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 제자리
집중치료실(중환자실)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상태가 괜찮아져서 일반병실로 올라가시려고 하는데,
사전에 신청했던 보호자가 상주하지 않는 ‘통합간병실’로 가시도록 연결해 놨다고, 오늘 동의서를 작성하러 오라고 했다.
지난주 입원하시고 담당의 면담 때, 엄마가 그렇게 해 달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정도로 회복되실지 기대가 없었다.
가족들에게 연락하고, 언제 병실을 옮길지 시간이 정해지지 않아서 일찍 병원에 가서 대기를 했다.
원무과에서 전실 동의서를 작성하고, 어떻게 운영되는지, 비용과 면회시간 등을 안내받았다.
다시 집중치료실에 연락하니, 다리 상처부위 세척에 필요한 도구 사용에 대한 동의서를 작성하러 오라고 했다.
어제 구두로 안내받았기로는, 안에 고인 변과 농을 흡입해 빼는 튜브 같은 것이고 비급여라서 사용 시마다 동의가 필요해서 다음 주 사용할 것까지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주 2회 수술방에서 세척소독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이름을 여러 번 쓰는 동안 익숙한 음성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신음의 높낮이, 이어지는 그 고통의 소리에 가슴이 떨렸다.
아버지가 다리를 소독 중이라고 했다. 이제 구멍도 커지고 그 상처부위가 녹고 있고, 가스도 배출되는 상황..
소독을 하고 나면 한결 통증은 나아지겠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소리만 듣고서도 잠시 정지된 것처럼 손이 떨렸다.
먹먹한 감정이 치고 올라와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에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에게 통합간병실에 간다고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이 되었다.
한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면회시간에 면회하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다.
면회를 하러 들어가는데 정말 가슴이 떨렸다. 오직 일반실로 가서 엄마랑 지내면서 스마트폰도 받아 이전처럼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실 텐데.
지난밤에는 간호사에게 부탁해 엄마에게 전화해, 온갖 협박과 애원이 섞인 말들을 늘어놓았다고 했다.
우선 가서 잘 말씀드려 보자. 어차피 통합간병실은 최대 2주 입원이고... 아니, 며칠도 못 버티고 내려올지도 모르지만 시도라도 해보자.
아버지의 신음과 비명을 듣고 난 후라 내 마음은 한결 아버지를 따뜻하게 다독여야지, 혹시 화를 내더라도 차분하게 잘 설득해 봐야지.. 그렇게 만났다.
다짜고짜 너는 내일 오고, 엄마를 들어오라고 했다. 그때 곁에선 간호사가
“아버님이 2인실에 가시고 싶다고 하셔서, 우선 2인실에 예약을 걸어놨는데 그전까지는 6인실에 가실 것 같아요.”
“예? 통합간병실에 2인실도 있어요?”
곁에서 아빠는 계속 엄마를 오라고 하라고 재촉했다. 알겠다고 하고 나가면서 그 간호사에게 다시 물어봤다.
“선생님, 아버지가 2인실 가고 싶다고 하셨다면.. 아버지는 아마 일반병실 2인실 얘기를 하신 것 같은데요? 통합간병실에 대해 인지가 안되신 것 같은데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우선 엄마랑 교대를 하고 나와 (1회 1인만 입실 가능) 기다리는데 불안감이 밀려왔다.
역시나 밖으로까지 들리는 아버지의 음성, 큰소리를 내며 소동을 피우는 느낌.. 내가 들어갈 수도 없고 착잡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수간호사님이 나오셨다.
“어머님이 통합간병실 안 가고 일반병실 4인실로 가시겠다고 하시네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눈물이 차올라 간호사님을 제대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늘 엄마의 의중을 물었었다. 엄마가 어쩔 수 없이 어떤 결정을 해도, 우리가 보기에 아니다 싶으면 만류도 하고 설득도 했다.
그런데 통합간병실은 온전히 엄마의 요청이자 결정이었고, 나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예상되기 때문에 조금 전까지 1층에서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다.
확실하게 최소 1주 정도는 통합간병실에서 지내면 좋겠다, 하시면서 말씀하셨는데.. 갑자기 말을 바꾼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보호자분도 아버님도 그렇겠지만, 어머님 건강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참 어렵지요.
이제는 어머님 혼자서 아버님을 감당하시기 힘드실 것 같아요. 지난번보다 더 요.
가족들이 교대로 돌아가며 아버님을 돌보시든지 해드려야 할 것 같아요.”
엄마가 한숨을 쉬면서 나오셨다. 우선 1층으로 내려갔다.
엄마를 앉혀놓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냐고 따지듯 물었다.
“아버지가 저렇게 난리를 치는데, 통합간병실 가서 하루라도 버티겠냐. 어쩔 수 없지..”
- 그래도 우리랑 의논을 해야지, 갑자기 그렇게 결정할게 아니잖아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
이제는 치료도 그렇고 엄마 혼자서 안되는데.. 엄마는 매번 아버지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서 이러면 자식들은 뭐가 돼요. 엄마가 통합간병실 보내자고 결정 했었잖아요.
지켜보는 자식들 마음도 문드러져요. 자식들 생각하면 한 번은 꺾어주셔야지. 죽기 전에는 사람이 바뀔 것 같아요? 아니요, 지난번에 다 보셨잖아요.
아까처럼 난리 친 거? 엄마 때리고 평생 힘들게 한 아버지가 더했으면 더 했지, 더 지랄발광을 할 거라고~!!
일반 병실로 가는 순간, 엄마 또 밤새 잠도 편히 못 주무시고 또 집에 가자고 조르고 괴롭힐 거라고.
아버지도 아셔야지, 지금 상태가 어떤지 받아들이실 시간이 필요한지도 몰라요.. 엄마까지 아프면 안 되잖아요…….
한참 화도 내었다가... 설득을 해보려고 했지만..
엄마는 쉽게 결정을 못하셨다. 내가 밀어붙여야 되나 고민도 되었으나, 엄마가 내뱉는 대답들에 나도 체념이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내가 감당해야지, 너는 신경 쓰지 마라, 알아서 할게.
허탈해서.. 참 웃을 일이 아닌데 헛웃음이 나왔다.
또 제자리. 또 제자리…
쭈글쭈글 앉아 딸에게 야단 듣는 엄마 모습이 또 마음이 아파서……
내일은 일이 있어서 못 오지만 목요일에 와서 엄마랑 교대해 주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왜 계속 이런 평행선을 걸어야 하는 걸까.
집 근처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걷는데, 바람이 참 차고 서늘했다.
이 마음 털어놓고 편히 울어도 될만한 사람이 생각나지 않았다. 누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순간.
이 무거운 인생이 슬퍼서. 길 위에서 가슴을 치며 울었다.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상황을 글로 쓰기도 힘들다.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 엄마 걱정이 되면 가족들이 돌아가며 순번을 정해서 간병을 하면 되지 않냐?”라고 물을 것 같다.
그것이 정말..쉽지 않다고… 누구에게라도 설명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이해시키고 싶은 대상은 나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내 삶을 살아야겠는데,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은데, 그럼에도 기꺼이 할 수 있을 만큼 사랑이 없는,
사랑보다 미움이 큰 이 관계에서, 이 엉켜있는 역사, 지긋지긋 끊어버리지도 못하는 가족이라는 단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괴로운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언니는 이 소식을 듣고, 이제 엄마도 보지 않겠다 선언했다.
“그저께(일요일에) 아무도 면회 안 가면 아버지 마음이 안 좋을까 봐, 형부랑 갔었는데 뭐랬는 줄 아니?!
OO이 내 자식 아니다, 내 자식 아니다, 어디 나한테 협박을 하고...이러더라. 걔가 뭐랬다고.. 그것도 너무 속상했는데”
아버지한테 제대로 한 번 대든 적도 없는 동생이 집에서 버티는 아버지에게 병원 좀 가라고, 그냥 자식들 말 좀 들으라고 한게 협박이라니.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도 싼 사람이라고, 임종 때에도 굳이 부르지 말라고 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어떤 감정일까?
절망, 슬픔뿐이다.
화해..감사, 용서, 진심어린 애도... 그 비슷한 어떤 기대도 이제 정말 버렸다.
섬망이 와서 엄마가 남자에 미쳤니, 바람을 피우니, 재혼을 하니, 역겨운 말을 쏟아내는 것도 아파서 그런 거니 참고
마지막까지 가족들 가슴 아프게 하는 아버지에게 원망이 되고 슬프지만 그 또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외면할 수 없는 이 마음도 사랑이겠거니, 사십 오 년을 살면서 받은 것이 생물학적 생명만이 아니라 1%의 애정도 있었겠거니
지금은 너무 아프고 힘드니까 주변사람 생각을 못하겠거니, 원래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으니..
몸살이 왔고, 열도 오르는 것 같다. 집에 가자 마자 약을 먹고 누웠다.
차례로 아이들이 집에 왔다. 엄마를 한 번 씩 안아주었다. 엄마, 아프지 말아요…고맙고 따뜻한 우리 아이들..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되면 어떡하지..
저녁에 엄마가 찾아오셨다. 병원에 다시 통합간병실로 연결시켜 달라고 말하고 왔다고.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만나면 또 휘둘릴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현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미안하다는 말보다 본인이 너무 힘드셨다.. 는 말만 계속하신다.
아무리 말해도 엄마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마음을.. 나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