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존재를 의지하면서
나는 3녀 1남 중에 셋째이다.
가난한 집구석에 형제가 많으니 각자도생,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독립하고 각자의 삶을 살아왔다.
나보다 일곱 살 많은 맏언니는 내가 타지에 살 때에도 친정 가까이에 살고 있었서 장녀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
경조사나 어떤 일이 있을 때는 형제들이 의논해서 결정하곤 했지만,
부모님이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대신 구매를 해주거나, 병원에 모시고 가거나 보험료 청구 등 크고 작은 일들을 도맡아 해 주어서 늘 고마운 마음이 들었었다.
칩거하시는 아버지의 칠순 기념으로 건강검진을 받게 하려고 조카까지 동원해서 설득을 했고, 그 건강검진으로 직장암을 발견하게 되었다.
엄마의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꾸려가기에 점점 의료비 부담이 크게 될 거라고, 언니의 주도 하에 자매들이 수년 전부터 부모님의 의료실비보험을 넣고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아버지의 항암과 통원치료 등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모가 연로해지면 자식이 보호자가 된다고 했다.
아버지의 암진단과 처음 방사선치료부터 항암치료를 받기까지, 주치의 면담이나 보호자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늘 언니가 우선 나섰고,
언니가 상황이 되지 않으면 나에게 바통이 넘어왔었다.
엄마가 항상 병원에 동행하셔서 돌보셨기에, 무리해서 시간을 낼 정도는 아니었고 엄마와 아버지의 안부를 자주 묻고 챙겨드리는 게 다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공유해 왔고, 힘들 때는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며, 기운을 북돋워주기도 했다.
추석연휴에 같이 밥을 먹으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언니가 오랜만에 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다섯 살 무렵, 태풍이 부는 날이었다.
집에는 큰언니와 작은 언니, 나 이렇게 세 명이 있었다.
부산 달동네 쪽방에 삼시 세 끼도 다 먹지 못하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냄새나는 푸세식 화장실이 무서웠다.
네모난 구멍이 크고 깊게 느껴져 빠질까 봐 무섭고, 화장실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들 때문에 더 겁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바람이 너무 불기도 하고, 내가 무섭다고 하니 언니가 나에게 문을 열고 볼 일을 보라고 했다.
그렇게 볼 일을 볼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문이 쾅 닫히면서 내 이마를 쳐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구멍 속에 빠지고 말았다.
갑자기 시야에서 내가 사라져 놀란 언니는 나를 구하기 위해 동네의 어른을 찾아 뛰었다.
그리고 어떤 아저씨 한 분이 나를 건져 주었고, 나는 죽지 않고 살았다.
네모난 구멍, 빛 속에서 구원의 손 하나가 나를 건지는 장면, 어릴 때 몇 없는 기억 속의 한 장면이다.
그리고 이어진 기억 속에 언니는 울면서 나를 씻겼고, 언니의 무릎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얼이 빠진 내가 누워있고, 머리맡에 놓인 바나나킥을 작은 언니는 조심스레 먹고 있었다.
언니의 말로는 사람을 부르러 가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왕창 깨졌다고 했다. 물을 데워서 아무리 나를 씻겨도 똥냄새가 빠지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막내를 데리고 어디를 가신 건지, 그렇게 태풍이 불던 날에… 고작 12살 먹은 맏이가 7, 5살 동생들을 돌보았던 날.
다음 날 부모님이 돌아오시고 난 후, 큰언니는 몸살을 해 앓아누웠다고 한다.
어릴 때 배고파서 굵은소금을 한 알씩 혓바닥에 놓고 녹여먹던 것과, 변소에 빠져 죽을 뻔한 기억 외에는 모든 것이 희미했다.
지독한 빈곤함으로 기억할 것이 없는 유년시절이라고 여겼다. 꽤 나이를 먹은 후에도 여러 사건들이 있을 때마다 부모님의 존재는 희미했다.
언니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살아있는 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네가 만약 잘못되었으면, 나는 제대로 살 수 없었을 거야…”
나는 언니가 구해준 거나 다름없는데, 내가 살아있는 게 언니를 살게 했다고 하니.. 마음이 좀 쿡쿡 쑤셨다.
나야 많이 어릴 때라서 남은 기억이 별로 없지만, 예민한 시기에 내가 알지 못하게 겪어온 수많은 일들이 언니의 삶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언니가 진 삶의 무게가 지금보다 가벼웠을 리가 없다고 여겨졌다.
지금 시대를 견주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 되는 참담한 일들이 경험되었다.
그에 비하면 다행히 우리는 참 잘 자라서 서로를 바라보며 안도하고, 뿌듯해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씩 불쑥 과거의 일이 가슴을 때리고 지나가도, 부모와 등지지 않았고 지금도 애쓰고 있다는 것…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각자의 입장을 존중해 줄 이유가 된다.
이제는 조금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계속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서로에게 구원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마음은 다시 멀리 흩어지게 될 것 같다.
다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이다. 다 놓아버리고 싶을 때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 함께, 이 터널을 잘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도 원망이나 서운함이 남지 않기 위해.. 언니와 나는 또 우리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