난 뒤에 장기적으로는 SK하이닉스가 부동의 2위로 자리를 잡아주는 것이다. 그래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한정된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지 않고 외부로 시선을 돌려 대한민국 반도체의 영토를 확장할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이라는 쓴 약을 잘 소화하고 더 강력해진 모습으로 일어서주기를 바란다.



3. 마이크론, 지뢰를 조심하라.


G7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중국은 마이크론의 제품에 대해 사실상 판매 금지 명령을 내렸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를 규제하면서 시작된 기업 때리기가 5년 만에 마이크론을 통해 돌아온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팽팽한 기싸움 속에 퀄컴, 브로드컴은 물론이고 TSMC, ASML 같은 제 3국 기업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마이크론이 판매하는 DRAM과 NAND의 직접적인 경쟁사이기 때문에 더욱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중국은 대한민국의 두 반도체 기업에게 손을 내밀었고 미국은 그 손을 잡지 말라고 경고했다. 심지어 중국에 들여놓은 발도 천천히 빼서 나오라고 압박했다. 대한민국은 메모리반도체라는 황금열쇠를 손에 넣으면서 세계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황금열쇠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였던 것이다.


마이크론은 미국 국적 기업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국, 일본, 대만, 유럽의 피가 섞인 다국적 기업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엘피다 대신 마이크론이 살아남으면서 미국에게도 메모리반도체를 보호해야 할 명분이 생겼다. 하지만 미국이 직접 메모리반도체 시장에 개입하게 되면서 압도적인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판을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 없는 한계도 생겼다. 이번 마이크론 사태로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의 우시 공장도 계속 노이즈에 시달리겠지만 중국을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원래 정치는 앞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뒤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기업은 마이크론이라는 지뢰를 피해서 최대한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는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엔비디아, AMD, TSMC, ASML는 팹리스 또는 파운드리로 노선을 확실하게 정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한 시스템반도체 시장에서 최대 수혜를 입은 기업들이다. 반대로 왕년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던 아성을 구축했던 인텔은 설계와 생산 양쪽에서 고전하며 IDM의 비효율성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공급망이 불안정해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스스로 설계한 칩을 직접 생산할 수 있는 IDM의 강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이미 덩치를 키울 대로 키웠기 때문에 커팅 대신 벌크업 전략을 써야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동안 비효율성의 대명사라고 치부되었던 반도체 공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라는 본거지를 보존하고 시스템반도체라는 신대륙을 탐험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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