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일
임신 35주 차가 되었을 무렵, 뭔가 아기의 태동이 조금 줄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미나게도 임신 중에 태동이 느껴질 때부터 배를 가볍게 톡톡 치면, 아기는 대답하듯 발이나 팔로 팡팡 차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그 횟수가 줄어드는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킥 카운트'(2시간 동안 느껴지는 아이의 움직임 횟수)를 기준으로 알려주었고, 실제 기준에 적합한 횟수였기 때문에 별다른 이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아기가 조금 천천히 움직이거나 이제 제법 몸집이 커져서 움직임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36주 차에 진입할 무렵, 남편에게 아이의 움직임이 좀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심박수 모니터링을 하면서도 이야기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소견을 받았다. 36주 차 초음파 검사에서도 기존에 다니던 산부인과에서는 심박수와 아이 몸무게 정도의 정보만 들었다.
그런데 37주 0일 차, 심박수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중에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이 다시 진료실로 들어왔다. 모니터링 중에 몇 차례 아기 심박수가 불규칙하게 관찰되었다고 했다. 분만 병원에 있는 기계가 정확도가 더 높으니 지금 바로 이동해서 다시 한번 모니터링을 진행하자고 했다. 담당 선생님이 분만병원에 연락을 취했고, 우리는 차로 분만병원으로 바로 이동했다.
분만병원에는 이미 환자 등록을 이미 완료해 뒀기 때문에, 트리아지(Triage)에서 이름으로 체크인만 바로 하고, 다시 심박수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초기에 체크인을 진행해 준 스태프들은 아직 양수도 세지 않았고 자궁경부도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니터링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다.
모니터링을 시작한 지 20분 정도 되었을까, 갑자기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 간호사들이 들어와 센트럴라인을 잡고(슬프게도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다), 피검사를 위해 피를 뽑고, 분만실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거의 동시에 담당의사 선생님도 산부인과에서 퇴근 후 분만 병원으로 직접 와서 설명을 해주셨다. 심박수 모니터링에서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는 감속이 관찰되었고, 모니터링이 Category II(태아 모니터링 단계 중, 완전히 정상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주의 깊은 관찰이 필요)로 나와서 37주 0일이면 출산을 할 수 있는 기간이니 당일 유도분만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권장했다. 당시 자궁경부가 전혀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도분만을 시작해도 다음날 혹은 모레까지 되어야 출산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담당 선생님은 당일 당직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산부인과 소속의 다른 의사가 팔로업을 해줄 거라는 설명을 남기고 다음 날 보자며 퇴근했다.
임신 주수라는 것은 분명 숫자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초기나 안정기, 더 나아가 중기나 후기라는 단어도 결국은 임신 주수를 기준으로 결정되고,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는 시기도 결국 주수를 기반으로 많이 판단되는 것 같다. 임신 주수와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는 시기에 대해서 전체적인 통계를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임신 기간 동안 나는 계속 이 주수에 기대어 언제가 출산에 가장 안전한 주수인지 예상하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마치 40주에 가까울 수록 완벽한 숫자인 것처럼.
당일 아침만 해도 당장은 37주의 시작이라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아직 분만까지는 3주나 남았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만삭의 몸은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서 곧 아이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더 많은 시간이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37주 주말쯤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38주쯤 출산 휴가를 시작하며, 육아 관련 서적을 읽으며 공부하면서, 출산 직후에 먹을 반찬들을 밀프랩 해놓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출산을 앞두고 "언제쯤"이라는 말을 유난히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 예정일, 주수, 검진 날짜, 촉진 여부, 시간표. 시간을 숫자로 환산하고, 숫자를 안심으로 바꾸려 했다.
그러나 숫자는 무엇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삶에는 언제나 통제할 수 없는 일이 가득하고, 임신마저도 그러한 축복이었음을 금세 잊고, 출산이란 결국 준비의 문제라고, 마치 준비를 함으로써 더 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던 것이다.
당일에는 루틴 체크업 때문에 병원을 방문한 거라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였다. 아직 출산이 멀었다고 생각해서 출산가방도 다 챙기지 못했다. 두 시간이면 집에 돌아갈 거라 생각해서 고양이 저녁밥도 챙겨주지 못하고 왔다. 물론 건사료와 물 자동 디스펜서가 있어서 고양이는 충분히 먹고 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고민들을 일단 뒤로하고 곧바로 분만실로 이동했다.
간호사들이 분만실 침대에 잘 자리 잡도록 도와주고, 병원 가운으로 갈아입히고 춥지 않도록 양말도 챙겨줬다. 병원에서 주는 양말은 미끄럼 방지 양말이라 자연분만 할 때 꽤 편하다. 입원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두 명의 간호사가 함께 나에게 여러 문진을 확인하고 기존 출산 계획이나 혹시 기저질환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내진 후, 유도분만을 시작하기 위해 어떤 약물을 투여할 것인지, 그게 어떤 효과를 주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고 유도분만 과정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직 진통도 없을 시점이라 양가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약물 투여를 시작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집에 잠깐 들러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게토레이 등 출산가방을 챙겨서 돌아왔다. 병원에서도 주스나 물을 제공해 주긴 하는데, 금식을 하면서 진통을 견딜 때는 게토레이가 많이 도움이 됐다.
유도분만 약물이 투여되고 두어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진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분만실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모니터링 기계를 부착했는데, 몸을 움직일 때마다 수치가 바로 보고되어서 새벽 내내 간호사 분이 계속 확인차 들어와서 체크해 주거나 모니터링 기계 배터리를 교체해 줬다. 분만실에는 보호자용 리클라이너가 있어서 병원에서 주는 담요와 베개를 받아 남편도 분만실에서 같이 밤을 새웠다.
진통을 견디면서 아침이 되자 새로운 간호사로 인수인계가 되었다. 이날 오전부터 초저녁까지 유도분만 과정을 담당해 준 간호사는 특별히 고마운 사람으로 남았다. 유도분만 약물 투여를 진행하며, 자궁경부가 좀 더 열릴 수 있게 자궁경부 풍선을 포함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기로 했다. 담당 간호사는 아기가 좀 더 밑으로 이동할 수 있게 요가볼이나 피넛볼부터 스트레칭을 도와줄 수 있는 스태프도 불러와 여러 방법을 시도할 수 있게 도와줬다. 첫 출산이라 정신없고 아픈 와중에 모르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담당 간호사의 안내를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결정해갈 수 있었다.
물론 시간도 진통도 내 계산대로 흐르지는 않았다. 모든 임산부들이 하는 말이겠지만, 이런 강도와 정도의 진통은 처음 경험해보는 거라 예상도 제대로 할 수 없고 그에 맞는 대응도 제대로 할 수 없어, 내가 물어볼 수 있는 건 "원래 이렇게까지 아픈 게 맞나요"라는 질문뿐이었다.
하루 가까이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고 오후가 되자 진통이 심해져 무통주사를 맞았다. 새로 인수인계받은 간호사는 진통이 심해질 때마다 아이의 심박수가 떨어지는 걸 관찰하고 당직 의사 선생님에게 연락했다. 여러 수치를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아직은 자연분만을 진행할 수치 안에 있지만, 수치가 더 떨어진다면 제왕절개를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소견을 알려주었다.
자연분만을 시작한 직후였기 때문에 당직 선생님은 일단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고 하고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일단 내가 힘을 주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고, 아이의 몸에 탯줄이 두 바퀴나 감겨있어서 아이가 내려오지 못하고 자꾸 다시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두 시간 정도 자연분만을 진행한 끝에 담당 간호사가 수간호사를 데리고 왔다. 연륜이 지긋하게 있어 보이는 간호사였는데, 내가 힘을 주는 방식을 다시 잡아주고 다시 진행을 시켰다. 수간호사가 힘을 주는 자세를 잡아준 뒤, 아이가 밑으로 많이 내려와 제왕절개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에 10분 안에 아이가 나왔다.
마지막 10분 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분만실에 많은 인원들이 들어와 신속하게 움직이는 게 정말 놀라웠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바로 분만실로 들어와 아이를 받을 준비를 했고, 소아과 스태프들과 추가 산부인과 스태프들도 들어와서 아이가 나오기 전에 세팅을 맞췄다.
아이가 나오자마자 신속하게 남편이 탯줄을 자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아이를 체크하고 가슴 위로 올려줬다. 유도분만을 시작하고 30시간 정도 만에 분만이 완료되었는데, 그야말로 나는 기진맥진했다. 더 이상은 몸에 기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지쳤는데, 그 와중에 탯줄을 자르는 남편의 생경한 표정에 우리가 드디어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2.5kg로 나온 작은 아이를 안고 있는 동안 여러 마음이 동시에 다 들었다. 이렇게 가볍고 작을 수가, 그리고 어떻게 내 배에서 이 아이가 나왔을까.
담당 의사 선생님은 태반이 완전히 나왔는지 확인하고, 열상이나 회음절개 부위를 확인해 봉합하고 전반적인 상태를 마무리 점검해 줬다. 스태프들은 나머지 분만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빠르게 들어왔던 만큼 신속하게 분만실을 나갔다. 우리는 분만실에서 2시간 정도 대기하며 혹시나 추가 출혈은 없는지 확인하고 회복실로 이동했다.
미국에서 분만 경험에서 간호사분들이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건 분만 과정 시작부터였던 것 같다. 분만과 산후회복실에서 만난 간호사들은 정말 친절하고 전문적이었다. 궁금한 부분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해 줬고, 정말 환자의 입장에서 설명해주고 케어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고마운 마음을 다르게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퇴원 후 베이글 박스들을 케이터링을 해서 두 곳 스태프 스테이션에 전달하고 담당 간호사들 4명 정도에게는 따로 스타벅스 기프트 카드와 땡큐 카드를 전달했다.
회복실로 이동해 다시 한번 안내와 부축을 받아 병실 침대에 앉아 아이를 안았다. 아직 양수 안이라고 생각하는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생일이 되는 그 당일의 날짜를 생각하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더 준비기간을 원했지만, 아이는 본인의 타이밍에 태어났구나. 아이가 일찍 나온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나와야 할 때 나온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모든 게 준비된 출산이란 건 없다. 모든 아기 짐이 정리되어 있고, 집은 깨끗하며, 냉장고는 채워져 있고 우리도 심리적으로 준비된 상태. 이런 준비는 그저 내가 불안을 다루는 방식인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늘려 가는 행위인 것이다.
37주 0일에 태어난 나의 아이는 내 불안함을 통제하려는 노력을 내려놓게 한다. 내려놓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명히 구분하는 태도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날 출산가방은 챙길 수 없었지만, 병원으로 갈 수는 있었다. 계획은 무너졌지만, 선택은 남아 있었다. 통제는 사라졌지만, 책임은 남아 있었다. 준비가 아니라 대처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두 팔로 느끼기에 너무 가벼운 아이의 심장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뛰지만 본인의 리듬으로 뛰고 있다. 남편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리듬을 완벽히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리듬이 보내는 신호를 듣고 반응하는 것뿐이다.
아이는 정확히 올 때가 되어 왔다. 어쩌면 완벽한 타이밍이란 어딘가에 존재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뒤 우리가 겨우 붙잡아 의미를 부여하는 말에 가깝다. 우리는 늘 "이때가 가장 좋아"라고 말하며 불안을 달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이 좋은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삶의 중요한 일들은 늘 이런 방식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준비가 끝나길 기다려주지 않고, "지금"이라는 타이밍으로 문을 연다.
그리고 이제 아이를 키워가면서도 우리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타이밍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