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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와 한 걸음 사이, 트레일 위에서

자이언 Subway를 향해

by Joyce

라스베이거스에서 약 두 시간 반 거리에 있는 미국 유타주의 자이언 국립공원(Zion National Park), 이곳은 우리가 라스베이거스로 이사하는 데 큰 동기를 부여한 곳이기에, 기회가 될 때마다 찾아 다양한 트레일을 경험하고 있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자이언 국립공원에는 서브웨이(Subway)라고 불리는 독특한 협곡 지형이 있다. 마치 지하철 터널(Subway)처럼 둥글게 깎인 협곡 벽이 이어지며, 오랜 시간 물살에 의해 다듬어진 바위들과 작은 폭포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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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형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무려 9마일(14.5km)의 트레일을 걸어야 한다. 섭웨이로 향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위에서 캐년을 타고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 그리고 밑에서 하천을 따라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는 바텀업(Bottom-Up) 트레일이 있다. 탑다운 방식은 최소 4~5번의 로프 하강(Rappelling)이 요구되는 방식이라, 우리는 바텀업 방식을 선택해, 같은 길을 왕복으로 해서 돌아오는 Left Fork Trail (Left Fork of North Creek) 경로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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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올해 1월, 섭웨이를 향해 첫 도전을 했었다. 하지만 트레일의 절반도 채 가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전날 퍼밋 확인을 받지 못해 당일 오전에 퍼밋 오피스에 들렸다 가느라 출발이 늦어진 데다, 트레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길을 알려주는 표식이 거의 없는 코스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트레일에는 사인이나 마커가 있지만, 이곳은 지도와 노스크릭(North Creek) 개울에 의존해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는 처음 접하는 길에서 헤매는 시간이 길어졌고, 결국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아 그날은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아쉬움이 남았던 우리는 2월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비수기였기에 비교적 쉽게 퍼밋을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다해 전날 미리 도착하여 퍼밋 확인증을 받고, 국립공원 내 왓치맨 캠핑장(Watchman Campground)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7시에 레프트 포크 트레일헤드(Left Fork Trailhead)에서 트레일을 시작했다.


초반 코스는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 협곡 바닥에 도착하는 구간이다. 우리는 첫 번째 도전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트레일을 잘 찾거나, 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속도를 낼 수 있는 구간이지만, 여전히 개울을 따라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트레일 초반에는 멀리 보이는 협곡 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는 하천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하며 여러 번 물을 건넜다. 우리는 이번에 트레일을 준비하는데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바로 방수화가 아니라 일반 등산화를 신었다는 것이다. 섭웨이로 가는 길은 하천을 여러 번 넘나들고, 마지막 부분에는 하천에서 물속을 걸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난번 트레일에서는 물이 생각보다 따뜻했고, 개울을 건널 일이 적었기에 일반 등산화를 신었지만, 이번에는 눈이 내린 뒤라 그런지 개울이 불어나 있었다. 중반부터는 자주 물을 건너야 했고, 발이 젖으면서 체온이 떨어지고 피로가 빠르게 누적되었다. 방수화를 준비했다면, 물길을 피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었을 텐데, 예상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트레일 중반 부가 시작되면, 바위 지형과 암벽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바위를 돌아가기 위해 물을 건너거나, 암벽을 기어오르는 구간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명확한 트레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이 트레일을 도전하기로 한 결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길을 헤매는 중에, 우리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따라 이동하며 조금씩 진도를 내고 있었는데, 내 속도가 많이 쳐졌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앞서가던 선수가 보이지 않아 쫓아가지 못했다.


중간 지점을 통과하서 나서부터는, 눈 덮인 트레일을 지나느라 체력이 바닥났고, 기온이 낮아지면서 젖은 신발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눈이 미끄러워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러웠고, 지친 마음이 커져 점점 끝까지 가야 한다는 동기부여마저 희미해졌다.


이쯤 포기하고 돌아가야 하나,

이 트레일을 통한 서브웨이는 왕복 코스다. 들어간 만큼, 돌아올 길도 스스로 걸어야 한다. 이 눈길을 다시 걸어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이미 여기까지 왔기에 쉽게 돌아서기도 어려웠다. '한 번만 더, 한 걸음만 더'라는 마음으로 느린 속도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좁아지는 협곡,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듯한 작은 폭포를 지나며 우리는 마침내 서브웨이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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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린 시간은 약 4시간 반. 둥글게 깎인 협곡 벽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서브웨이 협곡은 강한 물살과 오랜 시간 침식 작용으로 인해 마치 U자형의 둥근 터널처럼 형성되어 있다. 협곡의 벽은 양쪽으로 매끄럽게 곡선을 이루며 휘어져 있다. 협곡이 깊기 때문에, 서브웨이 지형에서는 낮에도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협곡 내부 바닥에는 작은 에메랄드 빛 웅덩이들이 많고 물이 계속 흐르며 웅덩이들을 채우고 있다. 강한 물살과 오랜 침식 작용이 만든 이 자연의 작품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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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감격도 잠시, 들어온 만큼 돌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다시 떠올랐다. 섭웨이에는 마땅히 쉴 공간이 없었기에, 짧게 사진을 찍고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일단 눈밭을 벗어나야 앉아서 쉴만한 곳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친 다리는 말을 잘 듣지 않았지만, 다리를 질질 끌면서 트레일을 걸어 나갔다. 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더 험난했다. 발이 젖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이동하려 했지만, 결국 개울에서 미끄러져 물에 빠졌고, 핸드폰까지 망가져버렸다. 젖은 옷이 몸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고, 멘탈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음은 신속하게 이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우리보다 한참 늦게 출발한 후발주자들 보다도 늦어져, 결국 마지막으로 트레일을 나왔다. 마지막 구간, 가파른 언덕을 다시 올라야 할 때쯤 해가 저물고 있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차에 도착했을 때는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원래의 계획은 캠핑장으로 돌아가 좀 쉬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보고 남편은 캠핑장에서 짐을 바로 정리하고 돌아가자고 했다. 차에 앉아서 내가 몸을 잠깐 덥히고, 남편과 텐트와 캠핑 장비들을 정리에 싣고 우리는 바로 집으로 출발했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트레일을 마무리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는 당분간 왕복 4시간 이상 걸리는 트레일은 도전하지 않기로 했다. 후회는 없지만, 이번 경험이 얼마나 아찔했는지 충분히 깨달았다. 다시 이곳에 오려면, 더 강한 체력과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혹시, 나중에 이 트레일을 목표로 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기억하세요.

✔ **퍼밋 필수!** 미리 예약하고, 전날 확인증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퍼밋은 미리 예약을 필요하고, 전날이나 혹은 당일 아침 직접 비지터센터로 가서 퍼밋 확인증을 발급받아야 합니다. 퍼밋 확인증 발급시간은 아침 10-11:30, 오후 3-4:30에만 운영되니, 전날 미리 확인증을 받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특히 해가 짧은 계절에는 아침에 퍼밋을 받고 트레일을 시작하기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면 해가 지기 전에 왕복을 마무리하기에 시간이 촉박합니다.

✔ **방수 신발 필수!** 개울을 건너는 일이 많아 신발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해당 트레일은 개울을 넘나들고, 때로 수심이 깊은 물을 지나가야 합니다. 물에서 미끄럽지 않고 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신발을 준비해 주세요.

✔ **자이언 국립공원의 물은 절대 마시지 마세요.** 자이언국립공원 물에는 유독성 남세균(Toxic Cyanobacteria)이 번식할 수 있어서, 공원 내 물은 절대 마시는 행위나, 물에서 수영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 박테리아는 신경계 독성이나 간독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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