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행복하기

집은 내 삶을 담는 그릇이다.

by now nina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다
- 괴테-

구해줘 홈즈


“일찍(10시 40분) 자야 한다. 일찍 자야 아침이 개운함을 자주 잊는 것이 참 어리석다”

내 핸드폰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글이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장거리 출근을 위해 일요일 밤은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마음먹는데도 번번이 실패한다. 월요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다음 일요일 밤에 또 흔들릴 나를 위해 적어둔 말이다.


왜 10시 40분이냐 하면 10시 45분에 ‘구해줘 홈즈’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안 보면 모르는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자정이다. 그만그만한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주거형태가 다르고 뷰가 다르고 구조가 다른 집을 구경하는 일은 정말 재미있다. 게다가 전국을 무대로 의뢰인의 조건에 맞는 집을 보여주니 내 집, 내 동네 밖에 몰랐던 시야가 확장된다. 무엇보다 남이 사는 집을 저렇게 열어 속속들이 보여주는데 중간에 그만 보고 일어설 재간이 없다.


어릴 때부터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 외국 잡지의 아름다운 집들을 오려 스크랩을 해두고 그림책을 보듯 넘겨보며 그곳에서의 감미로운 삶을 상상했다. 빛나는 바다를 향해 열린 테라스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고 살랑거리는 흰색 커튼이 드리워진 쾌적한 거실 사진을 보면, 몸에 흐르는 듯한 옷을 입고 와인잔을 들고 사는 모습이 그려졌다.

인테리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취향이 없었던 탓일까?이 집은 이래서 좋았고 저 집은 저래서 좋았다. 시골 할머니 집에 온 듯한 포근함이 감싸도는 프로방스 스타일에 매혹되다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시크한 모던 스타일에 마음이 꽂혔다. 뉴욕의 오래된 빈티지 샵을 연상시키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빠져들었다가, 고급스럽고 화려한 네오클래식에 혹했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이 가지는 매력은 달랐지만 내가 한결같이 읽어내는 것은 ‘집에서 누리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었다.


집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된다.


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다야한 시선과 관점에 따라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집은 삶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집에 있는 물건들은 생활에 필요하거나 집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것들이다. 그 물건을 통해 우리 삶은 구체성을 드러난다. 또, 집에서 우리는 가장 편하고 자유로운 자기 자신이 된다. 집 밖에서는 사회의 규칙과 질서에 지배받지만 집안에서는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고 나만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내려놓고 내 모습으로 지낼 수 있는 곳이 집이다.


그런데 종종 그런 집에서 나는 무기력하고 게으르다.

아침부터 소파에 눌어붙어 TV 리모컨만 누르다 저녁을 맞이하거나, 종일 잠옷 차림으로 움직이지 않고 먹어대기만 하거나, 혹은 TV 보면서 먹어대는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오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마음이 무겁다. 몸이 피곤하고 지친 날은 변명이라도 되지만 대부분은 그저 게으름에 젖어 하루를 낭비한 탓이다. 그런 날은 삶의 키를 잃어버리고 내 삶이 통제권 밖으로 흘러가는 듯한 무력함을 느낀다. 차라리 긴장하고 일할 수 있는 월요일이 좋다며 지겨워하던 직장으로 갈 수 있음을 안도한다. 그러나 직장은 도피처가 되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곧 퇴직을 앞둔 50대 아닌가? 집에서 행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집의 시간을 디자인하다.

내가 가장 나 다울 있는 공간에서 왜 스스르 게으르고 무기력하다고 느낄까? TV를 보고 먹는 내 모습이 마음에 안든다면 집에서 무엇을 하며 보내야 만족할까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요리하기’이다.

요리는 내가 제일 못하는 분야이다. 한번 먹으면 없어지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 다듬고 준비하고 설거지하며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에 다른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오십이 넘은 지금, 사랑하는 가족과 나를 위해 건강한 음식을 준비해 먹는 일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것은 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요리하기는 집의 시간에 첫 번째로 들어갈 활동이다.

다음은 ‘요가하기’이다

얼마 전 저녁에 세수를 하는데 오른쪽 얼굴에 마비감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손으로 마사지를 했는데 마치 다리에 쥐가 나듯이 빰이 뻣뻣해졌다. 다음날 아침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을 봤다. 다행히 입은 제자리에 있었다. 병원에 가니 신경계 질환보다는 저작근육의 활동성 저하에 따른 근육마비 증상이라고 한다. 평생을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살았지만 이제 하다 하다 얼굴 근육까지 마비가 온다 하니 어이가 없다. 매일 요가를 통해 근육을 풀어주고 단련시켜 하루치 근육의 사용량을 확보해야 한다. 안그러면 또 어디가 말썽을 부릴지 모른다.


제일 소중한 일은 ‘책 읽고 글쓰기’이다. 이것은 내 자괴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책읽고 글쓰기를 해야 할 시간에 TV를 보고 낭비했다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막힐수록 도망치듯 TV앞에 앉게 된다. 어려운 시간대신 쉬운 시간을 선택하는 내모습에 실망하는것이다. 글을 쓴 날은 무엇을 했든 하루가 아깝지 않다. 내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글로 표현을 하고 산다면 나의 하루를 자책할 이유가 없다.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은 ‘TV로 영화보기’이다

집에서 TV로 누릴수 있는 혜택 중에 하나가 내 편한 대로 영화보기이다.

온 가족이 모인 밤에, 맥주와 적당한 안주거리를 준비하고 각자 편한 자세로 앉거나 드러누워서 찜해 둔 영화를 본다. 꼭 가족이 다모일 필요는 없다. 부부끼리 혹은 혼자서 취향껏 영화를 즐길 수 있으면 그것도 좋다.


마지막으로 ‘함께 행복하기’이다

집은 사적이고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가족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남편에게 퇴직 후 집에 있으면 무엇이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다.

처음 나온 답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커피는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아마 아침 햇살 가득한 소파에서 그저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누리고 싶다는 뜻인 것 같다.

두 번째 답은 공부하고 책 읽고 글 쓰는 것이라고 한다. 한 번도 내색하거나 드러내지 않았던 남편의 깊은 욕망 이다. 한때 문학 소년이었던 남편이 좋아하는 좌식 책상을 준비해줘야겠다. 함께하는 시간도 혼자 있는 시간만큼 소중하다.

집의 공간을 디자인하기


요리하고 요가하고 책 읽고 글 쓰고 영화보기 위해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 주방, 요가매트, 내 책상, TV 모두 있다.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리적인 공간이나 물건이 아니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디자인할 수 있는 내 의지이다. 그러나 의지가 약한 나는 환경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어지럽혀진 집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없고 내 삶을 고양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나지 않는다.


시간관리가 내 삶의 뼈대를 갖추는 일이라면 공간관리는 뼈대에 살을 붙이는 일이다.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간 구성은 어떠해야 할까?


1. 정리하고 버리기

마치 미인이 되기 위해 목욕부터 해야 하는 것처럼 집도 우선 정리하고 버려야 한다. 오래된 각질을 벗겨내듯이 오래된 짐과 허드레 욕구를 걷어낸다. 현관 앞에 버려야 할 물건들이 쌓일수록 내 공간에 담백한 여유와 삶의 본질이 모습을 드러낸다.


2. 일률적인 공간의 틀에서 벗어난다

생활의 효율성을 위한 구조를 추구하다 보니 아파트는 대동소이하게 일률적이다. 거실에는 TV와 소파가 마주 보며 공간을 지배하고 식탁과 냉장고는 주방 안에서 부대끼고 있다. 거실 한가운데 해먹을 걸어두거나 식탁 옆에 자전거를 둔 사진을 보며 일상적인 틀이 깨어진 자리에 넘쳐나는 생동감을 느꼈다. 내가 원하는 집은 남들 눈에 보기 좋은 근사한 집이 아니라, 내 생활에 맞추어 내 욕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자유로운 집이다.


3. 따뜻함과 서늘함이 함께 있는 공간을 구성한다. 공간에서 빛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밝게 빛나는 햇살은 바라보아야 흐뭇하지 그 아래 있으면 오래지 않아 피하고 싶어진다. 햇살은 들이되 햇살을 피할 자리도 같이 구성해야한다. 나는 여름에는 서늘한 공간, 겨울에는 따뜻한 공간에만 있어도 행복해진다.


4.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구성한다.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TV 만화(가령 뽀로로라든지) 속 방을 보면 금방 마음이 포근해진다. 연분홍, 노랑, 연두가 다채롭게 섞인 방에는 침대와 식탁과 옷장과 테이블이 한 방에서 다정하게 어우러져 있다. 침대는 누우면 달콤한 잠에 빠져들것 같고, 식탁은 금방 맛있는 음식이 차려질 것 같다. 옷장을 열면 알록달록한 즐거움이 쏟아질 것 같고 테이블은 언제든지 새로운 모험을 모의를 할 듯하다. 만화속 방을 보며 왜 우리는 저런 방을 가질 수 없을까 부러웠다

우리가 다락방을 좋아하고 단차가 있는 창가 구석자리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모두 어릴 적 이야기 속 세상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보는것 만으로 그대로 이야기가 그려지는 그런 포근한 공간을 꿈꾼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아침햇살이 집안 깊숙이 들어와 시간이 정지된 듯 빛날 때 읽던 책을 멈추고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집을 바라보았다. 우리 가족의 희로애락과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내 집이 말을 걸어오는것 같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올 시간이야'

50대는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집에서 행복해야 남은 삶이 행복하다.

집에서의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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