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7일 : 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얼굴 앞에서..
영정사진을 찾아왔다.
두 번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회복하시면서 상태 유지 중이신 아버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버지의 증명사진 하나를 챙겨서 근처 사진관에 맡겼다.
5년 전 시아버님 영정사진을 맡길 때와 달리 사진의 상태가 참 좋아서 별로 보정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근사하게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낯설었다.
수년 전에 찍은 사진이다. 암 진단도 받지 않았고, 항암도 하지 않았던 때에.
이런 표정의 아버지를 본 것이 언제 적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항암을 하시면서 머리카락이 빠지시고, 살이 빠지고, 피부가 변하고.. 여러 부작용들이 있었다.
그래도 원래 집에서만 생활하셔서 몸이 좀 비대해져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얼굴이 더 좋아 보이던 적도 있었다.
이번에 오래 항암을 쉬시면서는 얼굴은 더 편안하고 좋아지셨는데,
병원을 오가면서 잘 드시지 못하신 후에는 딴 사람처럼 수척해지셨다.
지금은 완전히 드시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영양제에 의존해 계시니 사람이 작아진 느낌이 들 정도로 마르셨다.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 사진 속의 아버지는.
월요일에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과 면담하고 아버지를 보고 왔다..
면회시간이 되었지만, 들어갈까 말까 하면서 집중치료실에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마치 시간이 지나가버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다가 집중치료실 문이 열렸는데. 위생가운을 입고 계신 엄마가 보였다.
오늘 기도원에 가시려고 하는데, 가기 전에 아빠 보고 가시려고 왔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병원에 올 때 엄마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었다. 엄마가 면회 오셨으니 됐다.
나는 면회를 하진 않고, 음압격리실이 열릴 때 멀리서 내부만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는 채광이 잘 들어오고, 널찍한 공간이 환해 보여서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혼자, 보호대에 갇혀 지내는 것이 아버지는 전혀 좋지 않겠지만 말이다.
엄마 얼굴을 보시고 아버지 마음은 좀 풀리셨을까. 예전처럼 화를 내시지는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차마 아버지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많은 걸 비우고 포기했다 해도, 다시 예전처럼 대화를 나누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래전부터 위태롭게 연결되어 있던 것이 이제는 거의 끊어진 것 같다. 그럼에도 문 앞에서 기웃거리는 나는 모순덩어리다.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내 아버지라는 사실이 서류상에서도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것처럼.. 사는 동안 잊히지 않겠지. 오늘의 순간들이.
아버지 상태는 엑스레이상 폐렴이 보여서 CT를 찍어보니 폐렴이 있고 폐에 물이 좀 차 있다고 했다.
알부민 수치가 떨어져서 물이 차고 부종도 생기는 것이라 추정하고 있고 그 외에는 현재 상태를 유지 중이라고 했다.
혈압도 90 언저리에서 유지 중이라, 다리 소독세척도 오늘 하고 왔다고 했다.
의사에게 이제 다른 보조치료는 안 하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영양제 끊는 것도 생각해 봤다고, 연명자체가 환자에게 더 힘든 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고 하면서 물어봤다.
의사입장에서는 영양제 끊는 건 할 수 없다, 그리고 치료약이 있는데 안 쓸 수 없는 입장도 있으니, 영양제와 항생제까지는 쓰자고 하셨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씀이다. 병원에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리고 어찌 되든 다리 소독처치는 안 하면 너무 힘드실 테니 내가 먼저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면담의 이유가 사라지고, 우리 마음이(내 마음이) 이러니 저러니 하소연만 한 턱이 되었지만 조금은 속이 시원했다.
외래진료시간에 꽤 긴 시간 동안 한마디 한마디 고심하며, 난감해하며, 조심스럽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든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고, 이 답 없는 상황에서 기댈 곳이 의료진뿐이라..?
영정사진을 맡기고, 장례식장을 알아본 것이 한참 지났는데.. 아버지는 생각보다 오래 잘 버티고 계신다.
엄마의 눈물과 노고 덕분이겠고, 때에 따라 자식들이 동원되어서 병원에 모시고 가서 고비를 넘겨서 이겠지.
살아 지내는 동안은 덜 고생하시고, 자연스럽게 이별하길 바랐는데.
처음부터 큰 병원에 가서, 다리치료라도 받을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힘들게.. 더 오래 계셨겠다 싶어서 마음이 좀 힘들었다.
모르겠다.. 아무도, 나 자신도 탓하고 싶지 않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했고, 엄마도 엄마답게 하셨다.
지난주에 그렇게 분노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건, 나름의 트라우마였던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너무 지쳐서인 것 같기도 하고.
엄마에게는 이제 마음 가시는 대로 하라고 했다. 엄마한테 이래라저래라 하기도 싫고 엄마 마음이 힘드신 것도 싫었다.
또 마음을 비운다. 태국에 있는 작은 언니가 아버지 안부를 물어온다. 지난 열흘동안의 긴 이야기를 하면서 또 지친다.
상황을 설명하고, 누군가를 이해시키고, 어떤 선택들을 한다는 것... 아버지로부터 오는 그 모든 것이 지친다.
영정사진 속 아버지는 참 편안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