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 관하여(끝)

조원강 에세이 - 이 별에 관하여 ,

by 조원강

이별의 고통에 잠시 빠져있던 나는 현실을 직시했다. 아직 일하는 중이었지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했다. 사진첩에 들어가 같이 찍은 사진부터 지웠다. 내 사진첩 속에서 웃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 지우란 말인가. 사진 속에서 우리 둘은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진을 다 지웠지만 내가 지우지 못 한 사진들이 있었다. 보통 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가끔은 그녀가 나를 찍어준 사진도 있었다. 우리는 사진을 누가 찍던 데이트가 끝나면 카톡에 사진을 공유했고 나는 거의 모든 사진을 저장했었다. 그녀가 찍어준 사진 속에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차마 그 사진들을 지우지 못했다. 그녀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내가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였다. 다음으로 그녀의 번호를 지우고 카카오톡프로필도 없앴다.(차단을 하려고 했으나, 혹시 나에게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숨김처리만 했다가 그것마저도 다시 원상복구 시켰다. 멍청한 놈. 나가 뒤져라.)


마음이 진정되지 않은 상태로 퇴근했다. 냉장고를 열었더니 그녀가 좋아했던 맥주 세 캔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마실 수 있는 건데 버리기도 아까워 빈 속에 맥주 한 캔을 들이켰다. 답답한 속이 조금은 내려가길 바랐지만 명치 어딘가에 걸려 소화가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희한하게 맥주를 마실 때, 맥주 주둥이 부분을 티슈로 닦는 버릇이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녀가 유일했다.

헤어졌지만 그녀의 공간이기도 했던 내 집이 잠시 공허하게 느껴졌다. 다 마신 맥주캔을 찌그러트리고 곧바로 욕실로 들어갔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를 닦고 몸을 씻어냈다. 오지 않기를 바랐던, 그러나 오고야 만 이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흔한 이별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뿐이었다. 그녀와 있었던 모든 추억을 분쇄기에 넣어 가루로 만든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생각처럼 그리 쉽게 될 일은 아니었다. 잠을 청하려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실망이나 원망, 아쉬움 같은 복합적인 감정이 폭풍처럼 몰려왔다. 잔인한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나에게 유일하게 필요한 건 시간일 테니까. 이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별에 익숙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었을지 생각하면 나 또한 지금 충분히 아파야겠지. 그녀도 나와 같이 아프기를, 참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던 그녀가 나보다 더 아파 가끔 내가 쓴 편지를 읽으며 울기를 나는 그녀와 나란히 누웠던 내 침대에서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헤어지고 며칠은 계속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헤어졌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나와 같이 여행 갔을 때 찍어준 사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랑 사귈 때 참 많은 사진을 같이 찍었었다. 하지만 내가 찍어준 사진을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다 여행 중 원래 가려던 곳에 사람이 붐벼 우연히 한 카페에 들어갔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카페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얼굴을 맞대고 찍기도 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나에게 걸어오는 그녀를 연신 찍어댔다.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던 중 손님들 대부분이 사진을 찍고 가는 포토존(오래된 카세트테이프 수십 개가 진열된 배경으로 나름 빈티지한 느낌이 좋았다)이 있어서 그녀를 앞에 두고 여러 번 사진을 찍었다. 배경도 이뻤고 그녀도 예뻤다. 여행을 다녀오고 그 사진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전에 유지하던 프로필(수영복을 입고 야외 온천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내가 찍어준 사진으로 바꾸었다. 아직도 그 사진을 프로필로 하고 있는 그녀였다.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인데 나는 이따금씩 그녀와 나눴던 카카오톡 메시지나 그녀의 프로필사진이 바뀌었는지를 수시로 보고 있었다. 요 며칠은 정말 보지 않아서 모른다. 그런데 그 사진일 확률이 높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헤어진 지 한 달하고도 며칠이 지난날이다. 나는 그동안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를 제대로 묻지 못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시 연락해서 물어본다거나 제삼자를 통해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스스로 답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매일 여러 질문들이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왜 헤어졌지?를 시작으로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로 끝나는 질문의 고리를 끊어내고 명확한 답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동일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을 얻지 못한 채 자존감이 무너지고 있음을 느끼는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겨웠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주말 별다르게 할 일이 없어 책을 폈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새 책을 내면 예약 판매에 대기를 걸어 놓고 사서 읽는 편이었다. 나른한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책을 읽다가 갑자기 읽던 책을 덮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오후 2시에 쓰기 시작한 글쓰기는 7시까지 이어졌고 다 쓰고 보니 대략 A4 9장 분량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분량이었다. 나는 그녀와의 이별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그녀가 헤어지자고 처음 말한 날부터 완전히 헤어진 날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써 내려갔다. 내가 한 자리에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긴 분량을 쓴 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게 하필이면 사랑했던 사람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그게 납득이 되지 않아 써 내려간 글이라는 것이 서글픈 따름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게 있었다. 내가 언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어떤 감정 특히, 누군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안에 몰려올 때, 나는 격렬하게 글이 쓰고 싶어진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한테 그런 예가 하나 있었다. 직장에서 갑작스러운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 사장에게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기본 A4 3장 이상은 거뜬히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최종적으로 사장 이메일로 글은 보내지 못했지만 내가 언제 글을 쓰고 싶어 하지는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나에게 좀 남달랐던 것 같다. 분노, 원망, 실망 같은 감정만이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까지 여기에 다 담을 수는 없었다. 이 글은 온전히 이별에 관해 쓰고 싶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글 사이사이 그녀와 있었던 일화가 들어가기는 했으나 이별의 과정에 초점을 맞춰 쓰다 보니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만 내게 남은 것으로 보일까 염려했다. 며칠 전 이 글을 쓰기 전 이미 A4 4장 분량의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분노와 원망만 가득찬 글이었다. 마치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범죄자가 판사에게 쓰는 일종의 탄원서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때 썼던 글도 나에겐 하나의 기록이기에 지우지는 않았지만 이 글을 쓰는데 참고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로 쓴 글은 내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따로 쓴 프롤로그 형태의 글이었다.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이름, 나이, 직장, 사는 곳 등에 대해 글을 읽게될 누군가가 전혀 알 수 없게 글을 쓰는데 온 신경 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그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글을 다 써놓고 첨삭하는데 몇 배의 시간을 쏟았다. 문장을 지웠다 다시 쓰고 바꾸고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이 글을 쓰려고 했던 애초의 목적을 잊은 채, 글을 잘 쓰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왜 다들 헤어지고 운동에 몰두하거나 새로운 취미를 가지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나도 잠시 쉬었던 러닝을 다시 시작하고 음식 섭취량을 조절하며 체중을 감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도 모든 것이 제자리로 잘 돌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도 하고 더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은 어쩌면 내가 한때 사랑했던 그녀에게 남기는 연애의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그녀가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될 때, 살면서 스쳐갔던 인연 중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 나를 기억해 주면 좋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이별에 대한 기록을 써서 보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처음에는 내게 기적 같은 사랑이었으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한 사람.


이제 당신을 영원히 떠나보내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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