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는 천국(1)

엄마에게는 난국, 미국

by 은마마

"엄마는 인생에서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


며칠 전,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큰아이가 와서 물었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언제였더라..


힘든 기억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 구석구석 박혀있는 힘들었던 시간들이 떠올라서였다.


나의 대학 입학 후, 아빠의 사업이 파산하면서 아르바이트와 같이 시작됐던 대학 시절,

결국 휴학을 하고 6개월 동안 돈을 벌고 나머지 6개월 동안 엑스트라 레슨을 받으며 실력을 키워갔던 대학 2학년 때와, 졸업 연주 및 대학원 시험을 위해 연습할 시간을 쪼개서 비용을 벌었어야 했던 졸업 기간들이 떠올랐다.

졸업 후 유학 가는 친구들을 보며 아린 가슴을 부여잡고 생업 전선으로 나갔어야 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렇게 생업 전선으로 뛰어들어,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로 했던 솔리스트와 반주, 레슨 등으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음악 학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이후 20대 중반에 지금의 남편을 만나 3년 반의 연애 후 결혼까지 이르던 나의 젊은 시간들.

돌이켜 보니 이 시절이 나의 젊고 빛나던 시절이었나 보다.

결혼 후 6개월 만에 중국으로 건너가 제2의 신혼을 보내며 중국의 구석구석을 즐기면서 지내던 시간들도 포함해서..


결혼 1년 반 후, 첫 자연임신으로 일란성쌍둥이 딸들을 품게 되었지만, 임신 초기부터 유산기가 강했던 이 아이들을 지켜내느라 중국 병원에 입원을 하여 임신 9주부터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15주에 조기진통이 강하게 시작되어 휠체어를 타고 급히 한국으로 입국을 하였고, 공항에서 바로 삼성병원 응급실로 가 다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온갖 노력을 다 했으나 지켜내지 못하고 23주에 조산으로 보내게 되었던, 500그램도 채 안되었던 우리의 첫 두 딸들.


이 시간이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을까...


이 모든 순간들이 짧은 순간에 2배속으로 휙 지나갔다.

그런데 의외로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미국이었던 것 같아."


아이가 깜짝 놀라며 묻는다.


"왜?"

"내가 제일 행복했던 시간에 엄마는 제일 힘들었던 거야?"


"그래서 엄마는 좋았어."

"엄마가 제일 힘들었던 시간이었는데 너희들에겐 그 힘듦이 전달되지 않았던 것 같아서."


"............"


대답을 들은 큰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걸 기대했던 건 아닌데 갑자기 신파가 되어버린 대화.


"뭐가 제일 힘들었었어?"


"아빠랑 사이가 진짜 안 좋았었어."


"그랬었어?"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이었을까.

더한 일들도 많았던 미국 생활이었다.



우리가 미국에 있던 4년 동안 환율이 계속해서 올라가면서 남편에게 유학비를 받아 쓰는 상황이 서로 큰 부담과 스트레스가 되었었다.

가족 비즈니스로 나의 고용을 약속해 주셨던 이모와의 관계가 깨지면서 1년이 넘게 이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서로를 할퀴고 있었던 것이었다.

고용이 될 줄 믿고 미국까지 갔는데, 내쳐짐을 당하고 공부를 2년이나 더 하게 되었으니.. 코로나 기간 수입이 줄었던 남편에게도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이었으리라.


감사하게도 이 문제는 전화위복으로 내가 영주권 스폰을 받게 되면서 일단락되었고, 우리 부부가 아이들 몰래 전화기 너머 숨죽여 싸우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남편 없이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여자가 부딪히게 되는 여러 문제들은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노골적이었고 무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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