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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Aug 28. 2023

노력하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

다정한 생각들 : 나의 자극제인 우리 동네 빵집

우리 집 앞에는 백년가게로 선정되었다는 명패를 크게 붙이고 있는 빵집이 있다. 누군가 내게 그 가게가 유명한 빵집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다고 대답할 정도의 규모인데 언제나 바쁘게 돌아간다. 새벽 6시부터 불이 켜지고 밤 12시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곳. 버스정류장 앞 모든 가게들의 불이 꺼질 때 유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 가게는 마치 동네의 터줏대감 같다.


저녁을 못 먹고 늦게 퇴근을 한 날엔 빵을 사러 들르는데 밤 11시를 넘긴 시간에도 빵들이 많이 남아있어 고르는 맛이 있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많아서 좋다지만 점주의 입장에서는 달가운 상황은 아니기에 내심 이 빵들은 어떻게 된담, 내일은 조금 덜 만드시려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다음 날 오전에 출근하며 진열대를 보면 어김없이 똑같은 양의 빵이 진열되어 있다. 정말 운영에도 진심인 가게다.


이것도 모자라 어르신 분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호박빵, 양파 크림치즈빵 같이 매달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신다. 더 어린 연령층도 잡으려고 하셨던 것인지 소금빵이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는 소금빵이 매일 나왔으며 감자빵과 고구마빵을 춘천에 가지 않고도 같은 맛으로 먹을 수 있게 됐다. 심지어는 어디서 망고를 받아오게 되신 건지 망고 소금빵까지 생전 처음 보는 도전도 하셨다. 대체 그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늘 궁금할 따름이다.


직원 분들은 한눈에 봐도 부모님 세대인데 매일 빵집을 지나가면서 정말 성실하게 이런저런 시도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꽤 많은 감명을 받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주고 싶은 마음이 이런 마음일까? 누군가 내게 살고 있는 동네의 좋은 점을 물어보면 어김없이 집 근처에 이 빵집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무한한 추천을 하기도 한다. 응당 돌아오는 말은 '그게 뭐야' 지만 나는 그 빵집 덕분에 흐트러진 마음을 많이 다잡았기에 늘 같은 레퍼토리로 답변을 해왔다.


나는 보통은 재택을 가장 많이 하지만 업무 특성상 미팅이 많아 빵집 앞에서 대중교통 또는 택시를 탄다. 그렇게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 사이에서 종종 어깨가 무거워지는 날이 있다. 오늘 진행한 일들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떻게든 해냈다는 데에 '이게 최선이지' 하며 합리화를 할 때가 그렇다. 정말 이게 최선인지 다시 한번 상기하면 결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런대로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은 부끄러워야 한다고 스스로를 책망하며 길을 오간다. 그런 날들에 이 빵집을 지나가는 건 정말 고역이다.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과 친절한 직원 분들의 표정을 보면 괜히 자괴감이 들까봐 고개를 숙이고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마음이 불편한 날과는 반대로 만족스럽게 해내서 칭찬을 받고 싶은 날도 빵집을 떠올린다. 나도 저 성실함과 전문성에 견줄 정도로 열심히 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 날에는 빵집 불이 켜져 있는 모습을 보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지나간다. 당당한 하루들이 쌓이면 나도 저 빵집처럼 터줏대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과 함께 잘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하루도 노력해서 살아냈다는 생각에 내심 '나도 노력하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들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원을 빈다.


빵집 앞을 오가면서 장사가 잘 되지 않아도 프랑스의 밀가루를 계속해서 쓴다든지 아니면 서툴지만 문자로 이벤트 소식을 알리고 당근마켓 등에 홍보를 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걸 발견할 때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목표대로 잘 해내면 대박이고 못 해내면 쪽박인 세상사지만 혹시나 목표만큼 못해냈다고 하더라도 일단 시도를 했다는 데에 멋지지 않나. 나를 빗대어 생각하는 그 빵집에 '안 해본 걸 시도하는 우리 모두는 꽤 멋지다' 하며 박수를 쳐주고 싶을 뿐이다.


가만히 있는 가게에 너무 많은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지만 너무 낯선 이 동네에 마음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이유였기 때문에 언젠가 내게 좋은 자극을 주는 이곳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이사를 온 지 벌써 만 4년 차라 꽤 오래 걸렸다. 내가 이 동네에 살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게 이 빵집이라는 걸 빵집 사장님은 아실지 모르겠다. 가끔 어떤 진한 자극이 필요하다면 언제나 노란 전등이 켜져 있는 금천구의 프랑세즈 과자점을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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