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여자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

결혼과 희생, 그리고 자유의 문제

by Joyce C

시인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에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말했다.

자유가 향기로운 꽃다발이 아니라, 싸움과 상처와 대가를 동반한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구절을 떠올리며 오늘 들었던 한 변호사의 말을 곱씹었다.

결혼 이후 여성이 대등하지 않은 관계 속에서 '현대판 노예'로 전락하기 쉬운 구조에 대한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종과는 상의하지 않는다. 존중하지 않는다.

배려는 선택 사항이고 감사는 기대할 수 없는 사치가 된다. 아무리 가족을 위해 헌신했다고, 사랑이었노라고 포장해도 관계의 본질이 수직이라면 그 헌신은 미덕이 아니라 구조적 종속이 된다.

"종의 처분은 주인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말은 과격하게 들리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일상의 많은 장면과 겹쳐진다.


갈등이 없는 삶은 없다. 그러나 갈등 앞에서 침묵하는 삶과, 갈등을 통과해 자신의 자리를 찾는 삶은 다르다. 싸움은 파괴가 아니라 조정의 과정이고,

논쟁은 관계를 깨기 위한 칼이 아니라 경계를 세우는 도구일지도 모른다.

"나는 논쟁을 잘 못 해요"라는 말 뒤에 숨는 대신, 생각하는 법을 배우고, 내 가치관을 세우고, 사리를 분별하는 힘을 기르는 일. 그것이 어쩌면 자유의 '피 냄새'를 감당하는 일일 것이다.


어떤 엄마들은 가족의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한다.

남편의 감정, 시댁의 요구, 아이의 문제까지...

그 헌신은 처음에는 사랑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의존을 키우고 자신을 지워 버린다.

남편의 종노릇을 하다가, 시댁에 종노릇을 하다가, 결국은 자신이 낳은 아이의 종노릇까지 하며 생을 다하는 이야기. 그것이 미화될 때, 희생은 덕목이 되고 개인은 사라진다.


어떤 이는 말한다.

"나는 노예지만 행복해."

제한된 공간 안에서 허락된 자유에 만족한다고...

혹은 주인을 잘 고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타인의 기분과 허락 위에 세워진 평온은 언제든 흔들린다.

선택하지 않는 편안함, 생각하지 않는 안락함은 달콤하지만... 그 대가는 반드시 돌아온다.

생각을 포기한 대가 말이다.


나는 이제 이렇게 믿는다.

어디에 속해 있든, 누구와 함께 살든, 내 인생의 주인은 나여야 한다는 것을.

집안의 평안이 한 사람의 무조건적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면, 그것은 건강한 안락이 아니다.

희생이 반복되면 존중은 사라지고, 결국 '호구'라는 이름만 남는다.


싸울 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는 말이 거칠게 늘릴지 몰라도, 그 뜻은 분명하다.

사리를 분별하고, 부당함을 말하고, 관계를 재조정할 줄 아는 능력은 삶의 기술이다. 침묵은 때로 미덕이 아니라 자기 포기일 수 있다.

예전에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상대를 높이는 거야." 나는 그 말을 오래 붙들고 있다.

나를 지우는 겸손은 겸손이 아니다.

나를 존중하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 그것이 내가 배우고 싶은 품위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

그 피는 누군가를 향한 공격의 흔적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흘린 노력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나를 낮추는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관계 속에 머물되 종속되지 않고,

사랑하되 지워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자유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