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소설 아리랑의 무대를 걷다

by joyfulmito

하루 푹 쉬고 여행을 재개하는 날이다. 우리는 대구를 떠나 군산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나에겐 군산에 가는 길에 또 들르고 싶은 곳이 있다. 하하하. 바로 전날 쉬엄쉬엄 여행하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내 머릿속엔 여전히 가고 싶은 곳이 한가득이다.


소설 <아리랑>을 읽으며 김제에 가보고 싶었는데, 마침 아리랑 문학관도 있다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물론 아이들은 관심 없을 테고, 남원에서 혼불 문학관에 데려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언제 또 김제에 올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엄마 아리랑 문학관 가고 싶은데 너네는 카페에서 기다릴래?”하고 제안을 했다. 남편에게는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 제안에는 이미 ‘카페에서 아이들 데리고 있어 줘’라는 부탁이 포함되어 있다. 다행히 엄마의 제안에 아이들도 남편도 흔쾌히 오케이를 해주었다.


덕분에 소설을 읽으며 상상만 하던 김제에 도착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남편과 아이들은 카페에 내려주고 나 홀로 아리랑 문학관으로 향한다. 정말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지는구나. 산으로 둘러싸인 대구에 사는 내게 김제의 풍경은 신선하고 신비롭다. 가을에 왔다면 내가 좋아하는 황금물결 논 뷰가 사방으로 펼쳐져 더 황홀하겠구나. 눈이 내려도 너무 예쁘겠다. 하지만 지금도 충분히 좋아. 홀로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문학관으로 향하는 지금 사방으로 펼쳐지는 겨울 들판도 황홀하리만치 어여쁘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다 같이 가는 여행 중에도 잠깐씩 빠져나와 혼자만의 행동을 즐기곤 한다. 시드니에서 아침 일찍 살짝 빠져나와 일출 장소를 찾아가던 길, 제주 한 달 살이 중 나 홀로 걷던 올레길, 함평 여행 중 홀로 차를 몰고 가던 꽃분홍 백일홍이 화려하게 핀 길에서 나는 유난히 신이 나 팔짝팔짝 뛰었더랬다. 이번 여행에서는 김제의 아리랑 문학관이 나를 재충전시키는 공간이 될 예정이다.


한껏 들뜬 채 문학관에 도착했다. 내가 정말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만들었던 취재 수첩과 각종 메모들이 나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소설 속에 등장하던 인물들은 이렇게 취재를 거쳐 창조되고 각색되었던 거구나. 독립을 위해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지만 번번이 좌절하며 늙어간 신세호가 노년에 술을 마시고 일본인들의 건물에 오줌을 갈기며 ‘오줌 대감’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 그 부분도 취재를 통해 발견한 현존 인물을 각색한 부분이었다니! 책을 읽던 중에 소설이라기보다는 역사서 같고,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실존 인물들처럼 가깝게 다가온 이유가 있었구나. 재미나게 문학관을 둘러보고 나니 근처에 있는 문학마을도 가보고 싶다. 욕심이 끝이 없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벽골제 공원을 둘러보고 이제 막 카페에 들어갔다고 한다. 잘됐다 싶어 얼른 “그러면 나 문학마을도 갔다 갈게.” 하고선 신나게 문학마을로 향했다. 대구에서 출발할 때 피곤함이 몰려오길래 ‘이렇게 긴 여행을 계획한 건 내 욕심이었던 건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여행지를 걷기 시작하니 힘이 펄펄 솟는다. 역시 난 여행 체질이야. 따뜻한 겨울날 소설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소설의 무대를 거닌다. 소설을 재현해 둔 마을이지만, 내가 좋아했던 인물들의 집 앞을 걸으며 마치 그들이 정말 살던 집인 듯 그들의 삶을 떠올린다. 일제 수탈의 현장들을 걸으며 그들이 그곳에서 겪었던 아픔을 내 마음에도 담는다.


같은 배경을 그린 박경리의 <토지>를 읽을 때는 아픈 역사 속에서도 통쾌함이 있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는데, 조정래의 소설은 아픈 역사를 적나라하게 펼쳐놓아 글을 읽는 중에도 그 현실을 직면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겪게 한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해방이 되었다고 어깨춤을 추고,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어머니께 신나게 뛰어가는 <토지>와 비슷한 결말을 기대했는데, <아리랑>에서는 비극이 정점을 찍으며 결말을 맺는다. 해방이 되었다고 신나게 조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말살되고 마는 마지막 그 장면은 다시 봐도 마음이 찢어진다.


가족들의 배려 덕분에 소설 속 여행을 즐겁고 의미 있게 마친 후 가족들과 함께 군산으로 향한다. 군산에서도 <아리랑>의 흔적을 열심히 찾아봐야지 다짐하면서...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1길 24

아리랑 문학마을: 전북 김제시 죽산면 화초로 180