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오지 않았던 시절, 언론사에서는 '인터넷으로 120시간 살기'와 같은 독특한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참가자들은 행사 주최 측에서 지정한 숙소에만 거주하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물품과 음식을 구매하며 생존(?)하는 이벤트이었다. 오래전에 이런 기사를 접했던 어렴풋한 기억이 떠올라서 예전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확인해보니 1999년에 이런 행사가 있었다. 기사에는 5박 6일 동안 숙소에 갇혀있던 참가팀들이 어떻게 생필품을 조달하며 생활했는가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관련 기사에는 참가팀들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고 채팅을 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음식 주문에는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도 있었다.
요즘 상황으로는 이런 이벤트 자체도 잘 이해되지 않지만, 20여 년 전에는 인터넷으로 물품이나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일부의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식이었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언론사에서는 인터넷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세상을 좀 더 또렷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런 행사를 기획하고 그 내용을 기사로 다루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가 인터넷 없이 살았던 시대를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인터넷은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해있다. 특히 쇼핑에 있어서는 인터넷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다 보니 오프라인 매장들은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심지어 고객들은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실제 구매는 온라인의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서 하는 '쇼루밍'을 빈번히 하고 있다. '쇼루밍(showrooming)'은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쇼핑몰의 전시장(showroom)이 되는 현상을 말하는 용어이다. 물론 반대의 상황을 가리키는 웹루밍(webrooming:인터넷 웹에서 사고자 하는 제품을 검색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는 현상)도 있으나, 고객 행동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쇼루밍이다.
미국의 베스트바이는 대표적인 전자제품 오프라인 채널이다. 인터넷 쇼핑이 대중화되면서 베스트바이는 위기를 맞게 되는데, 특히 아마존의 급성장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마존의 매출액은 2010년 342억 달러였는데, 2020년에는 3,860억 달러에 이른다. 10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10배를 초과한 것이다. 아마존은 미국 내 전자상거래 시장점유율이 약 40%에 이르는데, 이 정도의 시장 점유율은 '시장을 장악했다'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온라인 시장은 네이버, 쿠팡, 이베이(옥션, G마켓)가 1~3위의 시장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 3개사의 시장점유율을 합하면 42%이다(2020년 기준). 우리나라에서는 1~3위의 3개 사가 점유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42%)과 비슷한 시장 점유율을 미국에서는 아마존 혼자서 하고 있는 것이다(40%).
베스트바이를 특히 곤혹스럽게 한 것은 '쇼루밍'이었다. 베스트바이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전자제품을 보고 나서 실제 구매는 아마존에서 하는 고객들이 늘어났는데, 심지어 베스트바이 매장 안에서 인터넷으로 아마존에 접속해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 매장 내에서 주파수 교란 방법까지 고려했다고 하니 베스트바이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베스트바이는 '쇼루밍'에 대항하기 위해서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구매할 수 없고, 온라인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제품 고유번호를 붙이는 방법도 고안해내고, 최저가 보장제도도 생각해 냈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위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던 베스트바이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하게 된다. 베스트바이의 공간 중 일부를 구분해서 특정 전자제품 제조사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전자제품 제조사는 그 공간을 고급스럽게 꾸미고 자사의 제품을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적으로 전시할 수 있다. 물론 베스트바이는 이 공간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대가를 전자제품 제조사로부터 받는다. 전자 제품 제조사 입장에서는 매출이 베스트바이에서 발생하든 온라인에서 발생하든 제품을 판매했을 때 이익을 얻게 된다. 따라서 베스트바이에 전용 제품 전시공간을 많이 확보하면 경쟁사에 비해 매출이 증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러 전자제품 회사들이 베스트바이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이를 통해 베스트바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견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어차피 온라인 쇼핑몰의 쇼룸이 되었으니까 쇼룸에 대한 사용료(공간 임차료)를 청구한 것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생각하면 간단해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하다. 생각의 전환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새로운 수익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비즈니스 모델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