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3일 : 다시 이별준비
훗날에 나에게 남은 아버지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 될까?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게 될까?
한평생 일그러지고 완고한 표정의 폭군이 사라지고
눈가에 얼룩진 눈물자국, 골격의 윤곽이 드러나듯 말라가는 몸, 쉼 없이 떨리는 그 입 모양,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지만 나는 오늘도 병상에 누운 아버지 옆에 서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완성되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나 불편하고 괴롭다.
어떠한 대상인가를 떠나서 말이다..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에 그 누구도 없다면 너무나 슬프지 않을까, 누구라도 곁에 있음으로 위안이 되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었으나 존엄한 한 생명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또 너그러워져 그 얼굴에 맺힌 땀을 부드럽게 닦아주고, 입가를 젖은 수건으로 닦아주면서 조용히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이 순간만큼은 원망도 미움 따위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마음 깊은 곳에 가둬두고,
담담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잘 버티시고 치료를 받으라고 다독인다.
“지난달에 오셨었죠? 그때랑 비슷한 상황인데.. 많이 버티셨네요..”
사전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사인을 한다.
응급실에서 어머니가 처음 사인을 하고, 중환자실 앞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며 대표 보호자로 사인을 한다.
이 서명을 할 때마다 내가 무슨 권한으로 대표로 서명을 하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이 너무나 매정하게 아버지를 더욱 죽음 문 앞으로 떠미는 것 같아서..
손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도 자신의 상태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타인의 관점에서 더 고통스러운 순간을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배려일까, 버림일까.
짧은 순간에 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가족들과 다시 승압제를 사용하지 말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혈압이 매우 낮아진 상태에서 승압제를 사용하지 않으면
밤 사이 심정지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차마 그 최소한의 연명치료를 놓지 못했다.
승압제를 사용하게 되면 임의로 중단할 수가 없고 혈압이 안정화될 때까지 계속 사용해야 한다고 재차 설명을 들었었다.
모두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지금 병실에 들어간 아버지는 너무나 의식이 또렷하고, 아직 죽고 싶어 하지 않는데..
어렵게 모두가 동의하고 승압제 사용 외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서약에 서명을 했다.
퇴사를 한 날이었다. 마지막 근무이기에 더 마음을 담아서 일을 마무리했고, 조금은 이른 퇴근을 했었다.
후련한 마음에 자축하며 아이들과 시원한 빙수도 먹고, 큰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외식을 하러 갈 계획이었다.
땀에 절었던 몸을 씻어내고, 뽀송뽀송한 기운에 한결 편안해진 몸을 누이고 쉬고 있었다.
큰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에게 연락이 왔는데 퇴원하신 지 3일째 되었던 어제부터 아버지가 열이 나는데
병원을 가자고 해도 안 간다고, 와서 좀 도와달라고 했다 한다.
아이들의 저녁은 배달을 시켜주고 바로 챙겨서 남편과 친정으로 출발했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 퇴원 자체가 불가능한 걸 그렇게 우겨서 집에 가시더니, 엄마에게 모진 말들 쏟아내고 또 고집을 부리고 애를 먹이시는구나.
그럴 줄 알았다. 집에 가서 조용히 삶을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한다거나, 엄마가 해주는 죽 한 술이라도 기분 좋게 받아먹지는 않았을 거다.
도착하자마자 119 구급대에 병원이송을 요청했다. 그 사이 설득하는 딸과 아들, 사위에게
이틀 뒤에 걸어서 병원에 갈 거다, 나도 다 생각이 있다, 저 놈의 여편네 때문에.. 다 나가라 주거침입죄로 신고하겠다는 등 오만가지 말을 쏟아낸다.
새롭지도 않다. 아버지가 아버지답게 하고 있는 것이다.
119 구급대원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알리고(체온, 열이 난 시점, 복용한 약, 식사여부, 기타 증상)하고, 지병과 현재 상태를 설명한다.
직장암 3기-발병 3년 6개월이 된 시점이다.
구급대원이 도착해서 아버지의 바이탈을 체크한다. 체온 39.2, 혈압과 맥박, 혈당체크…
완고하게 의사표현을 하시던 아버지도 구급대원이 오자 포기한 듯 절차에 따라 들 것에 실려 구급차에 올랐다.
감정적으로 조금 격앙되신 엄마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내가 구급차에 보호자로 동승했다.
경사지고 좁은 골목을 어렵게 빠져나가는 길, 흔들리는 구급차 안에서 담담하게 아버지의 다리를 받쳐주고.. 그저 아버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오늘부터 시간적으로 자유로우면서, 조금 더 젊고 소통에 원활한 내가 대표보호자가 되었다.
응급실에서 진단과 처치, 검사대기, 중환자실 입원 절차까지 마무리하고 가족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훌쩍 넘어있다.
까만 밤, 한없이 무거운 어둠 속에서 부유하는 생각들을 부여잡고 나는 또 읊조리듯 되뇐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