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fulmito Oct 17. 2023

아무렇게나 버릴 수 없는 것

2년마다 하는 자동차 종합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기가 힘들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여쭈었다. 하~ 그게 문제가 될지 몰랐어.


중고로 산 내 차에는 견인 고리가 달려 있었다. 나는 걸고 다닐 것은 없지만 살 때부터 붙어 있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간혹 "캠핑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귀찮음 외에는 불편할 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센터에서 "차에 뭐 끌고 다니세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한 번 더 사연을 설명했을 뿐이었다. 그러자 "필요 없으시면 떼 드릴까요?"하고 물으셨고, 나는 별생각 없이 "네"하고 대답했다. 그렇게 내 차에 달려 있던 연결 장치가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다.


그런데 자동차 검사소에서 신고 없이 그런 걸 떼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듣게 되다니. 다시 붙이고 검사를 받으러 오거나 튜닝업체에 가서 서류정리를 해야 한단다. 이게 무슨 일이야. 카센터에서 그걸 떼 낸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으니 다시 찾아서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런 서류 작업을 해 준다는 튜닝업체를 소개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튜닝업체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서류 처리 비용이 30만 원이란다. 뭐, 30만 원!! 3만 원이래도 아까울 상황에 30만 원이라니. 좀 더 싼 업체가 없나 해서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는데, 그런 서류 처리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설명만 돌아왔다. 혹시나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내 연결고리를 뗀 카센터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사장님도 당황하시며 떼내었던 연결고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한 번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한 시간 후, 카센터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고물상에 넘어간 지 1년이 넘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직원의 실수를 직원에게 넘기지 않고 직접 전화를 해 주신 게 고마워서, 다시 전화를 했다가 엄한 소리 들을까 망설였을 것 같은 마음이 느껴져서 더 이상 원망할 수는 없었다. 차마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아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렇게 생돈 30만 원이 날아가는 수도 있구나.


카센터 직원도 몰랐던 사실을 내가 알 리 없었으니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이어 바람을 넣어주고 웃는 얼굴로 "그냥 가세요." 하던 친절한 카센터 직원을 탓할 수도 없다. 그는 선의로 한 일이었을 뿐이니. 남편이 그 일로 속 썩지 말라며 30만 원을 바로 송금해 주었다. 오늘 강의가 있다며 부수입이 생긴다고 좋아하던 남편은 강의를 하러 가기도 전에 강사비를 서류처리 비용으로 내놓아야 했다.


아무리 미니멀리즘을 외치는 세상에도 불필요하다고 아무렇게나 버릴 수 없는 게 있구나. 불필요하다고 아무렇게나 버릴 수 없는 것이 내 경우에는 '인간관계'다. 힘든 인간관계를 억지로 끌고 갈 수 없으니 마음고생 더 하지 말고 놓아버려도 된다는 조언도 있지만,  나는 모든 인간관계가 소중하다는 입장이다.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 같은 친구도, 마음속으로는 '저 사람은 정말 아니라'며 엑스를 그어버린 동료도, 너무 질척거려 다음에는 더 안 만나고 싶은 인연도 원수 지지 않겠다는 철칙이 내 안에 있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도 아니고, 인간관계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도 아니면서 내가 고수하고 있는 원칙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나와 정말 뜻이 맞지 않는 사람과 힘겨운 대화를 나누고, 싸울 위기를 넘겨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남았다는 사실이 내게 성취감을 준달까? 많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의 하소연을 힘겹게 들어주고 위로해 주면서도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길 원하는 상대방의 기대에는 적절히 선을 긋고는 내게 맡겨진 몫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소심한 성격을 타고나 인간관계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나의 과거에서 비롯된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인간관계로 버리지 않겠다는 오기. 하지만 덕분에 나는 한결같은 사람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내치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내 옆에서는 안심해도 되기 때문이다. 오래 연락이 끊어져도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고 다시 관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고 마음을 열고 기다릴 수 있는 것도 나의 철칙 덕분이다. 


사람은 안 변한다, 고 하지만 사람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것도 없다.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람은 꾸준히 변한다. 그 변화가 좋은 방향일 때도 있고, 나쁜 방향일 때도 있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희망을 말한다. 귀찮다고 아무렇게나 떼어버린 인간관계가 미래에 내게 손해를 입힐 리 없더라도, 인간관계에 대한 욕심이 나의 과거에서 온 쓸데없는 오기라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이 원칙을 고수하고 싶다. '그 누구라도 사람은 귀하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진리인 까닭이다. 30만 원은 귀한 배움 값이라 생각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단한 쇼핑 실력의 실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