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첫째까지는 괜찮았다

by 조이


두 번 만나고 결심한 결혼, 만난 지 세 달 만에 식을 올린 부부. 철없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었다.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이 정해주신 나의 짝이라는 확신은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혼하는 심정을 알게 되었다면 모순일까. 아니, 현실이 그랬다.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결혼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겨운 상태. 먼저는 이 사람부터 내 옆에서 치워버리고 싶었다. 지워버리긴 아깝고 잠시 치워버리고 싶은 존재, 자꾸만 나의 밑바닥을 보게 하는 사람, 당신은 나의 남편.




어른스럽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여자는 결혼 이후 어린이가 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는 방임적 부모 밑에서 잔소리를 거의 듣지 않았고 남자는 권위적 부모 밑에서 지적과 잔소리를 밥먹듯이 듣고 자랐다. 남편은 자기 아버지에게 들어왔던 잔소리를 내게 그대로 반복했다. 덮어놓고 살아왔던 나는 잔소리가 싫지 않았다. 어릴 때 배웠어야 할 작은 습관들조차 내겐 형성되어있질 않았다.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결혼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넋을 놓고 살았고, 남편의 잔소리는 내게 경각심을 주었다. 사리분별이 명확한 남편과 살며 얼간이의 삶을 청산하고 싶었다. 물론 이따금 마찰이 있었지만 화난 마음은 해가 지기 전에 풀어야 한다, 부부는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남편의 기조에 따라 우리는 화해를 하고 금세 다시 하나가 되었다.


일 년이 넘는 신혼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갔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우리는 거꾸로 한 셈이다. 결혼하고 연애하듯 사는 삶은 더욱 안정감이 있었다. 성격이 급한 남자와 생각이 많은 여자는 건강한 밀당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연애를 했다면 진작 헤어졌을 터, 결혼을 하니 숨을 곳이 없었다.




결혼은 마주할 수밖에 없는 관계적 문제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일이었다. 팽팽한 줄다리기였을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조율을 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정이 깊어지고 서로가 익숙해지던 중에 첫째 아이가 탄생했다. 이제는 완벽한 가정을 이룬 기분이었다. 내가 엄마, 네가 아빠해. 하듯 소꿉놀이를 하는 기분도 들었다. 조금 더 책임감 있는 부모로 우리는 성장했다고 믿었다.


남편은 다음날 출근한다고 해서 다른 방에서 따로 잠들지 않았으며 아이가 울면 열심히 보듬고 달랬다. 일찍이 분유로 갈아타게 되면서는 새벽수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칼같이 퇴근해서 아이와 내게 와주었다. 그래, 당신도 애쓰고 있구나. 안쓰럽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당신까지도 보듬어줄 수 있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