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이토록 나를 흔들어대고 있을까?

우리는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

by 조이캄JoyCalm

제주도 오투힐에서 진행하는 내면혁명 워크숍은 "인간은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명제를 일깨워준다. 우리가 겪는 기쁨이나 고통, 사랑, 상실과 같은 사건과 하나가 되어 그 사건이 나 자신의 존재가 되도록 놔두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사건과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오롯이 경험하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지금 이 몸이 있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온전히 경험하기 위함이란, 그것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감내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그 사건들이 곧 나 자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것들(삶의 상황과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되 존재성이 잠식되지 않는것이다.


경험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명제 안에는 지금의 내 삶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일단은 받아들여보는 급진적 수용의 태도가 담겨있다. 경험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임을 상기할 때 불안이나 긴장과 같은 생존을 위한 방어기제가 해제되고 세상을 환영하고 환대하는 열림이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질병으로 고통받고, 갈등으로 상처입고, 일은 잘 진척이 안돼고...삶이 왜이리 나를 흔들어 대는 걸까?.. 왜 나의 삶은 이럴까...자신을 향한 자기비난과 비판이 쏟아지곤 한다. 이럴 때 나 자신을 향한 깊은 한마디..."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경험하기 위해서지. 경험하자.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경험하자"라고 말해보자. 받아들임 속에서 이해가 일어나고 지혜가 찾아온다. 그렇다고 부당한 것을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이미 발생하고 있으니 객관적인 시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분명하게 인식하자는 것이기도 하다.


경험하자는 태도는 의식적이고 열린 받아들임의 자세이고 그 과정에서 이해가 생동한다. 삶이 나를 흔들어댈때, 받아들임과 이해로 지금 이순간 벌어지는것을 감내하고 경험하면 나는 성장하고 확장된다. 경험 속에서 속살이 채워진 단단한 마음은 이어지는 삶을 보다 건강하게 꾸려기도록 돕는다.



"우리는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명제는 단순한 감정적 고백을 넘어서,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세 가지 본질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있다. 인류가 던지는 세가지 빅 퀘스쳔("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죽음 이후에 무엇이 있는가?" )은 인간 존재의 뿌리를 탐구하는 본질적인 의문이며, 경험을 통해 새로운 앎을 제공한다.


1. 나는 는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로 자아를 정의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접근은 "나는 경험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명제일 수 있다. 일상에서 격는 좌절이나, 기쁨, 행복, 고통, 비애, 만족, 상실의 감정들은 단순한 사건을 넘어 나 자신을 이루는 소중한 재료들이다 매 순간의 경험이 축척되고, 축척된 퇴적물을 서사적 이야기로 구성하면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인격이 빚어진다.


즉 우리 인간은 '완성된 자아'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변화하고 성정하는 과정'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며 자신을 끊임없이 발견하기 위해 태어났다. 이 명제가 이해되지 않더라도 일단 받아들여보자. 받아들임의 끝에서 이해가 일어날테니.




2.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수많은 철학자와 종교는 인간 존재의 목적을 신의 계획이라고도 하고 진화의 결과라고도 하며, 사회적 역할 등으로 설명해 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실질적인 공통점은 "경험하는 장으로서의 삶"일 것이다. 기쁨과 슬품,불완전함과 성취, 아름다움과 고통이 뒤섞인 이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체험장이다. 무언가를 '증명하고 보여주기'위해서가 아니라, 삶이라는 각자의 무대를 온전히 살아내고 체험하며 존재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일 수 있다.


사회적 활동이 많아질수록 나 자신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조바심이 치오른다. 그럴때마다 오히려 힘이 빠져집중이 더 안된다. 어떤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더 동기화 될 수 있지만, 나라는 사람은 조바심이 나면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는다. 학교로 치면 점수를 얻어 1등이 되고고 싶으나 공부에는 더 집중이 안되는 격이다.


그러나 내가 태어난 이유가 점수를 얻기 위해 온것이 아니라 배우고 느끼기 위해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오히려 더 풍요와 풍성함에 가 닿게 되는 것 같다. 적어도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확장되고 성장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가? 내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경험하며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다.


3. 죽음 이후에는무엇이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죽음을 삶의 반대나 종말로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면, 죽음은 단지 경험의 한 경계일 뿐이라는 관점도 가능하다. 삶을 경험하며 배우고 성장해온 존재는,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차원의 경험으로 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전통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전이로 이해되기도 하며, 이는 인간 존재가 궁극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경험하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우리는왜 존재하는가? 지금 여기에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 인가?

"우리는 경험하기 위해 태어났다"라는말은 인간 존재의 가장 순수하고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정답을 얻기위해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질문하며 그 질문을 몸으로 부디끼며 살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완벽해지기위해서가 아니다. 불완전함 속에서 진실하게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존재한다.

영원히 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순간을 깊이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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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토록 내 삻은 나를 흔들어대고 있는가?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면 더 깊은 나에게 다가가 스스로 확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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