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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빛 Oct 16. 2021

2. 이보다 최악의 이별일 수 없다

이별, 어디까지 해봤니?


 

그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어. 대학생이 된 후 대학생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면서 그를 만났어. 그는 마술사였고 그녀는 마술에 걸린 듯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고 그의 고백에 사랑을 시작했어. 하지만 곧 그는 군대를 가야 했고 가기 전 그녀에게 로맨틱한 이벤트를 선사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그녀도 그에게 많은 이벤트를 선사하고 그 시간을 이겨냈어. 그녀도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임용시험을 준비했고 4번의 시도 끝에 교사가 되었어.

 둘은 함께 어려운 시간을 이겨냈기에 미래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곧 결혼을 했어. 다른 사람들도 마술사와 교사의 특이한 결합이라며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주기도 했어. 하지만 결혼 생활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았어.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갈 즈음 그녀는 비공개 계정으로부터 많은 성적인 사진과 이 사진에 대한 설명이 구구절절한 메시지를 받았어. 그 내용은 그가 총각행세를 하며 이중생활을 하는 성관련 인플루언서였다는 것과 상간녀 중 한 사람이 고등학생이었다는 내용이었어.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고 이혼을 했어. 이후 정신을 차리기 위해 발버둥 치며 힘겹게 살았어. 하지만 이혼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가 올리는 마술 콘텐츠가 유명해질 때마다 연락을 하면서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았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더래.

그리고 범생이었던 그녀는 왜 나의 연애가 실패했는지, 내가 왜 이런 감정에 드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대.



연애 6년, 결혼 3년.

간략하게 적었지만 저의 20대가 그렇게 끝났고 30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너무 두려웠습니다. 내 20대를 다 보낸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내가 책임져야 할 생명.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이것이 악몽이기를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일어날 때마다 현실이었고 몸은 여기저기 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의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행복하게 살고자 했던 결혼 생활이 끔찍한 칼날이 되어 나를 후벼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 것이 아닌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던 그 나의 행복했던 기억들이 쏟아지며 그 사람이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을 한 것이냐며 오히려 상간녀였던 ‘그 아이’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또 오히려 덤덤하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그 많은 남자 중에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사람이었기에 누가 조작한 일일 것이라고 저 사람이 함정에 빠지진 것이라고 곧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당당해지려고 했지만 책임질 생명이 있다는 마음의 무게와 어쩌지 못하는 내 삶의 무게가 짓눌러질 때마다 나는 계속 바닥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에게는 분노와 악의 감정만이 남았습니다. 부모님, 아이, 그, 주변 사람들, 하나님까지. 나는 내가 이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서러움을 폭발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분노와 악은 나를 향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일이었어. 다른 사람들이 이 연애를, 결혼을 고려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이 선택을 했어. 심지어 헤어질 때까지도 매달린 것은 나였어.' 그러고 나니 죽음이라는 극단 상황까지도 나를 몰고 갔습니다.

이별. 왜 그와 이별을 한 것인데 나는 나와도 이별을 하려고 했는지 지금은 부끄럽고 이해할 수 없지만 저는 너무도 많이 아팠습니다.

 사람들은 이별을 합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이 식어간 이별도 있고, 외도로 인한 이별도 있고 성격이 맞지 않은 이별도 있고 이별의 모습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이별을 훌훌 털고 일어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 이별에 얽매여 그 그림자를 계속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그림자가 떨쳐지지를 않았고 잠이 오지도 않고 밥이 넘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 분노가 나를 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노를 털어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분노를 털어내는데 가장 좋았던 방법은 일단 슬퍼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껏 울고 화도 내고 술도 마셔보고 노래도 불러보고 할 수 있는 힘껏 그 슬픔을 표출하는 단계가 필요합니다. 저도 일정 시간이 지나고 억눌렸던 슬픔을 눈물로 마구 표출했습니다.

 이별은 내 이별이기에 나에게는 이 연애가 최악의 이별일 수 있습니다. 마치 내 군대 생활이 제일 힘든 것처럼요. 하지만 모든 관계에는 언제가 끝이 있습니다. 이 끝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이 끝의 유효기간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친했지만 인연이 끊긴 친구도 있고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만난 사람 중 스쳐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학창 시절 친구보다도 더 진한 사이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연애 6년, 결혼 3년. 시간으로 적어두고 생각나는 일들을 다 적어보았습니다. 그때는 아이 때문에 이별이 어려워 그를 잡기 위한 기록이었지만 상담을 거치면서 그 기록이 내가 얼마나 잘못된 연애를 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지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연애 오답노트

1. 어떤 관계든 끝은 온다. 그와는 여기까지가 끝이었나 보다.

2. 내 이별에 대해서 써보자. 나는 지금 어떤 이별을 했는지 생각해보자.

3. 이 연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었는지 써보자.


 그와 의 관계는 9년,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전에 끝난 인연을 제가 붙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과 연애는 함께 했는데 이상하게 이별은 한 명이 통보하면 한쪽은 이별이 준비가 되기도 전에 이별 앞에 거침없이 당하기도 합니다. 이제 와서 보면 저는 이 연애에서 마음의 지지를 받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그 사람에게 잘하려고 했고 나중에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단계까지 갔으나 내가 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끌고 갔습니다. 하지만 잘못은 그가 했지만 외도를 통해 그는 이별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저는 그 이별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통보당했습니다.

  나는 이별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이 많은 성격이라 말로는 못해줄 것처럼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이 걱정한 부분을 꼭 해결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사람이 많았지만 가끔은 부탁을 받고 혼자 끙끙 고민을 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몇몇 사람들에게는 호구로 자리 잡았고 그 사람들에게 저는 착취를 당하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제가 인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인연의 장점은 아주 힘들 때 교사의 꿈을 버리지 않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그에게 잘해주면서 배려란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의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너무 수많은 외도를 하고 심지어 제일 싫어했던 성과 관련된 사진, 영상을 올리던 사람이 내 배우자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혹시 이 사실을 내 아이가 알까 떨면서 사는 것이 이 인연의 최대 단점이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저에게 감당할 수 없는 너무 큰 선물을 주셨는데 그 선물을 꽁꽁 감추게 된 것이 저에게 가장 미안하고 가장 슬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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