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 마지막 소원이라면..
10월 3일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다.
추석연휴와 대체공휴일, 재량휴업일까지 아이들은 12일까지 학교에 가지 않아 신이 났다.
나는 추석당일과 다음날(6,7일)만 쉬고, 연휴엔 일이 바쁘기 때문에 그다지 반갑지도 않은 연휴였다.
엄마에게서 퇴원을 할까 싶다는 말이 나왔다.
아버지가 시도 때도 없이 집에 가고 싶다고 조르신다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려서 약을 두 개나 먹었다고 하셨다.
“영양제 끊고 항생제나 진통제 약으로 대체하고..집에 가서 지내다 보면 아프고 힘들어서 자기 상태를 받아들이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병원에 오게 되겠지”
토요일 오전에 담당의 회진할 때, 만나서 얘기 좀 해보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번 주에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었다.
”우리는 모두 죽게 될 텐데요. 수고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다름 아니라 그의 말에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일이니 별로 수고롭거나 버겁지 않고, 또 자신이 이런 처지일 때 누군가가 같은 수고를 베풀어주길 바란다는 뜻이 담겨있었다.
(*이반일리치의 죽음 73p.)
게라심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사소한 사건으로 그의 병이 시작되었고, 그 원인을 찾아 여러 의사를 찾아가고 백방으로 애써왔지만 병세는 깊어지고, 끔찍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재에 홀로 누워있을 때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게라심.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일에 수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그.. 언젠가는 우리 모두 그리 될 테니까 말이다.
그가 어깨로 다리는 받쳐 들고 있을 때 통증이 덜해지는 것 같아서 이반은 수시로 그를 찾았다.
가족들이 “좀 어때요?”물으며 들여다보았지만, 그들이 각자의 일상을 살아갈 때 괴리감을 느끼고 고립되면서 절망과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며 회한에 빠졌다가,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끝없는 육체적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죽음이 닥쳐올 때의 사람의 내면심리를 면밀히 느낄 수 있었고, 읽으면서 아버지가 병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혼란, 분노와 절망, 슬픔 등이 어떤 것일지 생각하게 했다.
사람에게도 귀소본능 같은 것이 있을까. 자신이 원하는 곳(집)에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편안히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 건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그런 감정과 욕구를 무시해도 되는 걸까. 그토록 원하는데...
하지만 엄마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혼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는 것이다.
엄마에게도 죽음은 공포와 두려움이고, 혼자 아버지를 감당하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퇴원에 반대를 했었고, 아버지의 몸도 퇴원을 할 만한 상태도 아니었다. 잠시 반짝 좋아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의사 선생님도 상식적으로 음식을 못 드시는데, 집에 가시면 연명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겠느냐고…
아버지에게 지금은 퇴원이 안된다고 못 박으면서, 추석연휴 핑계를 댔다.
아무리 지금 몸상태를 설명해도, 자신은 집에 가면 뭐라도 먹고 좀 더 회복하고 운동하면 걸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화가 치밀었다. 혼자서 허리를 일으켜 앉지도 못하시는 분이 어찌하시려고, 대책도 없이 우긴다고 될 일이 아닌데..
집에 돌아가면 정말 엄마가 오롯이 아버지를 돌보셔야 하는데..
간병인을 부른다 해도, 엄마가 매여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여태껏 아버지에게는 달래듯이 조곤조곤 이야기했던 나는 오늘 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이 병실에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참으라고, 엄마도 내가 화를 내니 말리려고만 했다.
사실 마음에 품었던 더 심한 말 백 가지는 꺼내지도 않았다.
아버지의 두 눈이 커지고, 말문이 막힌 듯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더 쏟아붓고 싶은 걸 참고 병실을 나왔다.
모든 상황이 답이 보이지 않고, 참아왔던 화가 치밀어 올라 미칠 것 같았다.
터져버린 풍선조각처럼 너덜거리는 마음에 남편이 위로와 조언을 몇 마디 건네었는데,
“당신이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말해? 당신이 우리 아버지 자식으로 자라 봤어? 평생을 겪어봤어?
나도 당신을 백 프로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당신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지 마. 가르치려고 하지 마. 내 마음 안다고도 하지 마” 쏘아붙이고 말았다.
점점 엄마는 눈치를 보신다. 한 번씩 이렇게 감정적으로 버럭 하는 내가 어려워지시는 걸까.
나에게 부탁하시기 뭐해서 직접 아버지 몸을 닦아줄 간병용 물티슈나 바디워시를 주문했는데, 배송이 너무 늦다길래 내가 로켓배송으로 바로 주문을 해주었다.
이런 건 정말 그냥 시키셔도 되는데, 고작 이런 것도 눈치 보게 한 내가 너무 못났고 엄마에게 미안했다.
남편이 대신 아버지에게 퇴원을 하시더라도 추석연휴 끝나고 하자고, 대신 집에 가셔서 열이 나시거나 아프면 구급차 타고 병원에 오셔야 한다고 당부 또 당부를 했다.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할 거라고 답하는 아빠의 옆모습이 신뢰가 가지 않았다.
- 분명 걸어보려고 한 번은 시도해 보실 거고, 침대를 내려오시다가 어딜 부딪히든지 식겁을 하실 거야, 분명히 열이 나거나 아파도 참고, 병원에는 다시 안 오려고 하실 거야.
나는 다가올 미래의 풍경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이 되는 걸 지켜봤다)
이쯤 되면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는?
아버지를 위한답시고, 엄마의 의중을 무시하거나 무리한 상황으로 치닿는 걸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퇴원에 대해서 손사래를 치시며 싫다던 분이 체념 섞인 어조로 퇴원을 해봐야겠다고 하시니 정말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하나.
엄마는 늘 ‘나는 싫은데 아버지 때문에’라고 이야길 하시고, 아버지와 맞서서 이기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겠지.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땐 우리에게 연락해서 의논하고 싶다고 하신다.
말만 의논이지 우리 뒤에 잠시 숨고 싶으셨을까, 아님 자식들은 자기 편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으셨을까?
그러다 아버지와 자식이 대척점에 서는 걸 보는 게 마음 아파서 엄마 딴에는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완고한 아버지를 따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패턴이 더 힘든 것 같다. 엄마를 그렇게 조종하는 아버지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다.
차라리 우리를 그 사이에 끼워놓지라도 않았으면 했다.
엄마 입장에선 내가 알지 못할, 말없이 참고 보낸 시간은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엄마를 탓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마지막이 이렇게 얼룩지는 건 싫다. 조금은 더 편안하게 모시고 싶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까지 자식 된 도리도 잘하고 싶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죽음이 이르고 나면 다 부질없는 원망과 미움이 아닌가.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그 정도 수고도 하지 않으려는가.
연휴가 끝나면 퇴사를 하니까, 매일 들여다보며 조금이라도 엄마를 거들어 드려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10월 10일 퇴원하시기로 결정하셨고, 아무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설구급차를 불러서 퇴원을 했고, 다시 엄마와 아버지 두 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3일. 겨우 3일을 집에서 버티시다가, 자식들이 부른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