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어디서 살아야 할까요

by Joyce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에서 차로 두 시간가량 북서쪽, 벤츄라(Ventura)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내륙에 작은 마을 오하이(Ojai: 스페인식 발음으로 오-하이, Oh-Hi)가 나온다. 다운타운이라고 해봐야 걸어서 두 블록이면 끝나는 이 작은 마을은 한때 나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학교는 마을의 거의 끝자락에 있다. 아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길 초입에는 “사유지(Private Road)”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한참 이어지는 오렌지 나무 밭을 지나 산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시야가 확 트이는 산 중턱에 학교가 나타난다. 오렌지 밭이 내려다보이는 교실에 앉아 창밖을 보며 공상에 잠기던 게 아직도 얼마 전 일처럼 느껴지는데, 어느새 나는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겠다며 오하이를 미련 없이 떠났지만, 막상 돌아보면 나에게는 이 작은 마을 말고는 ‘고향’이라고 불러볼 만한 곳이 없다. 대학 생활을 하면서도, 서울에서 혹은 미국의 다른 주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문득문득 이곳이 그리웠다.


나는 인생의 절반쯤을 한국에서, 나머지 절반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한 동네에서 4년 이상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도 부모님은 종종 나를 미국에 보내셨고, 그 사이에 이사를 하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는 초등학교 친구도, 중학교 친구도 없다. 그때는 지금처럼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가 활발하지 않았으니,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기억에서도 멀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지냈던 지역들도 서로 거리가 멀어,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역시 대부분 짧게 스쳐 지나간 인연들뿐이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살던 동네를 다시 찾아가게 되더라도, 그곳이 내 고향이라거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장소라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저 나는 이렇게 떠돌며 부유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였고, 그것이 어느새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데에 대한 두려움도 거의 없다. 마치 끊임없이 새로운 곳을 탐험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가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며 지내왔다.






그런 내가 고향이라는 것이 그리움과 안정감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것은 남편을 만나고 나서였다. 꼭 모든 게 고향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편은 뿌리가 깊은 사람이다. 내 감정이 거센 소용돌이처럼 흔들릴 때에도, 그는 마치 잔잔한 호수처럼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며 지켜본 바로는, 남편은 한 동네에서 거의 평생을 자라온 사람이다. 소위 말하는 ‘불알친구들’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며 학창 시절과 철없던 20대까지를 공유한 ‘고향 친구들’이다. 물론 남편의 성격이 전적으로 고향 덕에 형성된 것은 아니겠지만, 그의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뿌리의 시작점에는 고향이라는 공간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남편이, 정처 없이 떠도는 아내를 만나 타국으로 이민을 왔다. 정착하나 싶었던 동네를 또 떠나고, 또 다른 동네로 옮겨 다니며 지냈다. 부부 둘만 있을 때는 이런 삶의 방식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재택근무라는 혜택이 있는 동안 더 많은 동네를 경험해 보고, 더 많은 미국을 구경해 보자고 생각했다. 둘이서만 합의할 수 있다면 괜찮은 방향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출산을 하고 드디어 아이를 만나고 나니, 아이에게 고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친숙하고 익숙하고, 오래된 이웃들을 알고 있고, 성인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더라도 본인이 다니던 학교, 익숙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아이를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임신을 하고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출산을 하고 드디어 아이와 마주하게 되면서, 아이에게는 고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늘 보던 풍경이 있고, 익숙한 이웃들이 있으며, 성인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더라도 자신이 다니던 학교와 함께 자라난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솔직히 고향이라는 생각이 드는 미국 내 지역을 생각했을 때, 가장 처음 오하이를 떠올렸다. 작은 타운, 서로 얼굴이 익숙한 이웃들, 그리고 내가 졸업한 학교. 그 장점들을 아이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주말에는 조금 멀긴 해도 LA에 있는 한인 상권이나 박물관에 들러 문화생활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하이는 마을이 작은 만큼 이사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다. 렌트가 가능한 대형 아파트 단지가 아예 없어서, 직접 발품을 팔며 몇 안 되는 작은 렌트 건물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빈 유닛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많은 캘리포니아 지역이 그렇듯 집값도 크게 올라 있다. 원래도 다소 비싼 동네였는데, 지금은 더 올라서 우리 예산으로 집을 사는 것은 당장 생각하기 어렵다.


현실적인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재 우리 부부는 재택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언젠가 레이오프를 당하거나 재택근무가 종료된다면, 오하이처럼 작은 타운에서는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LA까지 출퇴근을 하기도 힘든 거리이기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면 결국 오하이를 떠나 다른 곳으로 다시 이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라스베가스에서는 처음에 아이를 키우며 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라스베가스를 ‘정착의 도시’로 생각하고 이사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부부 둘이서 경제적인 목표를 이루어 나가기 좋은 조건이라고 판단해 이곳으로 왔다.


캘리포니아에서 이사를 나오며 우리는 주세금과 생활비를 줄일 수 있었다. 렌트비, 전기세, 가스비 모두 훨씬 저렴했다. 물론 라스베가스도 캘리포니아에 비해 오히려 비싼 항목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자동차 보험료가 대표적이다.


경제적인 장점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하기에는 라스베가스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좋아한다. 주말이나 평일 오후에 아이를 데리고 좋아하는 전시 공간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인프라가 풍부한 지역으로 이사 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그렇다면 이전에 지냈던 오렌지카운티(Orange County)로 돌아가는 것이 답일까. 우리가 오렌지카운티를 떠난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물가와 집값이었다. 부부 둘이 재택근무를 하며 살면서, 모기지에 허덕이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렌지카운티는 한인 인프라도 좋고, 주변 공원과 해변 등 다양한 환경적 혜택을 누리기에 좋은 곳이다. 학군이 좋은 동네도 많고, 아이를 키우기에 안전한 지역도 많다.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갈 만한 박물관, 수족관, 해변이 가까이에 있다.


동시에 한인 인구 밀집도가 높은 만큼, 지나치게 치열한 학구열 같은 어려움도 예상된다. 아직 아이가 아주 어린데도 벌써부터 교육 경쟁이 부담스럽게 느껴질까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렌지카운티는 우리가 이미 잘 아는 동네이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적어도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더 단단한 기반이 되어준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아니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뉴저지나 다른 동부 도시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


뉴저지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곳이지만, 뉴욕과 가까워 문화생활을 누리기 좋고 직장을 구하기에도 상대적으로 유리해 보인다. 사계절이 뚜렷한 점도 매력적이다. 1월이면 영하 10도까지 떨어지고 눈이 쌓인다. 아이가 눈사람을 만들고, 봄이 되면 벚꽃이 피는 모습을 보며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주말마다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자연사 박물관, MoMA에 데려가 시간을 보내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뉴저지는 우리에게 너무 낯선 곳이다. 나는 대학을 동부에서 졸업했음에도 지금은 동부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다. 훨씬 비싼 생활비에 겨울이 춥다. 겨울이면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집 앞 눈도 치워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뉴저지로 이사한다는 것은 서부를 완전히 떠나는 일이다. 1년 뒤 또다시 짐을 싸게 될까 걱정된다. 새로운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 과연 ‘뿌리를 내리는 것’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이동의 시작이 될지 알 수 없다.






이 과정을 거치며 나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이 단순한 ‘정착할 곳’이 아니라 ‘뿌리를 내릴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 곳에 머무는 정착만으로는 부족하다.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곳의 일부가 되는 일이다. 이웃을 알고, 단골 카페가 생기고, 아이가 다니게 될 학교의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매주 토요일 파머스 마켓에 나가는 것. 그런 일상의 반복이 쌓여 비로소 뿌리가 된다.


요즘 이사할 곳을 고민하며 이런 질문들을 한다.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살 수 있을까.

아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 수 있을까.
이 동네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짜장이(고양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가 레이오프를 당해도 이 동네에서 다른 일을 구할 수 있을까.
20년 후에도 이곳이 여전히 살기 좋은 동네일까.


어느 것 하나 쉬운 질문이 없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고서는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오하이로 돌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라스베가스에 그대로 머무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렌지카운티는 가능성이 있지만, 3년 후 또 방랑벽이 도져 새로운 동네를 검색하고 있을까 봐 두렵다.


내 패턴은 늘 비슷했다.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즐거운 1년, 서서히 커지는 권태의 2년, 그리고 다음 후보지를 정해 이사를 결정하는 3년 차. 한 지역에서 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짐을 싸서 떠났다. 이번에는 과연 다르게 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나는 평생 떠돌며 살아왔기에, 이제 한 곳에 정착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떠나는 것은 쉽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시작.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한 동네의 일부가 되는 일은 전혀 다르다. 한 곳에 머무른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이웃과의 갈등을 풀어 가는 일이고, 단골 카페가 문을 닫아도 또 다른 단골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동네가 변해도 그 변화를 함께 겪고 견디는 일이다.


뿌리를 내린다는 건 결국, 한 곳에서 그 모든 변화를 함께하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어디가 우리의 그곳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디를 선택하든, 이번에는 뿌리를 내리겠다고 노력해 보고 싶다. 그렇게 다짐을 한다 해도, 살아가다 보면 이직이나 가족의 상황 때문에 다시 이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제는 노력 없는 방랑은 끝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언젠가 “내 고향은 여기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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