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쪼개진 시간들

출산휴가 중인 개발자 엄마의 15분 집중시간

by Joyce

새벽 5시 23분, 한 시간가량 낑낑대며 용트림을 하던 아이가 품 안에서 다시 잠들었다. 혹시 이번에는 혼자 조금 더 자줄까 싶어, 옆에 펼쳐 두었던 노트북을 보니 이미 오래전에 슬립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한쪽에 이어폰을 끼고 한 손으로 아이를 안은 채 이전에 보고 있던 튜토리얼 영상을 다시 틀었다. 그때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5시 31분이었다.

겨우 8분이 지났다.


아이는 이제 인생 50일 차다. 초보 엄마의 부족함은 할머니의 연륜과 헌신 그리고 초보 아빠의 인내심으로 메워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 시기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시간 관리다. 50일짜리 아이에게는 스케줄이 없다. 아니, 어쩌면 있는데 내가 읽을 수가 없다. 육아책에는 "2-3시간 간격으로 먹고 잔다"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체감상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깨고, 시도 때도 없이 칭얼댄다. 노트북을 열면 아이가 울고, 책을 몇 페이지 읽으면 기저귀를 갈 시간이다. 잠깐의 고요가 찾아온 것 같아 자리에 앉으면, 다시 작은 몸이 뒤척이며 신호를 보낸다.


시도 때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차라리 예정된 시간 동안 아이에게 모든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잠시라도 분명한 낮잠 시간이 보장된다면 덜 힘들지 않을까.(육아 선배님들, 제발 그런 시기가 곧 올 거라고 알려주세요) 아이를 돌보는 하루는 스케줄로 짤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가 않다. 그래서 두 달 된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연속된 시간이 아니라, 잘게 끊긴 시간들의 모음에 가깝다. 그래서 부모의 하루도 일정한 스케줄을 가지기 어렵다. 그 결과, 매일매일 계획했던 일은 거의 아무것도 완성하지 못했다.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12주의 출산 휴가가 주어졌는데, 출산 전까지만 해도 해야 할 공부와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은지, 출산휴가 계획표는 빼곡했다. 밀린 논문도 읽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랭그래프(Langgraph), 클로드(Claude나)나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를 활용한 바이브 코딩 방식등을 중점으로 공부하면서, 중간중간 이력서를 업데이트할 수 있는 수업을 수료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계획표는 지금도 노션에 남아있다.


물론 그 모든 계획들은 출산과 동시에 저 멀리로 사라졌다. 출산 후 첫 한 달은 계획 자체를 포기하고 몸을 회복하는 데 소진했다. 그다음 몇 주는 배앓이를 할 때도, 용트림을 할 때도, 왜 우는지 알 수 없는 아이를 안고 검색을 하며 육아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 아쉽다. 복직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나는 멈춰 있는 것 같다. 아이를 재우고 뭔가를 하려 할 때마다 울음소리가 들리면, 노트북을 덮으면서 묘한 감정이 섞여 올라왔다. 아이 곁에 있다는 안도감과, 또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다는 죄책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이제 출산휴가는 4주 남짓 남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엄마가 한국으로 가시기 전까지 남은 작은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을 아이와 값지게 보내고 싶고, 동시에 조금이라도 공부를 이어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하고 정해진 진도를 나가는 계획을 세우려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 긴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방식의 계획은 지금 이 리듬과 맞지 않았다. 시간이 부족한 것뿐 아니라, 시간이 너무 잘게 쪼개져 있었다. 그래서 공부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기로 했다.


첫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스스로를 압박하지 않는다. 두 달 된 아이와 함께 사는 집에서는 어떤 계획도 쉽게 깨진다. 울음 한 번이면 계획표는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 목표 달성에 실패하는 것을 예전처럼 과하게 스트레스로 전이하는 것은 목표 달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육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출산 휴가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를 잘 케어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그날 조금이라도 시도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둘째, 목표치를 낮춘다. 나는 언제나 빼곡하고 야심 찬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지금 그 방식은 맞지 않는다.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세우고, 목표치를 여유 있게 설정해야지만,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프로젝트를 크게 진전시키겠다는 목표 대신 작은 모듈 하나를 개발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목표가 작아질수록 다시 시작하기가 쉬워졌다.


세 번째는 시간을 15분 단위로 나눈다. 아직 아이는 낮잠을 길게 자지 못한다. 어떤 일을 시작해도 언제든 인터럽트가 걸린다. 그나마 일을 쉽게 완료하는 방식은 일의 단위를 쪼개는 것이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 생기는 짧은 틈, 혹은 잠시 조용해진 순간을 붙잡아 15분 동안 무언가를 한다. 15분 단위로 태스크를 완료하면, 아이를 보다가 다시 돌아와도 다음 태스크로 넘어가기가 조금 더 수월하다. 15분 단위로 일을 나누는 것은 물론 클로드(Claude)나 챗지피티(Chatgpt)의 도움을 받아서 테스트 리스트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물론 이 목표들을 실제로 실천하는 건 다른 문제다. 특히 첫 번째가. 나는 꽤 오래 목표 달성률로 스스로를 평가해 온 사람이었다. 70%를 해도 30%가 눈에 먼저 들어오는 그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지금도 15분을 채우고 아이가 깨면, 잠깐 허탈하다. 그런데 예전처럼 시간을 잃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15분을 쌓아가고 있다는 걸 믿어야만 한다.






그러다 문득, 지금 육아를 하면서 공부 방식을 재조정하고 있는데, 정작 육아 자체를 공부하는 데는 시간을 못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 개월 수에 맞는 발달 정보, 지금 시기에 어떤 자극이나 놀이가 필요한지, 어떤 장난감이 도움이 되는지 찾아보고 싶지만, 우선순위에서 자꾸 밀려난다. 솔직히 말하면, 여유가 생겼을 때 다른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자동화하기로 했다.


아이의 개월 수에 맞는 발달 팁, 추천 놀이, 안전 주의사항을 LLM이 정리해 매일 아침 슬랙으로 보내주는 시스템이다. 정보 출처도 함께 포함해서,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을 때는 이어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구글 안티그래비티(Antigravity)에서 클로드(Claude) 모델을 활용해, 15분짜리 태스크를 여러 번 반복해서 바이브 코딩 방식으로 작업했다. 총 2-3시간쯤 걸린 것 같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깃헙


매일 아침이 되면 슬랙 메시지를 확인한다. 오늘 시도해 볼 수 있는 놀이 하나, 혹은 아이의 발달에 대한 짧은 설명이 도착해 있다. 읽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오늘은 이걸 해볼까" 생각하는 루틴이 생겼다. 예상보다 꽤 괜찮다.

개발자인 나는, 결국 코드로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image.png 슬랙으로 받은 오늘의 메시지


여전히 아이와 함께하는 하루는 자주 끊긴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의 짧은 시간들이 이제는 조금 덜 낭비되는 느낌이 든다. 예전에는 몇 시간의 집중이 생산적인 하루를 만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15분짜리 시간들을 모아가고 있다.

물론 복직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지금 이 방식이 계속 통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오늘 아침 슬랙 메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아이는 이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베시넷에 누워 있는 아이의 이름을 불러봤다. 마침 타이밍 좋게도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뭐, 그걸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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