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옥죄는 것은 나라는 것 알기
할 일 없이 어슬렁거리기에 대학가만큼 적당한 곳도 없다.
K-뷰티 숍이나 핸드폰 가게, 옷가게들이 도로를 따라 늘어서 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가격에 이런 물건이!’ 싶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늦은 여름 일요일 한 낮, 대학가 골목 안 가게에서 나를 기다린 것 같은 원피스를 만났다. 고흐의 ‘아몬드 나무’를 연상시키는 푸른빛인데, 가까이 가서 보니 화려하고 자잘한 꽃들이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블루 톤을 이루고 있었다.
인어 라인으로 몸매를 따라 흐르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굵은 웨이브를 그리며 셔링이 잡혀있었다. 쇼핑할 계획 없었다며 돌아서서 몇 걸음 옮기다 바로 돌아가 마네킹이 입은 옷을 벗겨내었다.
그런데, 원피스의 앞모습은 무난한 라운드 네크라인이었는데 뒷모습이 반전이다. 등이 커다란 U자를 그리며 파지며 브래지어 끈 바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있었다.
다른 옷을 안에 겹쳐 입자니 덥고 그냥 입자니 용기가 필요했다.
내 돈 주고 산 옷, 묵혀둘 수 없어 입고 나섰다.
통창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사람들의 눈길을 슬쩍 받아넘기는 나 자신의 대범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거리에 나서보기로 했다. 날씨도 좋으니 잠시 산책이라고 하고 싶었다.
당당하게 횡단보도 앞에 섰다.
하지만 카페 안에서는 의자에 기대어 쪽 펴져 있던 등이 거리로 나서자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무방비로 드러난 등에 사람들의 시선이 와서 꽂혔다. 등이 따끔거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쨍쨍한 햇빛 아래 아무도 없었다. 더위를 피해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나 혼자 뭘 한 거지? 등이 무안해서 발개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무안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8차선에 멈춰 선 차들이 에어컨 빵빵한 실내에 앉아 나의 이런 모습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번엔 런웨이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어 여름 열기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길고 긴 아스팔트를 건넜다.
자의식의 강을 건넜다.
‘나쁜 사마리아인’(장하준)에 보면 핀란드 사람과 코끼리에 관한 얘기가 있다.
각 나라 사람들에게 코끼리에 관한 책을 쓰라고 하면, 꼼꼼한 독일 사람들은 〈코끼리에 관해 알려진 모든 것〉이라는 학술서를, 존재론적 고민을 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코끼리의 삶과 철학〉이라는 철학서를, 실용적인 미국 사람들은 〈코끼리로 돈 버는 방법〉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핀란드 사람들은 〈코끼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책을 쓴다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자의식에 관한 한 핀란드 사람과 견주어도 될 것 같았다.
자의식의 사전적 정의는 ‘자기 자신이 처한 위치나 자신의 행동, 성격에 대하여 깨닫는 일’이다. 타인과 구별되는 자아로서의 자기에 대한 의식을 가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고 멋진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렇듯 지나치면 독이 된다.
‘자의식 강하다’는 말이 ‘자의식 과잉’과 같은 뜻으로 통하는 것은 자의식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경험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는 용기가 필요한, 평소에 입지 않은 옷을 입고 나설 때 세상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하고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 본 적도 있을 것이다. 한 번도 그런 적 없다면, 십중팔구 당신은 옷에 무관심한 사람이거나 다른 일에서도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강한 멘털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일 것이다.
한없이 자유롭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나는 늘 그렇게 타인의 시선과 내 욕망 사이에서 소심한 눈치 보기를 하고 있었다.
등 파진 원피스를 입고 횡단보도가 런웨이처럼 여겨지던 그날, 이런 내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왜 아무도 안 보는데 등은 따갑고, 아무 상관없는 자동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신경을 쓰는 것일까?
타인의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는 이면에는 지나친 주인공 의식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실수를 하거나 조금도 이상해도 바로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주인공 의식이다. 세상이 나를 그렇게 주목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자신을 남과 다른 개별자로 인식하고 은연중에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특별함은 너의 특별함과 다를 뿐 ‘특별하다’는 점에서 같다. 모두 특별하다는 점에서 나의 특별함은 평범함이 된다. 그럼에도 지나친 주인공 의식은 주변 사람들을 관객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나의 관객이 되어줄 사람은 없다.
다들 자신의 삶에 주인공으로 산다고 바쁘다.
그러니, 스포트라이트를 끄고 무대에서 내려와 가볍게 살아도 된다.
살아갈수록 내가 무엇을 입든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느낀다. 세상이 관대함은 무관심함의 뒷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나를 쳐다볼 수 있다.
그러나 그뿐, 쳐다본다고 해서 나에게 나쁠 것 없다.
사람들은 나무 보듯, 카페 간판을 보듯 그렇게 보고 지나갈 뿐이다.
나를 옥죄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자의식의 옷을 벗자 내안의 자유가 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