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은 우리의 마음을 닫는다
인연과 악연 그 막연한 차이
작년 미국에 갔을 때 일이다.
우버(정확히는 리프트)를 탔는데 한국인 기사였다.
그 기사님은 앱에 뜬 이름을 보더니 자신도 한국인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30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 와 딸들은 한국에 가본 적이 몇 번 없다고 했다. 한류 열풍으로 아이돌의 팬이 된 딸들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는데 본인은 선뜻 보내주기가 망설여진다고 하셨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니 한국 위험해 보이던데 딸들이 가서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나는 의아했다.
"여자가 밤에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예요. 치안 괜찮아요."
이유를 들어보니 드라마나 영화에 살인사건이 많이 나오고 특히 길거리에서 여자들이 납치되거나 살인을 당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서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요즘 드라마나 영화 소재에 살인사건이 많긴 하다. 따뜻한 가족 드라마인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살인사건이 비중 있게 나오니 말이다..
외국인이 된 기사님이 충분히 오해할 만한 수준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한 나도 미국 여행을 하기 전 살짝 두려웠다. 뉴스나 여행카페 커뮤니티에서 사건사고를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건사고니까 뉴스에 나온 것이고 커뮤니티에서 이슈가 된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문 모든 사건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무조건 뉴스거리가 될 것이다.
미국 여행을 준비할 때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인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 특히 자유여행이라서 더 걱정을 많이 하셨다. 안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패키지를 갈까 하다가 마음에 드는 상품이 없어서 자유여행을 밀어붙였는데 안 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대도시와 관광지 위주로 돌아다녀서 위험한 상황이 없었다. 또 사람들은 친절했다. 물론 사건사고를 파악하고 주의사항이나 대처법을 미리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정적인 면만 보다 보면 선입견이 생겨 여행도 전에 겁에 질리게 될 것이다.
선입견은 우리의 마음을 닫는다.
역무원이 되어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견과 선입견이 생겼다. 하루 750만 명이 이용하는 수도권 지하철에서 역무원이 상대하는 승객은 0.01%도 안될 것이다.
그렇지만 역무원이 마주치는 그 0.01% 승객은 대부분 이용에 불편을 겪었거나, 이용에 불만이 있기에 역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마주하는 민원은 대부분 날카롭고 곤두서 있다.
외상을 하고 싶어 하는 승객도 자주 마주친다. 역사 내의 ATM기를 이용하라고 안내하지만 '카드가 없다, 지갑을 놓고 왔다'라며 처음 본 역무원에게 돈을 빌리려 한다. 빌려주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세상은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나 또한 몇 번 빌려준 적이 있다. 연락처와 이름까지 받아두지만 선배님들 말대로 반 정도는 돌려받지 못한다.
하루는 행색이 다소 남루한 분이 다가와 본인의 사연을 설명하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셨다. 산재 보상금을 받으러 가는 길인데 차비가 없으니 빌려주면 꼭 갚겠다고 하셨다. 절실해 보여 빌려드렸지만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퇴근을 하고 다음날 출근을 하니, 쪽지가 붙어있는 봉투가 있었다.
어제 그분이 쪽지와 함께 빌린 돈을 갚아주신 것이다. 쪽지에는 정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덕분에 산재 보상금을 잘 받았고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고 써져있었다. 별 내용 아니었지만 나는 크게 감동했고 내가 받은 쪽지 중 가장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마주치는 인연 혹은 악연이 축적되면 자신만의 표본이 완성된다.
하지만 나는 이 사건 이후로 내가 마주치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임상결과(?) 마음을 열면 좋은 인연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는 게 확실하다.
그리고 모순되지만 나는 타인에게 좋은 표본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