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강연가 되기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인생이란 너무나도 멋진 것이어서 저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뭇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리처드 워슈번 차일드-
무대공포증의 시작
갑자기 내 이름에 호명되었다.
헉! 숨이 컥 막힌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얼굴이 벌게지고 등허리에 식은땀이 쭈욱 흘렸다. 기대에 찬 눈길을 느끼며 엉거주춤 일어나지만 점점 더 머릿속은 하얘진다.
넓은 강당을 꽉 채운 사람들은 도교육청에서 내려온 양복 입은 어른들, 각급 학교의 교장단, 연구사, 장학사, 그리고 한껏 정장을 한 동료 교사 백여 명이다. 보고회장의 고조된 열기에 걸맞은 뭔가 그럴싸한 답변을 내어 놓아야 했다.
진행을 맡은 우리 청 장학사는 타 시도에서 온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나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선생님, 오늘 연구 공개 수업을 어떻게 보셨는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보았는가 하면 “ 이런 짓을 왜 하나, 이것 만들 시간에 애들이랑 더 놀아주고 안아주지, 돈 주고 사면되는 걸 굳이 만드는 이유를 모르겠네, 유치원 교사는 기능 공예사인가 교사인가, 그리고 애들과 저 많은 걸 실적물로 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고, 고생이다, 고생, 그러니 선생님들 얼굴에 웃음이 없지, 진짜 누구를 위해 저렇게 하는지 원”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연구 공개 수업 실적 발표회에 회의적이었던 나는 한마디도 긍정적인 말을 마음에 담고 있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나서 집에 가기만을 기다리던 나에게 예상치 못한 마이크를 들이댄 것이다. “선생님들 수고하셨고 너무 잘 만드시고 수업도 잘하셔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정도의 말도 금방 생각나지 않아 버벅거렸다. 마음에 있는 말이 튀어 오를까 봐 긴장하며 두서없는 말을 주워 삼키는 내 목소리는 갈라지고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떨렸다. 기대에 차서 내게 질문을 던졌던 장학사의 당황한 얼굴과, 안쓰러워하는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겨우 답변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수치심이 확 몰려왔다. 다음 질문을 받은 교사의 청산유수 같은 답변은 내 답변과 보기 좋게 대비를 이루어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그날 이후, 여러 사람 앞에서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나는 쪼그라들었다. 내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의 그 아연한 심정이 마음에 똬리를 틀고 있어 사람들 앞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 일도 버거웠다. 남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살았다.
무대공포증을 극복한 방법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우연한 기회에 유치원 학부모를 대상으로 강연을 맡아야 할 일이 생겼다. 내가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흘러들었고 누구나 다른 사람 앞에 서는 것은 두려운 일이라고 일축했다. 장소는 새로 지은 정갈한 학생회관, 청중 수는 대략 백여 명,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떨렸다. 내가 정 못하겠다고 거절하면 다른 강사로 대체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급회의 시간은 거의 나의 독무대였다. 안건과 반론과 지지 발언, 모두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다. 중고등학교 학급 임원은 물론 대학교 때도 대표를 맡아 졸업여행을 추진하던 사람 아닌가? 사회에 나오고 유치원 교사가 되고부터 나는 나를 변질시키고 살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과는 별개로 유치원 교사 문화는 나에게 맞지 않았고 그 안에서 나를 드러내지 않고 숨기고 사는 데 집중했다.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습했다. 떨지 않기를, 예전처럼 앞에 나서서 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내 모습이기를 바랐다.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 ‘무대공포증을 극복하는 법’, ‘떨지 않고 말하는 방법’, ‘자신 있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방법’등 인터넷에 검색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가 고전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90분 강의를 위해 카네기 전집을 구입했다. ‘카네기 스피치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책을 읽고 공부해서 작은 노트 한 권을 채웠다.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법이 아니라 내가 그저 떨지 않고 제대로 된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노트에 적어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의식의 껍질을 깨라. 움츠러들고 딱딱하게 긴장하여 거북처럼 자신의 껍질 속에 들어가는 대신 대중 앞에서 자신의 껍질을 벗어버리는 것을 익혀라. 그럼 세계가 당신을 따뜻하게 환영해준다.
둘째,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지 마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 사회와 학교는 개성을 평등하게 하려고 하고 같은 틀에 집어넣으려고 하지만 결코 개성의 색깔을 잃어서는 안 된다.
셋째, 청중과 대화하라. 청중 중에 제일 뒤쪽에 있거나 아니면 가장 연사에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라, 그 밖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라
넷째, 온 마음을 쏟아 연설을 하라. 진지하고 성실하고 열의를 가지고 말하라, 사람이 강렬한 감정에 지배되고 있을 때는 그 사람의 참된 자아가 표면에 나타난다.
다섯째, 힘차고도 유연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연습하라.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여 성량이나 음성의 높이나 연설의 속도에 대해 자기 평가를 하라.
한 문장 한 문장 절실하게 마음에 새기며 연습했다. 강의할 내용을 녹음해서 듣고 고칠 점을 찾았다. 시작하는 말부터 제스처, 표정은 물론 인사하는 각도까지 연습했다. 원고를 쓰고 고치고 다시 읽고 연습했다. 아무도 내가 단 90분의 강의를 위해 한 달 내내 연습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지 못했다. 겉으로 나는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긴장하며 무대에 올랐다. 다행히 단상이 높아서 떨리는 내 몸을 가려주었다.
준비한 첫 문장을 말하는데 역시 목소리가 갈라져 나온다. 내 의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공부한 대로 자의식을 내려놓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동안 연습한 보람이 있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목소리는 안정되어 갔고 어느새 청중을 둘러보는 여유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끝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아쉬웠다. 무사히 강의가 끝났고 이제 몇 번만 더 하면 완전히 무대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자주 오지 않았다.
나로서는 무척 감격적인 시간이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강의 중에 하나였다.
이제는 무대를 즐기고 싶다.
단 한 번의 강의로 무대 공포증을 완전히 극복하거나 자신감이 회복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변했다. 내 안에 수치스러웠던 기억이 물려나고 그 자리에 무대에서 느꼈던 희열의 기억이 남았다.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는데 스스로를 무대에 세우고 도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나누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원래의 내가 돌아와 마음 깊은 곳에 움츠리고 있던 욕망을 깨운다. ‘마음을 움직이는 강연가’가 되어 무대를 즐기고 싶다고.
동네 책방에서 ‘심야 작가와의 만남’을 한다고 소식이 왔다. 나는 너무 설렜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밤새 책을 읽고 낯선 사람들과 책으로 소통하면서 아침을 맞는 일이 근사해 보였다. 언젠가는 나도 저기 가야지 했는데 내가 예약을 하기도 전에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었다.
나는 다시 ‘작가와의 만남’에 가게 될 날을 꿈꾼다. 그리고 이번에는 독자가 아니라 작가로서 가고 싶어 졌다. 단 몇 사람이라도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위로와 용기를 주는 강연가가 되고 싶다.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일단 해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것을 꼭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