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자마자 영화관에 달려가 <승부>를 봤다. 정말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한국 영화였다.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가 쌓여 있는데,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인 데미언 셔젤의 데뷔작 <위플래쉬> 재상영은 이제 곧 끝나가고, 이번에 미국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 상을 받은 <플로우>도 있지만 한국영화를 봐야 된다는 의무감에 <승부>를 골랐다. 한참 전에 촬영을 마쳤지만 유아인의 마약 투약 논란으로 개봉이 연기된 영화였다.
가장자리에 앉으면 괜히 집중을 잘 못하고 찝찝해서 정중앙 좋은 자리에 앉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이유 모를 불편함이 따라왔다. 러닝타임 30분이 넘어가기 전에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180도 규칙이나 30도 규칙과 같은 연속편집의 약속들을 가볍게 무시했기 때문이었다. 소격효과를 위한 의도된 연출이 아니라, 정말 염두에 두지 않고 촬영을 한 것만 같았다. 180도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은 일대일 바둑의 승부에서 누가 이길지 모르게끔 하는, 혼란을 주기 위한 연출일 수 있겠다 싶다가도 샷이 넘어가고 바뀔 때마다 몰입이 깨질 때면 아쉬움을 참을 수 없었다. 평범한 드라마 씬의 조립에서 느껴진 아쉬움은, 바둑을 두는 장면에서 바둑판을 촬영하는 흥미로운 방식들을 괜히 힘이 들어간 연출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의아했던 건 서사에서 인물의 설정이었다. 이병헌과 유아인이 연기한 극중의 조훈현과 이창호는, 결말에서의 두 사람의 관계를 염두에 둔 성격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승부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게 된다는 결말은 (실화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영화의 초반부부터 눈에 보이는 듯했고, 두 인물의 모든 행동은 오직 그 순간을 위해 설정된 듯했다. 예컨대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모질게 대하다가도 마음을 고쳐먹거나 하는 장면에서는 인물의 심리에 변화를 주는 요인은 실재적 사건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두 배우의 열연에도 내적 갈등 또한 설득력이 떨어졌다.
다만 긍정적인 점은, 목적지를 정해두고 달려가는 길에서 살아있지 못한 캐릭터를 꾸역꾸역 끌고 나아가는 영화를 바라보며 거울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세계와 인물과 이야기를 구축하는 게 참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에서 인물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잡생각이 많은 것과 상상력이 풍부한 것에 차이가 있나 생각하면서, 내가 평소에 멍을 때릴 때 어떤 방식으로 상상에 빠지는지 고민해보고 있다.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세계를 그리거나, 인물을 만들어내거나. 교집합이 될 수도 있고 하겠지만 어쩌면 이 질문은 객관식으로 답을 고를 수 없는 문제일 것이다.
1학년 때 들었어야 했지만 마지막 학기까지 미루고 미룬 과학 교양 강의를 듣고 있다. 빅 히스토리의 관점에 따라 공부하는 과목인데 교수님의 말을 전부 듣고는 있으나 동시에 그중에 머리에까지 들어오는 단어들을 조합해 망상에 빠지며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지난 시간에는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리는, 보이저 1호가 찍은 광활한 우주 공간 속의 지구 사진을 봤다. 빔 프로젝터로 투영되는 그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어릴 적 학교를 가다가 동그랗게 떠 있는 구름을 바라보면서 문득 느낀 감정을 다시 느꼈다. 세계는 모든 것을 정하고 이야기는 그 하늘의 구름처럼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라는, 나 같은 인물은 그 일부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순간 들었다.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이런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 적에는 신을 안 믿었고 종교를 싫어했다. 신앙은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갈 힘이 없는 사람들이 가지는 것이라고 꽤나 버릇없는 생각을 가졌다. 여전히 신을 믿지 않지만 요즘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된다. 영화 매체를 플라톤의 <국가>에서의 동굴의 비유에서 이야기할 때면 영화와 종교를 함께 두고 생각하기도 하고, 동기와 시뮬라시옹과 끌어당김의 법칙을 두고 농담을 시작하면 꽤나 무거운 이야기로 끝나게 된다. 또 지금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고 있는데 이 텍스트는 때로는 무신론자의 주장을 대화로 옮겨 써넣다가, 신부의 입을 빌려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종교를 통해 형성된 이데올로기가 19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아직 스스로 망상하는 세계와 인물, 그리고 이야기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세계의 그것들은 더더욱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창백한 푸른 점'이나, 동그랗게 떠 있는 구름을 목격하고 입을 벌린 채로 바라보며 망상하는 인물 역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세계의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