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옷 사러 함께 가기를 청하면 거절해 본 적이 없다.
쇼핑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친구가 옷으로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옷 사러 간 친구보다 따라간 내가 옷을 더 많이 산다.
내가 옷 살 때마다 자주 듣는 소리가 있다.
"이 비슷한 옷, 너한테 있지 않아? 저번에 만날 때 입었던 옷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좋아하는 취향이 있으니 아마도 비슷한 스타일에 마음이 향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비슷해 보여도 이 옷은 그 옷이 아니다.
조금 다르다. 조금 다른 것은 다른 것이다.
비슷해 보이는 색깔, 스타일 그 안에 다름이 존재한다.
청바지만 해도 디테일의 변주가 끝도 없다.
기본 일자, 스키니, 부츠컷, 통바지 등 스타일이 다른데 같은 스타일도 골판을 감싸는 정도에 따라 핏이 확연히 다르다. 청이라는 소재의 색깔에 따라 다르고 두께, 워싱 정도에 따라 끝없이 변주한다.
이렇게 수없이 미묘한 차이를 청바지라는 이름 하나로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사람 사는 모습 '대동소이' 거기서 거기 같지만,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은 디테일에 있다.
작은 배려, 태도가 나를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개별자로 만든다.
몇 해 전 새로 전입한 학교에 처음 인사를 갔을 때이다.
교장실에 인사를 가기 위해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하는데, 실내화가 말 그대로 납작한 가정용 실내화였다. 외출용 옷에 납작한 천 실내화를 신으니 뭔가 어색하다. 그때 어떤 교사가 굽이 있는 실내화를 찾아내어 주면서 갈아신으라고 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친절에 감사함과 호감이 동시에 일어났다. 잠시 신고 말 실내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길만한데도 상대방의 불편함을 알아차리고 해결해주는 작은 친절이 두고두고 그 사람을 좋게 기억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작은 행동 하나가 실망을 주기도 한다.
연봉 높고 집안 좋고 인물까지 좋은 남자를 소개받아 호감을 느끼며 데이트를 하다가 영화관에서 신발을 벗는 행동 때문에 정이 떨어졌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영화관에서 신발을 벗는 행위는 안정된 직장과 호남형 얼굴에 비하면 너무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소함이 인연을 멀어지게 했다.
나를 타인과 구별해 주는 멋진 사람이 되는 일은 의외로 쉽다.
실내화를 내어주는 일, 뒷사람을 위해 회전문을 잡은 주는 일, 키오스크 앞에서 행동이 굼뜨더라도 재촉하지 않는 일, 당연한 일에도 감사 인사를 할 수 있는 태도들이 나를 차별화시킨다.
명품은 디테일이라고 하지 않나,
일상에서 작은 친절과 배려의 디테일로 스타일을 완성해나간다면 스스로 명품의 자긍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