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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전하고 싶은 진심

by 조이


나는 보았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순간적으로 나를 발견하고선 반가워했던 마음을.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그 눈빛은 내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식이 끝나고 먼저 다가선 건 내쪽이었다. 얼굴을 아예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보다 팔꿈치를 먼저 잡았던 건 왜였을까. 그 옛날 팔짱 끼고 걷던 때가 생각 나서였을까. 그래놓고서 돌아본 그녀에게 건넸던 첫마디가 뭐였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잘 지냈어? 였던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였던가. 하여간 나는 그녀와의 마음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려는 태도를 취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녀와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않았지만 이렇게 마주친 자리에서 아는 척도 않을 만큼 끊어낼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우리의 시선은 자연스레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로 옮겨갔고, 그를 통해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걸 서로가 체감하고 있었다.


"엄마 친구야." 딸에게 그녀를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에 비해 우리가 나눈 말들은 몇 마디에 불과했지만, 그녀를 달리 지칭할 단어가 내 안에는 없었다. 우리는 친구였다.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었던. 그녀는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궤적을 남겼고 나는 그녀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었다. 그녀의 삶 속에는 내가 닮고 싶은 모습들이 있었고, 그녀는 그것을 가감 없이 내게 보여주고 공유해 주었다. 화목한 가정의 모습까지도.


다음에 또 보자,라는 나의 말을 끝으로 식장을 먼저 나왔다. 이후로 조심히 잘 갔니,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는 등의 연락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의지의 문제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은 분명, 아직도 이뤄내지 못한 관계의 재정립에 관한 문제이다.


함께 한 세월만큼 안 보고 산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간간이 교집합이 있던 친구에게 전해 들었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세월이 그녀를 변하게 했는지, 환경이 그녀를 변하게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열일곱, 비슷한 가치관으로 나누던 우리의 마음들은 어디로 갔나. 내 삶의 군데군데 묻어있는 흔적처럼 존재하던 그녀를 못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떠올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늘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했던 그녀가 껍데기를 벗듯 허물을 던져버렸을 때 나는 유난히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의 행동이 나의 가치관에 반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의 반응마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라는 그녀에게 서운했다. 늘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비치기를 바라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진실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던 그녀에 대해 나는 처음으로 반기를 들었던 셈이다. 나는 자기 고백적 성찰을 하는 타입이었던 만큼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꽤 많은 고백을 해온 반면, 그녀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내게 어떤 반응을 기대했던 걸까.


그런 내 모습에 되려 상처를 받았다고 하는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보기도 했으나, 그 서운함을 전하는 방식마저도 계산된 행동처럼 보였다. 누구의 편을 만들자는 것도 아닌데 또 다른 친구에게 해명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억울하기도 했다. 그간 그녀가 서운해하거나 속상해하는 것이 있을 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혹은 내 생각이 잘못되었나 돌아보고 먼저 사과하는 쪽이 나였다면,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는 명분으로 연락을 받지 않다가 장문의 메시지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잘잘못이 아닌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위치를 자처한 그녀에게 나는 크게 실망했었다. 더 이상 네가 원하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겠다는 나의 선언은 기울어진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한 시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 덴 나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그녀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한 쪽은 나였으니까.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그것이 방식이었는지 그녀였는지, 그녀와 관련된 전부였는지 정확히 측량할 수 없다.


사랑이라는 게,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베풀어주는 것이라면 그가 보아주길 바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아주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고 해도 그가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딱 그만큼만 보는 것도 사랑일까. 두 눈 크게 뜨고 있는 그대로를 보려 했던 나의 방식이 그녀에겐 한쪽 눈을 감고 봐주는 것이었다면. 우리가 서로를 서로의 방식으로 사랑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그녀가 내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이 그녀가 진짜로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인지, 내가 그녀에게서 보고 싶었던 모습인지 뭐가 먼저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그녀가 변했다기보다 내가 그녀를 잘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그녀를 진실되지 않다고 여기기 전에 내가 그녀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존재였던가 생각해 본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나만큼이나 힘들지 않았을까 하고. 그렇다면 미안했다고. 친구로 지내는 동안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뒤늦게 전하고 싶지만 전할 수 없는 나의 진심을 적어본다.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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